[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2] 헌법에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기본권이 존재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52] 헌법에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기본권이 존재할까?
  •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1.12.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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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관련 기본권 사건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쉰두 번째 여행의 시작>

2018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종전선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 종료의 모습은 의외로 다양하고, 정치적 의미와 법적 의미가 겹치는 영역입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한 번에 할 수도 있고, 별개로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정치적 의미가 강한 종전선언을 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평화협정 체결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전선언이 되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체제가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휴전선 부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왕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경제협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미국, 중국 등과 함께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해양수산 분야 역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서해에서는 꽃게를 잡으러 북쪽으로 더 올라갈 수 있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북한 항구에 우리나라 배를 정박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 항구를 경제협력 사업으로 우리나라가 현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항구를 건설한 다음 어떻게 운영할지, 잡은 꽃게의 원산지를 어떻게 표기할지 등 다양한 이슈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배나 항구 등이 낙후되어 제대로 해양수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던 북한과의 이러한 협력 사업들은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해양수산업에도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이고, 북한 선원의 고용 등으로 고질적인 인력난도 일정 지역에서는 해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민감한 주제이고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미래이고 선물 같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간접적으로나마 남북교류에 대해 판단한 판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사건에서 A는 북한 주민의 기아해결을 돕기 위해 북한에 쌀을 보내고자 1996. 8. 23. 통일부에 북한 주민 접촉신청을 하였으나, 통일부 장관은 위 신청이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에 관한 정부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불허하였습니다.

A는 위 불허처분의 취소 소송을 제기한 후, 불허처분의 근거가 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결국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습니다.

 

<쟁점>

헌법상의 여러 통일 관련 조항들로부터 국민 개개인의 통일에 대한 기본권이 도출될 수 있을까요?

 

<헌법재판의 판단- 헌법재판소 2000. 7. 20.자 98헌바63 결정>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 등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북한 주민 등과의 접촉은 대체로 남북한 간의 교류를 촉진시키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기여하겠지만, 때로는 접촉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유발하여 긴장이 조성되거나, 무절제한 경쟁적 접촉으로 남북한 간의 원만한 협력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접촉의 시기와 장소, 대상과 목적 등을 정부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접촉 당사자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 시의적절하게 대처하기 힘들고, 또한 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통로로 이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통일부 장관이 북한 주민 등과의 접촉을 원하는 자로부터 승인신청을 받아 그 접촉의 시기와 장소, 대상과 목적 등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는 현 단계에서는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가운데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 주민 등과의 접촉에 관하여 남북관계의 전문기관인 통일부 장관에게 그 승인권을 준 이 사건 법률조항은 평화통일의 사명을 천명한 헌법 전문이나 평화통일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4조, 대통령의 평화통일 의무에 관하여 규정한 헌법 제66조 제3항의 규정 및 기타 헌법상의 통일 관련 조항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0조에서 유래되는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나 제14조에서 규정한 거주·이전의 자유, 제18조에서 규정한 통신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으나, 그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의 제한으로서, 앞서 본 입법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에 비추어 볼 때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

A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민의 통일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상의 통일 관련 조항들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나, 앞서 본 헌법상의 여러 통일 관련 조항들은 국가의 통일의무를 선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로부터 국민 개개인의 통일에 대한 기본권, 특히 국가기관에 대하여 통일과 관련된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하거나 일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결정의 의의>

평화체제와 통일은 모두 좋은 말이지만, 북한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그 실행에는 주의하여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주의점을 적절히 규정하고 있고, 이는 헌법상 통일 관련 조항에 위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러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가 통일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국민 개개인이 통일을 위해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기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할 수는 있지만, 국민이 우리 정부에게 종전선언을 추진하도록 요청하거나 종전선언을 추진하지 말도록 요청할 구체적인 권리까지는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쉰두 번째 여행을 마치며>

언젠가는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국민이 종전선언을 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할 권리는 없지만, 종전선언 이후 바로 시작될 평화협정 과정에서 우리나라 어민의 권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할 필요는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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