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㊻ 반갑다, 오징어야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㊻ 반갑다, 오징어야
  • 김준 박사
  • 승인 2021.12.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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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죽변항 (상)
입항하는 오징어배
입항하는 오징어배

오징어가 아니라 갑오징어야. 식감이.

울진 죽변항에서 방금 가져온 오징어를 살짝 데쳐 내놓자 맛을 본 아이들 반응이 격하다. 한 점 집어 기름소금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었다. 분명 다리 숫자, 길이, 그리고 체형도 오징어였다. 하지만 살 두께나 식감이 지금까지 먹어본 오징어가 아니다. 두텁고 단단해 아이들 말처럼 갑오징어라 해야 할 것 같다.

죽변항은 울진지역은 물론 동해를 대표하는 어항이다. 역사적으로 울진은 울진지역과 평해지역으로 나눠져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조에는 강원도에 속했다. 일제강점기 통치목적으로 울진과 평해를 울진군으로 통합했고, 1963년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울진군은 울진읍과 평해읍을 포함해 10개 읍·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금강송면과 온정면을 제외하고 모두 동해와 접한다. 일제강점기에 정어리, 고등어, 청어 등이 많이 잡혀 일본인이 머물렀고, 해방 후 한국전쟁기에는 실향민들이 정착했다. 최근까지 꽁치, 오징어, 노가리, 쥐치 등이 잡히고 있다. 큰 어항으로 북쪽엔 죽변항과 남쪽엔 후포항이 있다. 울진특산물로 후포항 대게, 죽변항 오징어, 고포 미역이 유명하며, 내륙에는 금강송면 송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죽변마을은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민들은 ‘후리깨’라 불렀다. 주변으로 물고기가 많이 들어와 후리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바닷가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징어 보고 울고 웃고

오징어는 회유성 어종이다. 수온에 따라 동해안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르내린다. 최근에는 진도와 흑산도 인근 서남해안에서 잡히고, 심지어는 서해 복판인 신진도 앞바다에서도 잡히고 있다. 바다수온 변화가 심해지면서 서식처를 옮기고 있지만 여전히 오징어는 동해를 상징하고, 그 중에서도 죽변항이 오징어 집산지다. 새벽에 도착한 위판장에서는 ‘동해안 오징어집산지 죽변항 입항에 감사합니다’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반긴다. 한때 명태 잡는 배들이 원산으로 향했듯이 오징어를 잡는 배들은 죽변으로 모여들었다. 포항에서 출발한 배들도 죽변에 이르러 울릉도쪽으로 향했다. 물길이 그렇게 흘렀다. 그 길을 거슬러 가는 것은 위험하고 기름도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오징어어장이 형성되는 울릉도까지 80마일이다.

죽변항은 오징어만 아니라 대구도 올라오고, 곰치도 잡힌다. 삼치와 참치가 심심찮게 위판장을 기웃거리지만 오징어가 가장 대접받는다. 11월 초에도 오징어배가 들어왔다. 오징어배가 항구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고개를 들고 반기는 녀석들은 위판장 위에서 쉬고있는 갈매기들이다. 이들이 낌새를 차릴 때쯤이면 ‘오징어배가 들어오니 경매를 준비하라’는 알림이 항내에 울려 퍼진다. 중매인들이 항에 접안한 오징어배 주변으로 모여든다. 오징어가 배 안 수족관에 담긴 채로 경매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중매인들은 오징어배가 접안하면 재빨리 배에 올라 오징어를 살펴보고 내려와 가격을 적는다. 낙찰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대기하고 있는 수족관이 실린 커다란 트럭으로 옮긴다. 한 대야에 20마리씩 담겨 트럭 위 수족관으로 이동한 오징어는 전국으로 실려나간다. 동해안에서도 죽변항 오징어가 가장 값이 좋다. 오징어 황금어장이라는 울릉도와 죽도 주변 해역과 가장 가까운 곳이 죽변항이다. 이곳이 오징어 조업 전진기지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때 오징어가 귀해 금징어가 되기도 했다. 동해안에서 잡히지 않고 진도 남쪽, 흑산도와 서해 바다에서 잡히기도 했다. 작년부터 동해안에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죽변항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오징어가 잡히지 않은 시기엔 남획, 불법어업,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 등이 원인으로 제기기도 했다. 하지만 수산학자들은 수온 등 서식환경의 변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들고 있다. 최근 오징어가 다시 호황을 누린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죽변항 오징어잡이 어선들은 예나 지금이나 낚시를 이용한 오징어채낚기로 조업을 하고 있다. 한때 손으로 물레를 돌려 오징어채낚기를 했지만 지금은 기계를 이용한다. 그래도 손으로 물레를 돌리는 것만큼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선원을 구하기도 어렵고 옛날처럼 경험과 기술을 갖춘 선원을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나마 외국인 선원들이 아니면 조업도 어렵다. 해서 기계를 이용해 채낚기 조업을 하고 있다. 당일바리 오징어는 체색이 짙은 밤색을 띤다. 하룻밤이 지난 오징어는 색이 옅어지고 회색을 띠기도 한다. 활어로 팔리지 않는 오징어는 곧바로 할복을 해 내장을 제거하고 얼음을 채워 역시 전국으로 유통된다.

산 오징어는 위판장으로 옮기지 않고 오징어배 어창을 보고 경매를 한다.
산 오징어는 위판장으로 옮기지 않고 오징어배 어창을 보고 경매를 한다.
활어로 운반되지 못한 오징어는 내장을 제거하고 얼음과 함께 박스에 담겨 유통된다.
활어로 운반되지 못한 오징어는 내장을 제거하고 얼음과 함께 박스에 담겨 유통된다.

 

겨울 동해여행의 멋과 맛

죽변으로 가는 길목, 벌겋게 달아오르는 동해바다를 보고 차를 세웠다. 일출을 보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새벽에 나갔던 배들이 하나 둘 항구들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붉은 기운이 강하게 올라오더니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여행객들이 겨울철 동해바다를 찾는 이유의 하나가 이 모습을 보기 위함일 게다.

오징어 경매가 끝날 무렵에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배들이 입항을 하면 중매인을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배가 고프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불빛이 화려한 횟집을 뒤로하고 위판장 뒤로 돌아가자 대구탕, 도루묵탕, 복지리, 곰치국 메뉴들이 추위에 떨었던 나그네를 유혹한다. 따뜻한 국물을 내놓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대구 위판을 하는 것을 보고 온 탓에 주저하지 않고 대구탕을 시켰다. 새벽부터 찬바람을 맞으며 다니다 따뜻한 식당으로 들어오니 피로가 확 밀려왔다. 옆자리에 주민으로 보이는 두 사람도 대구탕을 앞에 두고 소주를 두 병째 까고 있었다. 이럴 때 딱 한 잔 하면 추위도 가시고 빈속에 넘어가는 맛이 최고인데. 아쉽다. 갈 길이 있으니.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주문한 대구탕이 나왔다. 맛있다. 대구탕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곳은 거제 외포항이었다. 그런데 이곳 대구탕도 못지않다. 반찬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철 해산물은 동해 맛이 으뜸이다. 겨울철에 동해를 찾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죽변항 대구탕
죽변항 대구탕

죽변항을 지키는 성황사 ‘할매·할배’

성황사에 모셔진 위패
성황사에 모셔진 위패

 

위판장에서 읍내로 나오는 도로에서 심상치 않은 고목 향나무를 만났다. 그 아래 성황사라는 현판을 단 작은 건물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운데 ‘죽변 성황당 할매할배 신위’라 쓰인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밑동에서 두 개로 갈라져 높이는 각각 13.5m와 10m에 이른다. 이 향나무는 울릉도에서 자라던 것이 파도에 밀려와 이곳에 자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죽변항에 있는 향나무는 ‘울진 후정리 향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울진군에는 이곳 외에 화성리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울릉도에 도동항 동쪽에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울릉도를 상징하는 나무다. 수령이 2,000년이라느니 3,000년이라느니 의견이 분분하다. 한때 울릉도는 향나무 섬이라 할 만큼 향나무가 많았다. 우산국 시절에 전쟁으로 향나무가 모두 탔는데 그 향이 울진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울릉도 향나무는 울진만 아니라 안동과 봉화 등 경상북도 산골 양반가에서 ‘울향’이라고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울릉도사람들 중에는 울향을 뭍으로 가져와 팔아 생필품을 챙겨갔다고 한다. 경상북도에는 향나무를 신목으로 모시는 바닷마을이 많다. 그 유래를 보면 울릉도에서 떠 내려와 정착한 것으로 풀이 한다. 또 창덕궁을 비롯해 궁, 종가, 서원, 사찰 등에 오래된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죽변 성황당은 죽변어촌계에 속하는 죽변 네 개 마을과 후정 3리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당이다. 정월보름 동제와 3년마다 3, 4월이나 5월 단오 가운데 날을 잡아 별신굿을 했다. 죽변 죽항과정에서 1935년 죽변 4리 후리깨에 있던 할머니서낭을 합해지면서 부부당이 되었다. 제물로 일곱 가지 고기와 세 가지 나물, 다섯 가지 과일 세가장 탕을 준비한다. 그리고 보름 제사에는 반드시 미역을 올렸다. 별신굿은 3년이나 5년 주기로 연행하는 마을굿이다. 동해안 어촌에서는 대부분 행해졌었다. 죽변면에서는 봉개(봉수)마을, 죽변항, 골길(골장), 군발(곡해) 등 네 곳에서 전승되었다. 죽변항과 군발이 1980년대 중단되었고, 골길도 같은 시기에 중단되었다가 1997년 재개되었다. 봉개마을은 2000년대에도 어촌계 주도로 몇 차례 별신굿을 개최했다.

죽변의 성황사와 향나무
죽변의 성황사와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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