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이지 못한 자율관리어업 단체 운영
자율적이지 못한 자율관리어업 단체 운영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12.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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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관리어업법 제정 취지 맞게 운영돼야”

[현대해양] 자율관리어업 정책이 시행 20주년을 맞았지만 이를 자율적으로 수행해야 할 어업인 단체는 여전히 ‘자율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과거 수산자원 관리는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2000년대 들어 ‘자율관리어업’이라는 개념이 도입돼 어업인의 참여를 유도했다. 과거 민(民)이 아닌 관(官)이 주도한 어업관리는 정부와 어업인을 ‘규제하는 자’와 ‘규제 당하는 자’로 구분해 서로를 대립하는 관계로 인식하게 했다. 이 때문에 양자 간에 제도 순응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수산자원 관리의 효과를 저하시키는 역효과를 냈다.

그런데 다행히 2000년대 초반에 ‘자율관리어업’ 정책이 도입됐다. 2001년에 새롭게 도입된 ‘자율관리어업’ 정책은 어업인 스스로 어장과 수산자원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공동체를 구성하고 자율관리 규약을 정해 자원을 자율적으로 관리했다. 자율관리어업은 지속 가능한 어업 생산기반을 구축하고 어업인과 어촌 소득증대를 추구하는 어촌의 혁신운동으로 인식됐다. 자율관리어업은 어떤 정책보다 효과적인 수산자원관리 수단이며 가장 절실했던 정책이었다.

2001년 63개의 공동체와 5,000여 명의 어업인이 함께 시범사업을 처음 추진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은 1,133개(2020년 말 기준)의 공동체와 6만 4,893명의 어업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 숫자는 전체 어촌계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자율관리어업은 계속 성장해왔다.

또한,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많은 어업인은 소득증가, 자원증가 및 공동체원들의 참여도 증대 등을 자율관리어업의 긍정적 효과로 생각했고, 자율관리어업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 및 필요성 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앞으로도 자율관리어업은 어촌사회의 정신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추진과 확산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어업인들 노력으로 제정된 ‘자율관리어업법’

이런 인식의 확산과 자율관리어업연합회장을 비롯한 어업인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2월 19일에 ‘자율관리어업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자율관리어업법)이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됐다. 자율관리어업법에서는 해양수산부가 자율관리어업 정책목표와 기본방향,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법 등을 담은 자율관리어업 육성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그에 따른 시행계획을 매년 수립해 지자체(시·도)에 전달하면 지자체에서는 세부적인 실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교육훈련 시 교육대상 및 교육방법, 교육 내용 등을 담은 교육훈련 계획을 수립해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공동체 재정 지원과 포상 절차 그리고 과태료 부과 기준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 제1차 자율관리어업 종합계획이 발표됐는데, 4개의 주요 추진과제와 12개의 세부 추진과제가 지정됐다.

2001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뒤 본궤도에 오른 자율관리어업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10년 전인 2011년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가 출범했다.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는 청주시 오송읍에 사무실을 두고, 전국 13개 시·도에 지부를 운영하며 자원관리, 어장관리, 어업인 간 분쟁 해결, 어업공동체 경영개선 등을 위해 10년간 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사단법인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은 또 다른 사단법인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년의 자율관리어업 역사를 보나 10년이 넘은 자율관리어업연합회의 위상을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제정돼 올 2월부터 시행된 자율관리어업법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구책을 구하라?

해수부는 △자율관리어업 육성비(우수공동체 인센티브 등) △자율관리어업 활성화 지원비(자율관리 컨설턴트 운영 등) △자율관리어업 확산 교육비 △자율관리어업 운영비(홍보물 제작 등) 등의 항목으로 69억 7,200만 원 내외의 정부 예산을 매년 집행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율관리어업과 자율관리공동체를 조직, 운영하고 있는 자율관리어업연합회를 위해 쓰일 예산이 한국수산회라는 또 다른 민간단체를 통해 집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수부 예산 중 자율관리어업 활성화 지원비(8억 1,900만 원)는 한국수산회 관리비, 직원 인건비 등으로 지출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자율적이어야 할 조직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옥상옥(屋上屋)’을 둔 뒤 ‘옥상옥’ 관리비와 직원 인건비로 국민세금인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자율관리어업 활성화 지원을 위해 한국수산회가 운영하고 있는 자율관리 컨설턴트 제도 또한 어업인들로부터 퇴직 공무원 일자리 만들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자율적이어야 할 단체를 감독하다

한국수산회는 자율관리어업연합회를 관리하기 위해 경영지원본부 산하에 별도로 자율관리팀을 두고 있다. 자율관리팀 소속 직원은 해수부 퇴직 공무원 등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인건비만으로 매년 약 2억 원이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관리어업연합회는 해수부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지 못해 각종 사업비를 지자체 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가 자율관리어업 단체를 직접 지원하는 반면 해수부는 다른 경로를 통해 우회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국수산회라는 중간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

가장 자율적이어야 할 조직을 정부 주도의 타율적 조직으로 전락시키면서까지 혈세를 낭비하고 있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어업인에 대한 자율성 보장보다 평가, 교육, 인센티브 제공 등의 프로그램을 정부에 의존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옥상옥’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데 반해 자율관리어업공동체 유일의 전국 연합조직인 ㈔자율관리어업연합회는 회원들이 낸 회비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이마저도 비용이 부족해 명예직 회장단에 상근 직원 1명만이 전국 조직과 소통하며 연합회를 이끌어가는 기형적 영세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율관리어업육성법 제13조2항에 따른 실태조사, 교육, 훈련, 기술교류 및 홍보, 평가 등을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에 맡기지 않고 ㈔한국수산회에 위탁 운영·관리하고 있는 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수산회는 자체 운영비 확보와 동시에 교육, 해외 우수사례 답사자 선발, 평가위원회 사무국 운영 등을 하며 일선 어업공동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정작 육성돼야 할 자율관리어업 단체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자율관리어업 사업 체계도
자율관리어업 사업 체계도

 

자율관리어업 단체 의견 반영되지 않는 연구용역

해수부의 자율관리어업 단체 ‘패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제1차 자율관리어업 기본계획 연구가 지난해에 진행됐으나 연구기관이 당사자인 자율관리어업연합회 및 일선 어업공동체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어업인들의 의견을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져 나오고 있다. 어업인들의 의견이 아니라 해수부가 원하는 대로 결론을 도출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같은 연구기관에 ‘자율관리어업 종합계획 세부 실행방안’ 등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어업인들의 갈등이 폭발했다. ‘자율관리어업 종합계획 세부 실행방안’ 연구용역 기관이 「제1차 자율관리어업 종합계획」에 포함된 ‘자율관리어업의 지역거점센터 설치 및 운영 방안’ 의견 조사와 설명회를 진행하며 연합회와 시·도지부에 알리지 않고 어업인들을 모아 진행하려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 결국 자율관리어업연합회와 공동체가 설명회 보이콧(boycott)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자율관리어업 육성 종합계획에서는 자율관리어업법에 따라 동·서·남해, 제주권 등 지역별 거점센터를 설치해 종합적 지원 기관으로 육성해 자율관리어업 공동체를 체계적으로 지원, 관리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자율관리어업 단체 건너뛰는 이유는?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해양수산팀 변호사는 “자율관리어업법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민간단체의 역할로 보인다. 자율관리어업법은 민간단체의 종류를 명시하면서(제2조), 민간단체가 실태조사, 교육훈련, 기술교류 및 홍보, 활동실적의 평가와 같은 정부 업무를 수탁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제13조). 자율관리어업의 속성상 공동체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한 민간단체들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에서 법률이 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강 변호사는 “자율관리어업의 재도약을 위한 법적 근거와 방향이 제시된 만큼 해양수산부와 자율관리어업연합회 등 민간단체의 활약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해수부 관계자는 “기재부도 민간단체 직접 지원은 줄이고 있는 추세다”라며 “예전에 자율관리어업연합회 전국대회를 직접 지원한 적 있었는데 정산이 제대로 안 돼 조직을 갖추고 있는 한국수산회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자율관리어업연합회 관계자는 ”우리도 수산회만큼 지원해주면 조직을 못 갖출 일이 뭐 있느냐. 지원을 받지 못하니까 조직을 갖추지 못하는 것 아니냐.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해수부 관계자는 “한국수산회 위탁사업으로 자율관리 성공사례 현장교육, 전국대회 개최 등이 있는데, 연합회의 자율성 및 조직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통해 연합회를 운영할 재원 마련 등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관리감독단체는 지원하면서 정작 지원받아야 할 어업인단체에는 자구책을 구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율관리어업법 제정을 계기로 자율관리어업연합회를 중심으로 전체 자율관리어업의 성과를 제고하고 확산시킬 사업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옥상옥’에 위탁된 지원사업

해수부 내에서도 담당자에 따라 입장에 차이가 있다. 2015년 <현대해양> 10월호에서 당시 수산자원정책과장은 기고문을 통해 “자율관리어업의 근본 목표인 어업인이 중심이 되는 자원관리 체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어업인이 정책 수립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상향식 어업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의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율관리어업이 어업인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어촌사회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어업인의 삶이 보다 더 풍족해지는데 기여하는 어촌의 혁신운동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계획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수산계 한 인사는 “정부는 여전히 어업인을 정책의 파트너라기보다는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강해 자율관리어업 정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2020년 자율관리어업육성법이 제정돼 2021년 2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법 목적에 따른 어업인 자율이 보장된 새로운 사업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산계 인사는 “작년에 제정된 자율관리어업 취지에 맞게 자율관리어업 지원사업의 주체가 자율관리어업연회와 각 지부가 되도록 사업 주체를 변경해야 한다”며 “명분 없는 ‘옥상옥’에 위탁된 자율관리어업 활성화 지원사업을 자율관리어업연합회로 이관하고 지역거점단지 사업 또한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와 연합회 지부에 위탁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자율관리어업 전국대회
지난 11월 29일 열린 자율관리어업 전국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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