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해 채낚기어선 오징어잡이 현장-집어등 밝혀 밤새 잡아야 하는 ‘금징어’
근해 채낚기어선 오징어잡이 현장-집어등 밝혀 밤새 잡아야 하는 ‘금징어’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11.17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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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선원 문제 등 어려움 많아
사진=박종면 기자

[현대해양] 생물 오징어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 ‘오징어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때마침 동해안에서 모처럼 살오징어가 많이 잡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드라마 제목과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국민에게 친숙한 대중성 어종 오징어는 근해 채낚기어선이 주로 어획한다. 오징어는 회유성 어종이라 채낚기어업은 오징어 회유경로에 따라 강원도 동해에서 전남 서해안까지 사실상 연간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이뤄진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오징어 최대 생산지는 울릉도 인근 해역이다. 지난달에는 포항, 경주 근해에도 오징어 어장이 형성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징어 조업은 주로 야간에 이뤄진다. 그런데 야간조업을 위해서는 낮부터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10월 하순, 기자가 달려간 곳은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 이곳 근해 채낚기어선들은 오징어잡이를 위해 통상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출항한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10여 분 쏟아지던 비가 조금 잦아들자 근해 채낚기어선 선장들과 선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자는 29톤짜리 근해 채낚기어선 ‘도령호’에 승선키로 했다. 32톤, 51톤 등의 채낚기어선 사이에 정박한 도령호에 오르자 선주이기도 한 이성용 선장이 기자를 맞는다. 이 선장은 우리 나이로 50세. 이 지역에서 가장 젊은 선장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에 이어 23세부터 선장을 하고 있다.

오늘 조업지는 감포 근해. 남쪽으로 내려간다. 8노트(knot), 즉 시속 14.8km에 해당하는 운항속도로 2시간 남짓 항해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선장이 머무는 공간인 조타실은 3.3㎡(1평) 남짓 될까 말까다.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공간이 선장의 사무실이자 휴식공간이다. 여기에 어군탐지기, 음파탐지기, GPS 컬러 플로터, 전자해도 플로터, 레이더, 무전기 등 항해계기로 꽉 차있다.

 

배는 꼴랑거려도

이 선장은 파도만 높지 않으면(그의 표현대로 ‘꼴랑거리지 않으면’) 매일 조업에 나선단다. 이렇게 하면 오징어 조업은 연간 250일 가량 가능하다고. 지난 봄에는 태안 신진도에서 조업을 했다고 한다. 근해 채낚기 어선이 포획하는 주 어종은 살오징어, 갈치 등이다.

근해 채낚기어업은 낚싯줄에 낚시 여러 개를 달아 자동 조획기(조상기)와 물레처럼 생긴 수동 조획기를 이용해 오징어를 낚거나 채어서 잡는다. 자동 조획기는 낚시줄이 자동으로 수심 100m 이상 깊이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에 오징어가 낚시에 걸리는 원리를 이용한다.

수동 조획기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조획기를 돌려서 오징어를 채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단순 하강-상승을 반복하는 자동 조획기보다 사람 손으로 움직이는 수동 조획기가 좀 더 많이 낚는다고 한다. 미끼도 필요 없는 빈 낚시다.

어장으로 가는 동안 배가 많이 흔들린다. 비가 온다. 다음날은 기상이 더 좋지 않아 조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선장은 전망했다.

 

근해 채낚기어선 도령호가 어장을 찾아 항해하고 있다.
근해 채낚기어선 도령호가 어장을 찾아 항해하고 있다. 사진=박종면 기자

외국인 선원 뒷거래 끊이지 않아

어탐기를 보며 오징어 어장을 찾아가는 동안 이 선장은 외국인 어선원들의 뒷거래, 속칭 ‘뒷방’에 대한 고민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외국인 선원들이 어획한 수산물을 빼돌린 다음에 이를 몰래 시장에 내다판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뒷방’으로 얻는 이득만큼 수당을 별도로 지급하는데도 뒷거래가 끊이지 않는다고. 이 선장

도령호 이성용 선장이 선원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도령호 이성용 선장이 선원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종면 기자

은 뒷방 방지용 수당을 계속 지급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선장이 보여주는 장부에는 법으로 규정한 최저임금을 포함한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 등 급여 명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인권단체에서 주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유린 등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한다. 급여, 숙식비, 부식비 등을 계산하면 외국인 선원들에게 투자되는 비용이 적은 돈이 아닐 듯했다.

외국인 선원에 대한 고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 선장은 “외국인 노동자 최대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인데 그 전에 도망가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자망어선 등에 승선하면 더 많은 임금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비자 만료 전에 대부분 임금이 많은 쪽으로 옮겨간다”고 고발했다. 그래도 이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선원 구하기가 힘들기에 외국인 선원들의 이탈과 뒷거래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인권단체 등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장 등을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집어등은 밝았지만

어느덧 시각은 오후 2시 30분을 가리킨다. 도령호가 약 두 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동경 129도 47분 64초, 북위 35도 48분 16초 경주 감포 근해다. 선장이 부저를 울리자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선원들이 나온다. 먼저 나온 선원이 뱃머리에서 물돛(Sea-anchor)을 내린다. 여기에 묘박(錨泊, anchoring)한 뒤 내일 새벽까지 조업을 할 계획이다. 다른 선원들이 선박 양측 조획기를 펼치고 낚시줄을 풀며 기기를 점검한다. 채낚시줄을 일정 수면까지 풀어준 뒤 다시 감아올리는 작업이 자동 반복적으로 이뤄지게 한다.

채낚기 어선은 오징어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주광성(走光性)이란 점을 이용해 어획한다. 밤에 집어등(集魚燈)을 켜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낮부터 낚시줄을 수면 아래로 내리는 이유는 무얼까? 미리 자리를 잡고 조획기를 가동하면서 조금씩 잡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집어등을 켜고 본격 조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투묘를 했지만 여전히 배가 좌우로 많이 흔들린다. 비도 추적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선장이 채낚시를 철수하라는 방송을 한다. 다른 어장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근처에 유자망어선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그물과 낚시가 엉킬 우려가 있어 피해간다는 것이다.

다시 항해를 시작해 한 시간 가량 달렸다. 포항 양포 근해다. 오늘 밤새 여기서 조업을 할 요량이다. 선원들이 자동 조획기 줄을 내리고, 뱃머리 쪽에 롤러가 달린 조획기의 받침대를 뱃전에 설치한다. 그리고 손으로 얼레(자새)를 돌려 낚시줄을 내린다. 어느새 오후 6시 가까이 되자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집어등이 켜졌다. 선박 상부 조타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즐비한 집어등의 광량이 대낮처럼 밝은 것은 물론 뜨거운 열을 발산한다. 어선원들이 수동 조획기 앞에 앉아 얼레를 돌린다. 자동 조획기가 위 아래로만 움직이는 반면 수동 조획기 채낚시는 좌우로도 움직이기 때문에 오징어가 걸려들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진=박종면 기자

밤새 이어지는 조업

조획기가 돌아가고 곧바로 오징어가 올라올 것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빈 낚시만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유는 월명기(月明期)에 있다. 보름달이 뜨는 음력 15일 전후로 달빛이 너무 밝아 오징어가 집어등 불빛에 크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등어 등과 마찬가지로 오징어도 월명기에는 어획이 쉽지 않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기상이 나쁠 때도 조업이 어렵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조업할 수 있는 날이 1년 365일 중 며칠 되지 않을 듯. 이 선장은 “오징어는 불연속 회유성 어종이라 어느 해역에서 어군이 형성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월명기 때 또한 오징어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도령호 주변을 제외하곤 사방이 깜깜해졌다. 저 멀리 집어등을 밝힌 고깃배가 두어 척 보이기도 한다.

첫 어획이 수동 조획기에서 이뤄진 뒤로 드문드문 오징어가 걸려 올라온다. 그 사이 자동 조획기가 멈추는 사고가 벌어졌다. 얼레를 돌리던 선원이 원인을 찾아 바로 손을 쓴다.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잡은 오징어가 대야에 모이면 이를 수동 조획기를 돌리던 선원이 활어창으로 옮긴다.

선원들이 잡은 오징어를 어창에 옮기는 동안 선장은 조타실에서 무전을 한다. 채낚기협회 사무국장인 이 선장은 무전으로 선장을 한 명 한 명 불러 위치를 파악한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至難)한 오징어조업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사진=박종면 기자

잠은 언제 자나

새벽 2시쯤 되자 선장이 선원들에게 귀항 준비 신호를 보낸다. 이제 한시라도 빨리 구룡포항에 위치한 수협 활어 위판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경매는 5시 30분부터지만 3시에 입항했다. 입항 순서에 따라 상장(上場) 순서가 달라지고 상장 순서에 따라 낙찰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우선이란다. 조업하는 어선은 30척 가량 되는데 이를 구매해가는 상인(활어차)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하루 평균 1만 5,000마리~2만 마리가 이곳 구룡포수협 활어 위판장에서 거래된다. 그런데 어선 1척당 1,000~1,500마리를 잡는다고 보면 10~15척이 활어로 위판하면 나머지 배는 선어로 위판해야 한다는 것. 당연히 선어는 활어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된다. 이날 도령호는 약 12시간 조업 끝에 640마리를 상장했다. 낙찰가는 마리당 3,600원. 바로 앞에 몇 분 먼저 입항한 선박 오징어보다 200원 낮게 낙찰됐다. 12시간 조업한 것치고 초라한 금액이다.

도령호의 경우 선원임금, 유류비, 얼음값, 집어등 교체비, 선박수리비, 선원 부식비 등 연 5억 원 가량의 경비를 지출한다고 한다. 이중 선원 구하기와 관리에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선원을 더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니 밤새 조업했기에 이 선장은 잠 잘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잠은 언제 자느냐고 물었더니 위판장에 정박하고 조타실 바닥에서 2시간 잤다고 답한다. 수산물 가격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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