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6 -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6 -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6.13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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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동화를 통해 아이들의 심성을 어떻게 순화시켜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 이를 위해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큰 과제였다. 그런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법의 하나로 향파 선생은 전래되는 설화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 작품 중의 하나가 「소가 된 게름뱅이」(《새벗》, 1964, 4)이다.

 

어느 마을에 게으름보가 살았는데 아무리 아내가 권해도 도무지 일은 하지도 않고 밤낮 빈둥빈둥 놀면서 잠이나 실컷 자는 한량이었다. 매일 드르렁드르렁 늦잠에 코를 골고 있기에 아내는 큰 소리로 불렀다.

“아, 여보! 이렇게 잠만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 거유,” 이런 아내의 짜증 소리에 게름뱅이는 비로소 눈을 뜨고는 한다는 말이. “난 하루밤 하루낮을 자도 잠이 모자라서 꼭 죽겠는데 왜 또 일어나라고 이 성화를 대는 거요?”라고 했다.

하루는 이 게으름뱅이가 아내의 성화에 못 견디어, “쓸데없는 소린 말구서 어서 내 갓이나 내어 놓우!”라고 다그쳤다. 아내는 의아하여 물었다. “밭매러 가는 사람이 갓은 왜요?” 그러자 게으름뱅이는 “누가 밭매러 가려고 갓을 내놓으래나? 출입을 하려고 갓을 내노라는 거지.”했다. 그러자 아내는 “집안 살림살이가 하도 요 꼴이 돼 있으니까 돈이라도 변통하려구 나가시려나 보지?”라고 안도했다. 그런데 게으름뱅이는 “누가 돈을 변통하러 가! 집구석에선 하도 여러 소리가 많으니까 실컨 잠이나 잘 수 있는 집을 찾아가려구 그러는 거지.”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는 주는 갓을 받아 쓴 게으름뱅이는 후다닥 집을 뛰쳐나갔다. 그는 언덕 밑에 자리한 초가집으로 찾아 들었다.

그 집으로 가까이 가 보니,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똑딱똑딱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 하얀 노인 한 분이 소가죽을 깔고 앉아서 나무때기로 무엇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궁금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노인에게 물었다.

“뭘 만들고 계신가요?” “쓸 데가 있어서 소머리를 만들고 있는 중이요.” “소머리를 어디다 쓸려구요?” “허, 당신은 아직 모르는군! 이걸 쓰고 있기만 하면 손을 움직거리지 않아도 편안히 먹고 살 수가 있는 거라오.” “힘들여서 일을 안 해도 가만이 누워서 먹을 수가 있다 그런 말씀인가요?” “그렇지.” “잠도 실컨 잘 수가 있구요?” “그렇지 그렇지! 내 말이 못 미덥거든 지금 당장 이걸 한번 써 보시구료.” 이 말을 들은 게으름뱅이는 좋아서 방으로 뛰어들어가 그 소머리를 써 보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게으름뱅이는 “에구 에구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그건 소가죽이야. 같이 둘러써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순간 게으름뱅이는 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노인은 이제는 누워서 놀고먹을 수가 있는 우리 집 외양간으로 가자고 하고는 문밖으로 끌어내 코를 꿰고 고삐를 걸어 주었다.

완전히 소가 되어버린 게으름뱅이는 그 노인에 의해 소 시장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어쩔 수가 없어서 노인이 모는 데로 가면서도 소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그 내가 어쩌다가 요 모양이 됐을까. 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말해 줘야지. 노인을 등에 태운 소는 시장으로 나와 팔려가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소 시장으로 소를 몰고 간 노인은 어떤 장꾼 한 사람에게다 소를 사라고 청했다. “그거 팔 거요?” “물론 팔려고 끌고 왔죠.” “에잇 그놈 살도 쪘다!” 딱! 하고 궁둥이를 때리는 바람에 소는 약이 바짝 올랐다. 그래서 아얏! 하고, 싫은 소리를 해 주려다가 그만 웅웅웅웅 하는 소리만 하고 말았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아얏’ 소리를 하려고 한 건데, 왜 웅웅웅웅 하는 소리만 나는지 하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있자. 이 사람한테다 내가 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보자. 그런데 뭐라고 말을 하면 나를 동정해서 사람으로 되살아나게 해 줄까! 옮지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좋겠지! 여보십시오. 나는 소가 아니라 당신네들과 같은 사람이요 이놈의 늙은이한테 속아서 이 모양이 됐으니, 제발 좀 내가 쓴 이 소머리를 벗겨 주시오.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 그럼 어디 말을 한번 해 보자.’하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웅웅웅웅… 웅웅웅웅….” 소리로만 들렸다. 그러자 “이놈의 소가 왜 이렇게 울고 야단야.”라고 하면서, 소 주인인 노인은 아플 만큼 소의 궁둥이를 갈겨 주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웅웅웅웅!”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흥정 끝에 소는 팔렸다. 그러자 노인은 소를 산 사람에게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었다. 이 소를 부리는 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소.” “뭔데요?” “절대로 무밭 가까이론 가지 말아야 하오. 만일에 무를 먹으면 죽는 수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오.” 이 말을 듣고는 소를 산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를 산 주인은 집에 오자마자 “지금 당장 부려 봐야지. 이려! 이놈의 소!” 주인은 소의 엉치를 탁! 때렸다. “그럼 가까운 채마밭부터 갈아 보시죠!” 아내의 권하는 말에 남편도 동의를 했다. “그게 좋겠군! 이려! 이놈의 소가 이 안으로 안 들어가구서! 가만있어! 이 멍에를 끼우고! 쟁기 줄을 매구!” 이때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속으로 기가 막혔다. 어쩌다가 내 팔자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한탄하며 주인이 제아무리 일을 시키려 한다 하더라도 기어코 말을 들어주지 않으려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인은 주인대로 고되게 부려 먹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목에다가 멍에를 걸고는 눈에서 불이 번쩍 나도록 등줄기를 후려갈겨 주었다. “자 이놈의 소야. 한번 당겨 봐라 쯧! 쯧!” 소는 아프고 약이 콱 올랐지만 억지로 참았다. “네가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당겨 주나!” 그러니 소 주인은 “이놈의 소가 왜 이 모양으로 뻣뻣하게 섰을까!” 딱! 하고 회초리로 또 갈겼다. 계속 맞고만 있는 소는 너무도 원통해서 울었다.

“아이구 죽겠다. 이렇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고! 이렇게 힘든 쟁기를 당기게 하고! 이렇게 아프도록 회초리로 볼기를 때리구!” 그러나 주인은 역시 사정없이 회초리로 갈겼다. 그래도 소는 일어나지는 않고 울고만 있었다. 소는 또 속으로 빌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줍시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소가 되어 버리다니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아침에 내 집안 사람이 밭갈이를 하러 나가라 할 때에 나갔다면 아무 일도 없는 걸, 내가 그만 놀고먹고 잠만 자려다가 이 꼴이 되고 말았지. 그렇지만 이제는 한탄을 해 봤자 소용이 없어! 죽을 테야! 하나님 나를 어서 죽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하는 중에 주인이 광 안에 무청이 있다고 하는 말을 엿들은 소는 외양간을 뛰쳐나가, 광 안으로 들어가서 무를 버썩버썩 깨물어 먹었다. 그 순간 소가 사람으로 다시 환생했다. 게으름에 대한 업보가 이처럼 강렬한 이야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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