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에서 허들링으로 확대한 극지전략
퍼스트 펭귄에서 허들링으로 확대한 극지전략
  • 강성호 극지연구소장
  • 승인 2021.05.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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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황제펭귄은 펭귄들 가운데 가장 추위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기본적인 방한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혼자서 영하 수십 도의 남극에서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황제펭귄은 ‘협력’을 택했다. 수천 마리가 한 데 모여서 서로 몸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는 식이다. 모임 중앙의 온도는 영상 30도를 넘기기도 한다. 이 비법의 핵심은 희생과 혜택을 공유하는 데 있다. 관찰 결과, 펭귄들은 한 자리에만 계속 머물지 않았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서로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남극에서 살아남은 황제펭귄의 생존비법 ‘허들링’이다.

대한민국 극지 연구도 펭귄의 지혜를 배우려고 한다. 추위를 함께 이겨낼 동료를 초대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러면 남극과 북극에 있는 3곳의 대한민국 기지, 얼음 덮인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활용도 쉬워진다. 자연과학을 넘어 예술과 정책 등으로 방문 목적도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수용 인원이 각각 수십 명에 불과해 늘어날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극지의 바다를 누비며 활동할 수 있는 수단이 아라온호 한 척뿐이라는 점은 특히 더 아쉽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등 자리를 늘리기 위한 작업과 동시에 제한된 기회를 공정하게 나누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이전에는 사실상 극지연구소를 통해서만 극지 출입이 가능했지만, 극지행 티켓 발급(?) 업무는 점차 외부로 이관될 예정이다. 올해 말, 아라온호의 남극행부터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극지연구소는 대한민국 극지연구의 퍼스트 펭귄이었다.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해 한글로 된 이름을 붙였고, 당뇨치료제, 혈액 보존제 등 의약품으로 활용할 만한 기술도 확보했다. 남극 내륙을 향한 우리만의 길도 개척 중이다. 퍼스트 펭귄 덕분에 다음 펭귄들은 바다로 뛰어들 때 두려움을 덜 수 있다고 한다. 극지연구소는 극지에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생존 규칙을 배웠고, 살아남았다.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는 극지를 꿈꾸는 이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극지에서 대한민국 ‘허들링’의 가장 바깥에는 극지연구소가 서 있을 것이다.

극지는 지금도 빠르게 녹고 있다. 2007년 이후 사라지는 남극 빙하는 연평균 1,940억 톤으로, 녹는 속도가 그 이전보다 4배 이상 빨라졌다. 여름철, 북극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은 40년 전과 비교해 40% 넘게 줄었다. 사라진 얼음은 한파나 폭염 같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찾아온다.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버렸다.

지난 3월, 극지활동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극지 활동의 필요성이 늦게나마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지만 극지의 변화는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린 얼음은 잠시나마 지구를 시원하게 만들고, 얼음이 사라진 바다는 새로운 뱃길이 되기도 한다.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퍼스트 펭귄에서 허들링으로 확대한 대한민국의 극지 활동 전략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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