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례없는 비 폭탄 맞은 남해안…“수십 년 홍합 양식했지만 이런 피해 처음”
[르포] 유례없는 비 폭탄 맞은 남해안…“수십 년 홍합 양식했지만 이런 피해 처음”
  • 정상원 기자
  • 승인 2020.08.20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홍합·굴 양식장

[현대해양] 길고도 긴 장마였다. 매년 여름 찾아오는 장마철이지만 올해는 최대 54일간 비가 내리면서 1973년 이래 가장 긴 장마라는 기록이 세워졌다. 누적 강수량도 역대 두 번째로 많아 전국 곳곳에 큰 사고를 몰고 오기도 했다.

▲ 오랜 장마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녹아버린 홍합
▲ 오랜 장마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녹아버린 홍합

 

비 폭탄은 남해안에도 유례없는 피해를 입혔다. 쏟아진 빗물이 바다 표층 염분 농도를 낮춰 빈산소수괴(산소가 부족한 바닷물 덩어리)를 형성한 것. 이로 인해 남해안 진해만 해역 일대에서 홍합, 굴, 멍게, 미더덕 등을 주로 양식하는 어장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가 됐다. 경남도청은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진해만 해역 양식장 2,229ha 중 1,110ha(49.8%)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경남도 전체 양식장인 5,702ha를 19.5%를 차지하는 면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현재 피해금액은 약 73억 원 정도로 산정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의 양식장에도 엄청난 피해가 따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에서 전남 다음으로 넓은 홍합과 굴 양식어장을 갖고 있는 해역이기 때문.

지난달 13일, 기자는 구산면 구복 어촌계에서 홍합 양식 어업인 임채봉씨를 만났다. 임씨는 부두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오래된 수하연을 정비하고 있었다. 올해로 70세라는 임씨는 “이번 장마 때문에 홍합 양식이 죄다 엉망이 됐다”며 힘든 심경을 털어놨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해수 상태가 악화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경남 바다 전역이 난리다. 홍합도 홍합이지만 (물)고기들도 죽어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 수하연을 정비하고 있던 홍합 양식 어업인 임채봉씨. 그는 경남 바다 전역에 발생학고 있는 양식장 피해를 우려했다.
▲ 수하연을 정비하고 있던 홍합 양식 어업인 임채봉씨. 그는 경남 바다 전역에 발생학고 있는 양식장 피해를 우려했다.

코로나19로 홍합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데, 장마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합이 폐사하는 지경에 이르자 한숨만 나온다는 임씨. 그는 “계속되는 코로나19때문에 장사도 안되고 있는 걸로 안다. 더군다나 장마로 경남 바다 전역이 난리가 났으니 별 수 있겠나”라며 체념한 듯 말했다.

다음날인 14일, 기자는 구산면 일대에서 굴과 홍합 양식장을 한다는 어업인 박철민씨를 만났다. 오늘은 홍합 양식장 피해조사를 나갈 예정이라는 박씨는 출항을 위해 정박지에 매어둔 어선 줄을 풀며 “양식을 몇 십 년간 해왔지만 장마로 인한 폐사 피해는 처음 있는 일이라 당혹스럽다”며 혀를 내둘렀다.

▲ 구산면 해역의 양식장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나와있던 조사 담당자들
▲ 구산면 해역의 양식장 피해를 조사하는 이들.

기자와 함께 어선을 타고 약 10분 달렸을까. 양식장이 부근에서 박씨를 기다리는 피해 조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상남도 수산안전기술원, 창원시 마산합포구청 그리고 수협에서 나온 담당자들은 오전 일찍부터 구산면 일대를 돌며 양식장 피해를 살피고 있었다.

계속되는 조사 작업으로 담당자들은 분주해 보였다.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그들은 곧바로 박씨와 어느 지점에서 수하연(홍합이 매달려 자랄 수 있도록 수중으로 늘어뜨린 줄)몇 개를 확인해 볼 것인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양식어장이 워낙 넓다 보니 수십 킬로그램의 수하연을 일일이 들어서 확인하기란 불가능한 일. 그들은 바닷물의 흐름 등을 고려해 두세 개의 수하연을 들어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어선을 타고 홍합 양식장 초입으로 들어서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구청 관계자가 “여기껄로 올려보자”고 하자 박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크레인 조종사가 갈고리를 바다로 던져 놓고 크레인을 작동시키자 갈고리에 걸린 수하연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홍합을 보니 처음에는 크게 이상한 점이 없다 싶었는데 좀 더 들어 올리자 곧바로 심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조사 담당자들이 수하연의 가장 아랫부분을 배 위로 들어 올렸다. 홍합 패각이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다.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알맹이가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실제로 속이 텅 빈 홍합 껍데기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홍합 양식장 피해 상황
▲ 홍합 양식장 피해 상황

더 자세히 살펴보니 패각까지 녹아 홍합의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부분도 상당했다. 담당자들이 수하연을 한 줄씩 살펴보고는 “위쪽 빼고는 다 죽었네. 80%는 다 녹았어”라고 확정지었다.

수협 관계자는 “홍합은 죽으면 알맹이가 다 떨어지고, 알맹이가 사라지면 껍데기도 녹아 없어진다. 오늘로 4일째 조사를 진행 중인데 지금 홍합 수하연 아래쪽으로 살아남은 홍합이 아예 없다”며 심각성을 설명했다.

▲ 껍질까지 녹아 홍합이 붙어있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수하연.

담당자들이 피해 정도를 파악하며 박씨의 얼굴을 살핀다. 당장 다음 달에 알이 가득 찬 홍합을 수확할 것이라 기대감을 안고 있었던 박씨는 악취만 풍기는 수하연을 확인하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듯 이내 고개를 떨궜다.

구청 관계자가 “일단 여기는 폐사율 80%라고 기록하고... (수하연) 하나 더 들어보러 이동합시다”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어선을 타고 양식장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또 한 번 갈고리를 내리고 수하연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홍합이 올라오자마자 강한 악취가 진동했다. 

구청 관계자가 “아까보다는 좀 나은데... 그래도 밑에 다 죽었네”라고 말하자 A씨도 못내 본인의 수하연을 한 번 더 확인하더니 “한 30%는 살았나...”라며 혼잣말을 했다.

담당자들이 수하연 줄 당 살아있는 홍합을 세어보고는 “이쪽은 폐사율 75%로 보면 되겠다”라고 말한다. A씨의 답답한 심정을 파악하고는 구청 관계자가 “한 줄 더 들어볼까요?”라 물었지만 A씨는 이제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확인할 만큼 했으니 이제 돌아가겠다 했다.

▲ 홍합 피해를 살피는 어업인 박철민씨

수협 관계자는 조사원들과 함께 또 다른 해역으로 이동해 양식장을 좀 더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그는 “구산면 일대에 평균 홍합 폐사율이 75% 되는 걸로 확인된다. 80% 죽은 곳도 있고 심하면 아예 다 죽은 곳도 있다. (바다) 물살이 트인 곳은 피해가 덜 하지만 전반적으로 구산면 일대에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며 “그래도 폐사율 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 해역을 돌며 정확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박씨는 “장마로 난생 처음 이런 피해를 봤는데 이제 또 날이 더워지니 적조로 인한 피해도 걱정된다”라며 힘든 심경을 털어놨다.

우선적으로는 피해 조사가 잘 마무리돼서 정부가 어업인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길 바란다는 박씨. 남해안 지역 양식 어업인들의 한숨이 빠른 시일 내에 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