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이 인류문화에 미친 영향과 중요성 설파
수산업이 인류문화에 미친 영향과 중요성 설파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3.09.12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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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KNFC 국제수산심포지움

 


어업, 3만년 전 쯤 시작…어류, 전통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식량

 

수협중앙회와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수산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3회 KNFC 국제수산심포지움에서 주목받는 발표가 있었다. 세계 최대의 수산물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수산물 소비패턴 변화’를 전망한 다롄해양대학교 빠오 터리껀바이이(bao teligenbaiyi) 교수의 발표다. 빠오 터리껀바이이 교수는 중국의 수산물 생산, 소비, 수출입 및 가격 변화를 살펴보고, 수산물 유통 구조의 변화와 수산물 소비 구조 변화를 통해 중국의 수산물 소비 특징을 파악하고, 미래 수산물 소비패턴을 전망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조연설자로 나선 세계적인 인류학자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캘리포니아대)의 ‘수산업이 인류 문화에 미친 영향과 중요성’이라는 주제 강연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8월~9월KBS 한국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슈퍼피쉬’에서 수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던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는 수천 년에 걸친 어업과 어민들의 변천사, 특히 선사시대 생계형 낚시에서 근해어업으로의 발전과정, 양식어업으로 확장되기까지 수산물이 인류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를 소개했다. 이를 통해 인류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 미래 산업화로 도약하는 수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는 기회가 됐다. 브라이언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의 기조연설과 빠오 터리껀바이이 교수의 주제발표를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기조연설
수산업이 인류에 끼친 영향과 중요성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

 

 

▲ 브라이언 페이건 캘리포니아대 교수 <사진제공=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어업을 해왔다. 기록상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원양어업은 참치어업을 하던 동티모르의 한 동굴 거주 부락에 의한 것으로 4만5,000년 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대부분을 살펴보면 인류는 해안에서 낚시하고, 산란을 위해 되돌아오는 연어를 잡고, 해초를 따고, 갯벌과 습지에서 채집하며 살아왔다. 8,000년 전 북유럽에 위치한 북해가 육지였던 시대에 그곳은 작살, 통발, 갈고리 등을 사용해 얕은 바다에서 낚시하거나 통나무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그러나 자연적인 온난화 현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대륙붕과 북해가 물에 잠겼다. 사람들은 통나무배와 같이 간단한 배와 널빤지를 엮은 단순한 배를 이용해 캘리포니아, 일본, 알류샨 열도 등과 같은 원양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계형 어업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는 있지만 5,000년 전 도시가 생겨나고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중심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지중해에서 어업을 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은 엄청난 규모의 양식어업을 시작했으며, 이는 오늘날 매우 보편화되었다.

2000년 전 로마인 대규모 양식 시작

근해 어업은 천천히 발달했다. 서남태평양이나 지중해 같이 파도가 높지 않은 곳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서양 쪽에서는 폭풍우와 바다괴물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서 미처 발달하지 못했다.

생선의 수요는 종교적인 이유로 크게 증가했다. 7세기 이탈리아의 성 베네딕스 누르시아는 수도승들의 생활 및 식습관을 규제하는 새로운 회칙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수도승들과 모든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축제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11세기까지 1년의 절반이 종교적 축제일이었다. 이에 따라 육류 대신 생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됐다.

그런데 담수어만으로는 생선의 수요증가를 충족시키지 못해 북유럽에서는 청어를 잡아 소금에 절인 뒤 큰 통에 담아 파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청어어업은 규모 있는 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그러던 중 현재까지도 그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어의 북해 이동에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고 여기에 청어 남획까지 더해지면서 대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원양에서 잡은 대구는 기름기가 덜하고 건조와 염장이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노르웨이 북부 지방 사람들은 말린 대구와 염장대구 교역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그린랜드 및 북미 대륙으로 항해를 나갈 때 염장 혹은 건조시킨 대구를 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 

15세기 무렵, 대구의 수요가 크게 늘자 북해 어민들은 아이슬란드 남쪽 어장에서 대구를 남획했다. 1,500년까지 대구잡이 어민들은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북대서양 대구 교역은 상당히 이윤이 좋았으므로 뉴펀들랜드 지역에서는 연승어업과 연안 가공이 성행했고 대구 어자원이 급격히 줄어들게 됐다.   

기독교인 성 금요일에 육류 대신 생선 소비

프랑스와 포르투갈 어민들은 그랜드 뱅크에 어선을 정박시키고 연승어업을 했다. 그들은 대구의 크기가 작아지고 큰 생선이 줄어들면서 평저 소형어선에서 조업을 했다.  

북대서양 대구 어업은 17세기 무렵 이미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1880년 경 대구 수요 급증으로 인해 트롤어업이 도입돼 해저면이 훼손된 것이다. 1990년경에 이르러서는 뉴펀들랜드와 그랜드 뱅크 지역 어업이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캐나다 정부는 대구 조업을 금지시켰다.

20세기에는 대규모 도시와 수억 명의 수산물 소비자들이 생기면서 남획이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이는 어획 및 조업의 규모가 산업화되며 더욱 심화됐다.

한편 참치어업은 수천 년간 인류에게 중요한 어업이었다. 수백 년 간 스페인과 지중해에서 조업하던 참치어민들은 투망과 통발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해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참치어업은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많은 생선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분투했다. 크기가 큰 생선 보기가 힘들어지고 해저면을 지나치게 개발하면서 전통적 조업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조업법이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됐다. 전통적인 어업은 이제 많은 지역에서 그 지역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산물을 충분히 어획하지 못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인류는 항상 육류, 채소, 어류로 생명을 이어왔다. 우리가 바다와 수산업으로 무엇을 해왔는지는 역사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26억 인구는 단백질 섭취를 수산물에 의존하고 있다(이 인구는 중국과 인도 인구를 합친 수이자 전세계 인구의 반이 넘는 수이다).

수산물은 어종이 점점 줄어들고 어획이 어려워지면서 가격도 더욱 상승했다. 인류는 지금까지 바다에서 그 수요를 충족시켜왔으나 이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 바다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식량은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지구 온난화는 우리 선조들이 맞서왔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양산했고 이런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산물의 지속 가능성과 보존을 위해 깊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주제발표
중국의 수산물 소비패턴 변화
빠오 터리껀바이이 교수


▲ 빠오 터리껀바이이 중국 다롄해양대학교 교수
FAO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중국 수산물 생산량은 6,622만 톤(세계 수산물 생산량의 37%)으로, 이 중 어획 생산량은 1,605만 톤(세계 어획 생산량의 17%), 양식 생산량은 5,017만 톤(세계 양식 생산량의 60%)이다. 1989년 중국 수산물 생산량은 1,306만 톤으로 일본(1,191만 톤)을 대신하여 세계 1위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압도적인 생산량으로 중국은 세계 최대 생산국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수산물 생산량은 5,907만 톤으로, 이 중 중국 내 해면 어획 생산량 1,267만 톤(비중: 21%), 원양어업 생산량 122만 톤(2%), 해면 양식 생산량 1643만 톤(27%), 내수면 어획 생산량 229만 톤(3%), 내수면 양식 생산량 2,644만 톤(44%)이다.

FAO통계에 따르면, 2009년 중국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31kg으로, 전세계 평균인 12.5kg을 초과함. 중국의 수산물 소비 총량은 4,137만 톤이다. 2011년 중국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도시 14.62kg, 농촌 5.36kg으로 9.26kg의 차이를 보인다.

6개 이상 복잡한 유통고리 존재

198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수산물 수출량은 1991년과 1999년을 제외하고 모두 수입량보다 낮다. 그러나 수산물 수출액은 수입액의 2배 이상이다. 2012년 중국의 수산물 수출은 380만 톤, 189억 달러였으며, 수입은 412만 톤, 80억 달러이다. 중국은 세계 160개 국가로 수출하고 있는데 일본, 미국은 중국의 2대 수출 대상국이다. 한국은 4위에서 6위로 떨어졌으며, 점유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으로 수년 동안 안정적으로 증가하던 유럽으로의 수산물 수출량과 금액도 모두 하강했다.

수입은 101개 국가에서 하고 있다. 2012년 어분 수입은 124만 톤, 17억 달러이며 식용 수산물 수입은 147만 톤, 34억 달러다. 중국의 수산물 수출에서 양식 수산물은 지속적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주요 수출 품종으로는 참새우, 조개류, 장어, 틸라피아, 부세, 가재, 얼룩메기 등이 품질이 우수한 양식 수산물이다.

중국의 주요 수입 수산물은 대구(냉동,  대구간유 및 알 제외), 갑오징어와 오징어(냉동, 건조, 염장 또는 절임), 갈치(냉동), 가자미(냉동), 새우(냉동, 손질된 것), 고등어(냉동) 등이다.

수산물 생산가격은 1982년 867위안/톤에서 1992년 3,362위안/톤으로 상승, 다시 2002년 7,512위안/톤에서 2012년 15,316위안/톤으로 상승했다.

갈치는 중국의 대중적인 어종으로 가격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갈치 가격은 기타 해수면 어류 가격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해수면 어류 가격은 내수면 어류 가격의 기준이 된다.

도시 소비자의 경우 내수면 어류를 선호하며 잉어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내수면 어류에 속한다. 그러나 2002년부터는 초어보다 가격이 낮아졌다.

수산물 유통구조는 원산지에서 소비지역까지 적어도 6개 이상의 복잡한 유통고리가 존재한다. 이 중 생산자의 수입은 소비가격의 30% 밖에 되지 않으며, 유통고리의 수입이 소비가격의 45~55%나 차지한다.

수산물 소비관련 제도와 정책과 관련, 21세기 들어 중국에서 발생한 수산물 품질 안전사건은 국가의 이미지와 어업의 안정적인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에 손실을 가져와 전체적인 수산업에 위기를 초래했다.

수산물 소비구조 변화와 소비 전망

수산물 소비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면 중국은 10년간 수산물 소비 지출은 2.3배 증가했으며, 고소득 계층일수록 증가 속도도 1.5~3.2배 가량 빨라졌다. 중국의 수산물 소비구조의 변화 특징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수산물의 소비 순위 변화 △수산물 소비 고도화 및 다양화 △수산물 소비 보편화 추세 △도시화로 수산물 수요 증가가 그것이다.

중국의 수산물 소비 패턴을 전망하려고 4가지 인구지수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13.47억이라는 전체인구다. 중국의 1인당 GDP는 5,447달러(35,181위안)에 달한다. 수산물 소비에서 대만이 가장 소비를 많이 하는 지역이지만 수산물 소비는 30%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대륙의 소비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6.91억 도시인구다. 도시인구 증가는 수산물 소비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9년부터 도시인구는 중국 수산물 소비의 주력원이 되고 있다.

셋째 5.08억 3대 성장지역 인구다. 주장 삼각주 일대(광동), 장강 삼각주 일대(상하이, 장쑤, 저쟝), 보하이 일대(베이징, 텐진, 허베이, 랴오닝, 산동)은 인구 100만이 넘는 21개 도시 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0.5억 부유계층 인구를 들 수 있다. 중국은 0.5억명의 고소득 소비자(보스톤 컨설팅 발표)를 지니고 있으며 고소득 가구는 수산물 소비량이 매우 많고 확대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인터뷰 in 심포지움
브라이언 페이건 캘리포니아대 교수
“수산업 지속되지 못하면 자손들에게 재앙될 것”

 

 

▲ 브라이언 페이건 캘리포니아대 교수 <사진제공=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
세계적 인류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수협중앙회와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수산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3회 KNFC 국제수산심포지움 참석을 위해 지난달 27일 내한했다. 지난해 8~9월 KBS에서 방영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5부작 기획 다큐멘터리 ‘슈퍼피쉬’의 자문을 맡았고, 직접 출연해 수산업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심도깊은 설명을 했던 페이건 교수는 내한 인터뷰를 통해 “어업은 적어도 3만년 전 쯤부터는 분명히 시작됐고, 어류는 각 지역별 전통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식량”이라며 “다량의 어류가 채집됨에 따라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도시와 국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강조하며 “지속성이 결여된다면 후손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이건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교 고고학과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선사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1967년 이래 산타바바라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인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아프리카 남부의 옛 영국 식민지인 북부 로디지아(잠비아)에서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해 다양한 아프리카 역사를 연구하는 선구자로 명성을 얻었다. 고고학자 협회에서 수여하는 공익상과 미국 고고학 협회에서 수여하는 공교육상을 수상했으며, 학술지원단체인 구겐하임 재안의 특별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저서로는 『고고학 세계로의 초대』,『고고학, 과거로 들어가는 문』,『인류의 선사문화』,『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Beyond the Blue Horizon』등이 있다. 

다음은 페이건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교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푸른 지평선 넘어(Beyond the  Blue Horizon)'이라는 바다와 관련된 책을 발간했는데, 언제부터 바다 혹은 수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고학자이지만 제가 바다에 대해서 책을 쓸 때 알게 되었던 것 말고는 어업이나 수산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수산업의 일부분에 대해서나마 저술한 책이 두 권 있습니다.  

2004년에 출판된 “금요일엔 생선(Fish on Friday)”이라는 책은 유럽역사에서, 특히나 성일이나 사순절에는 고기 먹는 것을 금지했던 기독교의 종교적 교리가 중요했던 시대에 수산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교리로 인해서 유럽과 뉴펀들랜드의 청어어업과 아이슬란드 대구 무역이 발전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또한 건어물이나 염장한 생선이 선원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작년에 발간된 “푸른 지평선 넘어(Beyond the Blue Horizon)”는 인류 초기에 바다 탐험을 시도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 입니다. 이 책은 역사적인 배에 관한 책이 아니라 전통적인 선박과 선원들이 왜 육지를 떠나 바다를 건넜는가에 관한 책입니다. 당연히 이 역사의 일부는 수산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항해가 시작되었던 4만 5,000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수산업을 연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8살 때 처음 작은 보트를 탔습니다. 지금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유럽과 지중해 연안 해역과 태평양 군도 및 뉴질랜드 해역 등지를 항해했습니다. 저는 어업을 생계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며 각지의 수산업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뉴펀들랜드의 어항과 북노르웨이의 로포톤(Lofoton) 섬 해안가 마을입니다. 두 곳 모두에서 대구 건조 덕장을 볼 수 있었는데,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오래 전에는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어부와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선사학의 최고권위자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선사시대 때부터 수산업이 우리 인류문명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며 근대사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어업이 언제부터 인류의 생계에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가 서부 유럽에서 되돌아오는 연어를 잡기 시작했던 빙하기 후반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동남아시아 해안 어종과 참치 낚시가 시작되었을 것 같고 3만년 전부터는 분명히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양어업이 팽창하게 된 것은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한 빙하기 이후, 만 년 이후 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양어업은 무거운 하중의 짐을 실을 수 있고 바다에서 태풍에 견딜 수 있을 만한 어선의 개발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좀 더 최근에 와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원양어선은 500년 전이나 그 보다 조금 일찍 사용이 확대되었고, 지중해 및 기타 지역의 원양어업은 주로 참치 중심이었습니다. 어업은 인류 역사, 특히 어업의 규모나 조업 효율성이 크게 개선된 지난 2000년 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류는 특히나 염장기술이 발달하면서 선원 및 군인들의 주 영양원이 되었고 신앙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양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시아 및 페루 해안과 북미대륙의 북서부 해안 등지의 전통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식량이었습니다. 자연용승이 발생한 지역에서 다량의 어류가 채집되면서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한국의 수산업과 수협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역사의 중요한 교훈 한 가지는 인간사회가 연안지역 인구가 그 전 보다 더 적어진 지난 2,000년 간 바다에서 과다어획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빈곤이 확대되는 오늘날 과다어획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끝으로, 바다 또는 수산업의 중요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지속적인 수산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우리의 자손들이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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