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 없이 최전방에 선 인천항 일용직노동자
방패 없이 최전방에 선 인천항 일용직노동자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11.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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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저임금, 고위험 노동 방치

[현대해양]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 개정안에 삽입하겠다며 정부가 ‘차별없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에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국가 기간산업인 항만의 일용직노동자들은 십수년째 임금, 작업, 복지 등 다방면으로 차별받으며 위험천만한 환경에 노출돼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기관단체 ‘안전불감증’ 탓

항만의 특성상 선박 접안에 따라 유동적으로 인력을 투입하기 위해 상근노동자 이외 일용직노동자가 고용되고 있다. 최근 항만물동량이 정체되고 세계적으로 영업환경이 날로 어려워지는 가운데 국가의 항만자동화 정책에도 무게가 실리면서 앞으로 항만에 상근노동자가 채용되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지난 2007년 인천지방해양항만청, 물류협회, 항운노조가 공동으로 ‘노사정 공동인력관리위원회(노사정위원회)’를 구축해 일용직노동자를 공식 모집했다. 당시 모집된 500여명 중 현재 240여명이 남아 있으며 상용직노동자 350여명과 함께 인천항 곳곳의 선적, 하역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기본급만 400만원대, 수당을 합치면 600여만원을 상회하는 임금을 받는 상근노동자에 비해 2~3배 임금이 적은 일용직노동자들은 노사정위원회 사무국에서 순번을 정해 그때그때 작업지로 배정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용직노동자들이 작업 도중 발이 절단되고, 발이 으스러지며, 하반신이 마비되는 등 하반기 동안에만 수차례 대형사고의 대상이 되면서 일용직노동자에 대한 작업안전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항만운영사들의 작업안전메뉴얼에 따라 작업전마다 작업지시와 안전교육을 병행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안전사고가 멈추지 않자 유관기관도 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인천항만공사, 인천항만물류협회, 인천항만연수원, 인천항운노동조합 노사정사무국 4개 기관은 공동으로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일용직노동자 총원을 대상으로 ‘안전역량 강화교육’을 진행했다.

IPA는 일용직노동자 사고의 원인으로 안전불감증에 초점을 두고 개개인의 기본적인 마인드를 개선시키기 위해 역량강화에 집중하겠다며 1년에 한 차례씩 정례적으로 이와 같은 교육을 마련하고 아울러,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주관하는 공생협력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일용직노동자 대상으로 ‘안전역량 강화교육’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됐다.
일용직노동자 대상으로 ‘안전역량 강화교육’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됐다.

 

알맹이 없는 교육 실망

정부가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수를 현재 50%인 500명 수준에 방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지금과 같이 운영사가 아닌 해양수산부와 항만공사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공식적인 정부 관계기관의 안전교육은 대한 기대를 불식시켰다. 참석자 A씨는 “유해위험물질, 중량화물, 낙하 접촉사고 등 실질적인 항만작업 관련 내용은 거의 없고 항만 역할, 개괄적인 작업내용 설명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일용직노동자들은 실질적인 현장의 상황 개선 없이 개인의 안전불감증만 나무라며 교조적인 태도로 교육만 진행한다고 해서 사고예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만현장은 타 산업과 비교해 재해율이 상당히 높다. 지난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조사한 결과 항만노동자 재해비율이 전체산업 평균 2배 더 높고 특히, 항공운수산업에 비해 6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과정의 항만하역의 특성상 고용노동부의 표준화된 매뉴얼로는 항만근로자의 안전 사각지대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평가됐다.

이런 상황에서 상근노동자보다 비교적 덜 숙달된 일용직노동자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포인트에 우선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장창환 민주노총 인천지역 일반노조 항만지부장는 ”크고 위험한 중장비가 오락가락하며 공중에서 이동하거나 비산먼지가 풀풀 날리는 현장은 일용직노동자가 우선적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작업 중 위험한 일은 주로 일용직에게 배정되고 장비 조작이나 수신호 등 비교적 안전한 작업은 상근노동자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일용직노동자들은 경미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재계약에 불이익이 생길 것을 우려해 사고를 숨기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각종 사고 통계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어 실제 발생하는 재해는 더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와 관련해 이송운 IPA 재난안전실 실장은 “내년부터 각종 장구들을 안전하게 비치할 수 있도록 안전작업대를 설치하는 등 현장작업 환경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고 전했다.

인천항운노조
인천항운노조

 


일용직노동자 방관하는 항운노조

이 가운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항운노조가 앞장서서 위기의 일용직노동자에 대한 방패막이는 못해줄 망정 소외에 눈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원모 시의원(더불어민주당, 남동4)은 지난 20일 인천시의회 제2차 정례회에서 “인천항의 상용화된 항운노조 조합원과 별도로 해수부, 물류협회, 항운노조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일용직 인력공급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일용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현황을 알고 있느냐”며 유관기관을 대상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현 정부 노동정책기조에 맞춰 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일용직노동자들이 누구는 열악한 임금과 4대보험은커녕 퇴직금도 없는 구조에서 인천항만공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며 따져 물었다.

현재 일용직노동자를 위해 항운노조가 나서서 각종 보험혜택과 산재발생시 상근노동자의 70% 정도 임금을 보전해주는데 공헌하고 있지만 이는 일용직노동자 전체 중 절반에만 해당된다. 십수년째 노조의 보호를 못 받는 일용직노동자들은 항운노조 일용직노동자들 보다 작업일수, 임금이 적고, 퇴직금도 없으며, 여지껏 보험혜택도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일용직노동자를 모집할때부터 항운노조 가입이 이뤄졌어야 했지만 사실 연줄없이는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항운노조의 가입요건은 일용직노동자라도 다르지 않았다며 비통해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난 2013년 민주노총 인천지역 일반노조는 항운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항만지부를 발족하고 조합활동을 시작했지만 정부, 항만운영사, 항운노조는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각종 교섭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다시 위험천만한 일터로 가는 항만 일용직노동자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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