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빙 북극해가 기다리고 있다
만년빙 북극해가 기다리고 있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7.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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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프론티어에의 도전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때는 10여 년 후인 2025년 5월 어느 날. 러시아 동북단 데즈뉴 갑(岬)과 건너 알래스카 세워드 반도 사이의 베링해협을 뚫고 만년빙(萬年氷)으로 뒤덮인 북극해를 향해 한 척의 상선이 북상하고 있었다. 10층 높이만큼 컨테이너를 만재한 그 배는 나흘 전 동북아 최대 물류항인 부산항을 뒤로하고 일반상선으로는 세계 최초가 되는 북극항해(北極航海)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반 쇄빙선(半碎氷船)인 그 배는 세계 조선업계의 빅스리 가운데 하나인 삼성중공업 작품으로, 이미 2007도년부터 쇄빙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두꺼운 빙괴를 깨트리며 자력항진이 가능한 이른바 ‘쇄빙 유조선’을 10여 척이나 건조해내어 이름을 떨쳤는데(그 배는 러시아 국영 해운사 ‘소보콤플로트’에 전량 인도되었다), 이번에는 전문적으로 북극항로만 뛸 컨테이너선을 건조하여 사상 최초로 북극항해에 투입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배야말로 지금까지의 통상항로(通常航路)인 인도양 대신 아직도 미개척 상태인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 파이오니어인 것이었다.

북극항로란 사전(事典)에도 없고, 그 어떤 해도(海圖)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다. 그런데 200년도 더 전, 노르웨이 난센(프람 호)이나 아문센(요아 호) 등 극소수 극지탐험가를 제외한 그 어떤 항해가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바로 그 비경(秘境)의 북극해에 지금 동북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항로가 열린 것이었다.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들이 지키고 있는 조타실은 하루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엊그제 초여름과 함께 본격적으로 해빙(解氷)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길이 열진 참이지만 항로상에는 여전히 무수한 유빙(流氷)이 길을 막고 있는 그야말로 죽음의 적색경보(赤色警報) 지대인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 하루 이 해협을 통과하면 배는 곧 좌현으로 동토지대인 1만km의 러시아 북쪽 해안을,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북극의 만년빙을 관망하면서 유유히 유럽으로 향하는 개척선을 타고 있다는 자긍심 때문이었다.

그 컨테이너선이 지금까지 동서양을 이어온 인도양 항로(수에즈 운하)를 마다하고 목숨을 건 북극항로를 택한 것은 항정(航程)으로나 연료효율 면에서나 적어도 40% 이상의 단축과 절약이 가능한 때문이었다.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얼마이며, 항해효과는 또 얼마인가.

그 험난한 뱃길은 지구가 탄생하고 오늘날까지 두꺼운 얼음세상이었으며, 지금으로부터 꼭 400년 전(1725년), 러시아 탐험가 베링이 처음 해협을 확인한 다음에도 특수건조된 쇄빙선(碎氷船)이나 미국 원자력잠수함 ‘노틸러스’ 호 말고는 그 어느 배도 항해할 엄두를 내지 못한 항해의 사각지대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컨테이너선은 그로부터 꼭 열흘 후,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의 나메바스 강 양안(兩岸)을 낀 로테르담 항에 닻을 내리면서 사상 최초의 북극항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었다.……

다소 낯선 풍경의 이 항해기는 미구에 트일 북극항로를 소재로 필자가 소설로 꾸며본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하릴없는 한 작가의 허구(虛構)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경이롭고 기대에 부푼 온갖 꿈이 지금 북극해에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것이다.

새 해양시대를 앞둔 한국 해기사들

향후 10수년 후면 북극항로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어느 연구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표층수온은 최근 20년(1991년∼2010년) 사이에 1℃나 상승했고, 그 같은 기상이변은 북극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 30년 사이에 실로 75% 가까운 얼음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이어질 만큼 세상은 지금 가장 최악의 기상이변에 봉착해 있다. 이게 곧 생명체가 존재하는 대우주 속 유일한 별- 지구가 처한 오늘의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온난화는 역설적이게도 인류에게 두 가지 찬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하나가 북극해에 부존하는 천연자원의 무한한 개발이요, 다른 하나는 앞서 말한 새 항로(북극)의 개통이다.

먼저 북극해의 천연자원 이야기부터 하자. 다 아는 바와 같이, 1896년 알래스카(클론다이크)에서 잇달아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른바 골드러시 시대를 풍미하였음은 미국작가 잭 런던의 <야성의 소리>를 통해 알려진 바 있고, 비슷한 시기인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구 소련이 동토지대를 파헤친 결과 지금껏 금을 비롯한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석유·석탄·소금 등을 채굴하면서 국부(國富)를 증대시켜온 사실은 북극해가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증거하는 역사적 사실의 한 단면이다. 만년 얼음세상으로만 여겨지던 북극해가 그처럼 자원의 보고로 숙면(熟眠)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대다수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상하이에 ‘북극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석유 관련 국영기업 하나가 지구 꼭대기의 아이슬란드와 손잡고 북극탐사에 나섰다는 보도까지 접하고 보면 세계는 이미 총성 없는 자원선점 전쟁에 돌입한 형국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게 북극해에 부존하는 무진장한 에너지자원이다. 즉, 세계 원유의 25%인 4,120억 배럴과 45%에 해당하는 2조 4,100억㎥의 천연가스가 부존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그것이다. 그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세계인의 이목이 북극으로 쏠릴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이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그 하나가 한 달 전 5월 15일, 우리나라가 북극해로 진출할 새 틀을 마련하였다는 낭보다. 즉, 미국·러시아·캐나다·노르웨이 등 북극권에 속한 8개국 협의기구인 ‘북극 이사회’에 한국이 일본·이탈리아·싱가포르 등과 함께 ‘정식 옵서버’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고무적 뉴스가 그것. 이로써 한국은 남극(南極)에서와 마찬가지로 북극권 국가와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등 북극개발과 관련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의 낭보는 그냥 굴러들어온 게 아니며, 국내외적으로 허다한 난제가 돌출한 가운데 묵묵히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해온 관련 종사자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단초는 남극반도 맥스웰 만의 킹조지 섬에 자리 잡은 ‘세종기지’ 설립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1988년).

세계에서 16번째로 설립된 세종기지로 해서 한국은 그간 펼쳐온 활동성과를 근거로 이듬해(1989년)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비로소 남극 부존자원의 개발에 뛰어들 기틀을 마련했었다. 그 바탕 위에서 한국은 북극해로 눈을 돌려, 2008년의 ‘임시 옵서버’ 자격획득을 계기로 2009년 진수한 한국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ARAON) 호로 하여금 남·북 양극을 차례로 돌며 조사·연구 활동을 수행해온 이력을 추가함으로써 이번의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140대 국정과제를 내놓으며, 11번째로 ‘해양·수산업의 미래산업화…’에 북극항로 개척을 포함시키고 있다. 바로 그 오로라 형상의 꿈의 항로가 지금 우리 해기사들에게 뜨거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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