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로 P. 레베르테의 <항해지도>
아르투로 P. 레베르테의 <항해지도>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5.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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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해양문학 순례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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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경영하는 <시공사>가 출간한 스페인 작가 아르투로 P. 레베르테의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항해지도>라는 표제(表題) 문제다. 역자(譯者)가 친절하게도 스페인어 원제(原題)인 <La carta esferica>를 글자 그대로 번역함으로써 파생된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의 항해사들은 간결하게 그냥 ‘해도(海圖 ; Pilot chart)’라 약칭(略稱)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역자는 사전(辭典)에도 없고 번잡하기만 한 낯선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친절도 지나치면 언어적 공해(公害)가 된다는 점을 이해하였으면 한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야기는 스페인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의 어느 경매장에서 시작된다. 경매에 나온 물건은 제가끔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을 법한 잠수복이나 육분의(六分儀) 등 선박과 관련한 물품이다. 

그 응찰자 사이에 한 사내가 끼어 있었다. 그는 벌써 몇 번째나 그곳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되는 경매 장면을 지켜보곤 했는데, 그가 그곳을 자주 방문한 것은 무슨 희귀한 항해용구를 응찰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엔 에어컨도 갖추어져 있고, 경매가 끝나면 술도 한 잔씩 나누어주는 데다 안내양의 늘씬한 다리와 미소 띤 얼굴이 매력적이어서였다. 

그만큼 그는 하릴없는 놈팡이였다. 작가는 이 볼품없는 사내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하얀 운동화 대신 낡은 가죽구두에 무릎이 너덜너덜해진 청바지와 소매금줄이 뜯겨져나간 선원용 제복 차림’이 그것이다. 그만큼 그는 호주머니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배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4만톤급 컨테이너선의 1등항해사였던 ’코이‘라는 이름의 그는 4개월 전 배가 모잠비크 해협을 통과할 때 영국 함정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배를 몰아붙이다가 그만 암초에 배를 좌초시킴으로써 상선부(商船部) 총국(정식 명칭은 ’해난심판원‘이다)으로부터 향후 2년간 승선자격을 박탈당한 처지에 있었다. 

경매는 잠수용 구리 헬멧을 시작으로 어느 폐선에서 떼어낸 나침반과 천문항해용 크로노미터에 이어 드디어 두툼한 지도책 차례가 되었다. 

“다음, 지리학자이자 선원이었던 우루티아 실세도란 사람이 만든 ‘스페인 해안도’입니다.” 

경매인은 이어서 ‘이거야말로 18세기 지도 중의 보석’이라고 소개하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보존 상태로 보아 한 번도 배에 실린 적이 없어보이는 아주 깨끗한 지도책이었다. 

가격은 처음부터 높게 제시되었다(작가는 구경꾼인 코이가 반 년 정도 편안히 먹고 살만한 액수라고 에둘러 말했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앞 다투어 패들(가격을 표시한 나무주걱)을 들어 올렸으나 자꾸만 응찰가가 올라가자 포기자가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회색 말총머리를 한 뚱뚱이 사내와 패들을 든 손밖에 보이지 않는 금발여인 두 사람만 남았다. 응찰가는 결국 다섯 배까지 뛰어올랐다. 

“더 높은 가격 제시할 분 안 계십니까?” 

바로 그 순간 말총머리 사내가 실수를 범했다. 여비서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자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을 본 경매인이 응찰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도책의 주인이 금발여인이라는 뜻으로 망치를 두들겨버린 것이었다. 

끝까지 경매 광경을 지켜본 코이는 낙찰에 성공한 여자에게 관심이 쏠렸다. 20대 후반에 온몸이 주근깨 투성이인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그래야 두 사람 관계가 성사될 터이다). 그녀와 말 한 마디 나눌 기회조차 없었지만 인연은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졌다(그래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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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을 무렵 경매장을 나온 코이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갈 곳이라고는 싸구려 하숙집뿐이었다. 그러다가 가로등 불빛이 흐릿한 골목길에서 두 남녀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지도책을 놓고 힘겨루기를 한 말총머리와 낙찰에 성공한 주근깨 여자였다. 말총머리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여자 어깨를 찌를 기세로 연신 경매 결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코이를 발견하고 손을 내렸다. 덕분에 주근깨 여자는 궁지에서 벗어났다. 

“고마워요.” 

여자의 그 말이 두 사람에게 연줄이 된 것은 두 말할 여지도 없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술집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그 자리에서 코이는 그녀 이름이 ‘탕헤르 소토’라는 것과 마드리드 해양박물관 소속 큐레이터로 전시할 해양용품의 취득을 책임진 직원임을 알았고(따라서 경매장에서 낙찰 받은 지도책은 전적으로 박물관 소유가 된다), 그녀 역시 이 사내가 좌초사고로 자격이 정지된 하선자임을 알았다. 두 사람은 곧 헤어졌다. 

며칠 후 코이는 천측용(天測用) 육분의를 판 돈으로 마드리드 행 기차표를 샀다. 역에 내린 그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주근깨 여자가 근무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가서 안내원에게 쭈뼛쭈뼛 ‘미스 소토를 찾아왔다’고 말했다(바로 그 순간이 670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끌고 나갈 결정적인 계기였다). 

하필이면 그녀는 외출 중이었다. 그는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다. 

그녀를 만난 코이는 ‘공적인 일도 보고, 친구도 만날 겸 마드리드에 왔다가 우연히 박물관 간판이 보이기에……’라는 식으로 말을 둘러댔다. 

이후의 일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도 못한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곧 살을 부벼댈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녀가 은밀히 추진하려는 일에 코이가 필요해서였다. 

코이를 집으로 초대한 그녀가 물었다. 

“데이 글로리아 호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그는 알고 있지 못 했다. 

“글쎄요…….” 
“대포를 10문이나 장착한 상선입니다. 1767년 스페인 남동부 해안에서 침몰했고요.……” 

드디어 그녀가 침몰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역사학을 전공한 그녀의 설명. 

- 쌍돛대 범선인 그 배는 예수회 소유로, 그 해 정월 초하루 갖가지 화물을 싣고 쿠바의 아바나 항을 출항, 에스파냐 동북부의 발렌시아 항으로 항해하고 있었어요. 배에는 승조원 말고도 두 명의 신부가 더 타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적하목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회가 은밀히 밀반출하고자 한 무언가 귀중한 보물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항해가 순탄치 않았어요. 그 한 달 후 대서양을 건너는데 성공한 배는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스페인 영해를 거슬러 오르던 중 영국 해적선의 추격을 받게 된 게 그겁니다. 그 상황에서 글로리아 호 선장은 자국 요새의 엄호를 받을 목적으로 카르타헤나 항을 향해 전속력으로 도망을 쳤으나 상대적으로 배도 크고 돛대도 하나 더 많은 해적선을 따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어요. 글로리아 호 선장은 강인한 사람이었어요. 결국 사정권 내로 추격당하자 선장은 항복하는 대신 해적선을 향해 먼저 대포를 발사함으로써 피차 격렬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지요. 다 알다시피 당시에는 워낙 해적선 출몰이 빈번하여 평화로운 항해가 목적인 상선들도 덩달아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거든요. 그 중 한 방이 해적선 갑판에 명중했어요. 그럼에도 해적선은 공격을 그치지 않았어요. 막 해적들이 배로 넘어올 순간 화약고가 폭파되면서 해적선은 가라앉았고, 글로리아 호 역시 두 개의 돛대가 파손되면서 돌덩이처럼 가라앉고 말았습니다(갑판 상 돛대가 부러졌다고 배가 침몰하다니?). 그 와중에 한 사람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열다섯 살 견습선원인 소년 하나가 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들어 표류하던 중 다음 날 구조되었으니 말이지요. 이후 소년은 당국에 위도와 경도 등 배의 침몰 위치를 명확히 진술하였는데, 그것은 소년이 글로리아 호 선장으로부터 시시각각의 위치를 하달 받고서는 항해일지에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덕분이었답니다(그럼 항해사는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글로리아 호가 사용한 그 해도야말로 며칠 전 내가 바르셀로나 경매장에서 낙찰 받은 우루티아 해도의 복사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격정지를 당하여 당장 호구지책을 마련하기도 곤란한 처지의 하선자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기에 이른다. 

“내가 당신에게 돈을 지불한다면 내가 하려는 일을 도와줄 수 있겠어요?” 
“무슨 일인데요?” 
“들어보세요. 글로리아 호에는 틀림없이 보물이 실려 있었어요. 기록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글로리아 호가 침몰하고 그 두 달 후 카를로스 3세(스페인 왕)가 ‘식민지에서 예수회를 추방하고 그들의 전 재산을 몰수하라’는 칙령을 내린 사실과 결부시킨다면 답은 절로 나오지요. 다시 말해 예수회 소속 두 신부는 왕과 각료들을 매수할 목적으로 콜롬비아 산 에메랄드를 한 궤짝 가득 싣고 가던 길이었지요. 그 낌새를 알아챈 해적들이 습격을 감행했고요.” 

그녀가 덧붙였다. 

“침몰선 위치도 알고 있어요. 정확히 동경 4도 51분에 북위 37도 32분…….” 

바로 그 정보야말로 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들어 살아남은 소년의 진술(메모) 그대로인 것이었다. 

그녀가 재차 묻는다. 

“당신, 오늘 아침 그 해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죠?” 
“그래요.” 

코이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바로 그곳(카르타헤나)에서 자라는 동안 수영도 했고, 인근 바다를 수백 번도 더 항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 해도로 침몰 위치를 찾아낼 수 있겠어요?” 
“경매에서 따낸 우루티아 해도 말인가요?” 
“그럼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그 말을 코이가 받는다. 

“그 해도라면 위도 상 1분만 틀려도 실제로는 1마일의 차이가 나게 돼 있소.” 

그건 옳은 말이다. 위도 상 1도는 60분이고, 그 1분이 1마일 거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작가는 쓸데없는 그 말 한 마디로 앞으로의 보물탐사에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작정이었다). 

그게 첫 번째 트릭이었다. 도대체 트릭이란 상대방을 속이거나 현혹시키기 위한 음모나 속임수가 아닌가. 곧 동경 4도……북위 37도…… 운운하는 침몰선 위치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잠깐,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에스파냐 지도를 펼쳐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은 아주 기초적인 지리학 지식만으로도 이 위치를 얼마든지 쉽게 잡아낼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곳이야말로 해적선에 쫓긴 글로리아 호가 요새 엄호를 받기 위해 카르타헤나 항으로 내달리던 자국 해안이 아닌, 그곳으로부터 300마일도 더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북단의 알제리아 영해 쪽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소설작법의 최대 무기인 허구(虛構)’를 앞세운 엉터리 위치가 아닌가. 그거야말로 작가에게는 얼마든지 진실(眞實)을 왜곡할 권리가 주어져 있다는 극언(極言)의 한 예(例)인가. 아니 더 정확하게 논하자. 작가 레베르테는 지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지식마저 갖추지 못한 채 해양 주제의 소설을 쓰기에 이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너무 허구를 숭상한 나머지 인류 공통 약속인 해양학의 기초적 산술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칼질하여 재봉틀로 기워버린 무지(無智)를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무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작가는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가설(假說)로 독자들을 기만(欺瞞)하고 있다. 

“그로리아 호가 침몰한 1767년에는 스페인 뱃사람들도 그리니치를 본초자오선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았소?” 

항해사 출신 코이의 말에 그녀가 한 대답이 그것이다. 

“아니죠. 당시에는 나라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설정하고 있었어요. 여기 보는 우루티아 해도만 하더라도 파리, 테네리페, 카디스, 카르타헤니 등 그 모두가 다른 경도를 설정하고 있었다고요.” 

아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말장난인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선을 ‘경도 0’으로 한 본초자오선이 공인된 것은 이미 고대 시대부터 지구의 자전(自轉)에 근거하여 천문학과 지리학이 오묘하게 결합된 인류문명 최고의 걸작품 아니던가. 
▲ 1951년 스페인 남동부 해안 항구도시이자 이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카트라헤나에서 태어난 로베르트는 20여 년간 여러 배체에서 기자 활동을 한 끝에 소설 겸업을 선언한 스테인의 대표적 대중작가이다.



                                                    3



다시 포커스를 원점으로 돌리자. 

어쨌거나 이로써 향후 전개될 이야기의 핵심은 명확해진다. 보물을 실은 한 척 배가 침몰했고, 이후 2세기 반 넘어 잠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배의 침몰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다면 그 뒤의 일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처럼 한시라도 빨리 현장으로 달려가 탐색에 돌입하여 침몰선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를 조롱하듯 아주 멋대로, 전혀 주제와 아무 연관성도 없는 온갖 잡담(雜談)으로 나름의 언설을 지루하게 메워 나가며 독자를 진력토록 만든다(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조금만 인내심이 약하다면 당장 책자를 내팽개치고 말았을 것이다). 

드디어 보물탐사선인 요트 카르핀타 호가 지브롤터 부두를 뒤로한 것은 바르셀로나 경매장에서 그녀가 우루티아 지도책을 낙찰 받은 때로부터 근 1년도 더 지나서였다. 탐사선에는 주근깨 투성이의 박물관 큐레이터 소토 양과 하선자 코이, 그리고 요트 선주 필로토 영감 등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현장으로 가는 항해는 순조로웠다. 해적선에 쫓긴 글로리아 호는 연안으로 도망치고 있었으므로 거리도 가까웠다. 그런데 그 틈새에 작가는 또 장난을 친다. 한밤중 거대한 상선이 지나치면서 일으킨 파도를 맞고 요트가 요동치는 바람에 돛줄을 잡고 있던 코이가 바다로 떨어졌다는 엉뚱한 장난이다. 그 사고로 코이는 구조되기까지 몇 시간이나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현장으로 가는 동안 마냥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작가는 보물 탐사의 주도자인 주근깨 여자를 내세워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다(이거야말로 독자를 식상하게 만드는 군더더기다). 

“가장 논리적인 것은…… 해적선은 폭파로 산산조각 나면서 사방으로 잔해가 흩어졌을 터이지만, 글로리아 호는 돛대만 파손되었을 뿐이어서 선체는 멀쩡하게 남아 있을 거예요. 여긴 수심도 깊지 않기 때문에 배는 아마도 거꾸로 뒤집혀 있든지 비스듬히 누워 있을 거예요.” 

상상도 지나치면 품격을 떨어트린다. 이에 코이가 거든다. 

“이곳 바닥은 진흙과 모래요. 따라서 우리가 발굴하지 못할 만큼 깊이 박혀 있지도 않을 거요.” 

다시 주근깨 투성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미 부분을 찾아내는 거예요. 그곳에 에메랄드가 있으니까요.” 

참으로 짜증나게 하는 대화다. 작가는 아마도 TV 드라마를 너무 많이 감상한 듯싶다. 

열흘도 넘게 탐사작업이 계속됐지만(그 동안 요트는 수시로 항구를 들락거렸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건 모래와 해초뿐이었다. 한 번은 수심 43m에서 뭔가 커다란 물체를 포착하고 선주인 필로토 영감을 잠수토록 했더니 잔뜩 녹이 슨 세 개의 드럼통이 해초를 뒤집어쓰고 있지 아니한가. 작업은 그렇게 무미하고 멋없이 이어졌다.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작가는 뒤늦게 스물아홉 살의 주근깨 여자 몸매를 뜯어 보기이도 한다(바로 이 삽화가 대중소설에서 빠트릴 수 없는 양념이 아니던가). 

- …… 긴 다리는 매끈했다. 조금 마른 편이었고, 젖가슴도 썩 크지 않았다. 선실에서는 수영복을 벗고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는데, 젖꼭지 부분이 동그랗게 튀어나오고……. 

이런 식이었다. 
장난은 계속된다.

“배를 타는 동안 여자를 많이 사귀어 봤어요?” 
“지금 생각나는 여자는 없소.” 
“항구 뒷골목에 흔한 창녀들?”
“몇은 그랬소.” 
“흑인 여자들이었어요?”
“그렇소, 흑인 여자, 중국 여자, 그리고 메스티소 여자들…… 하지만 창녀들이란 원래 돈에만 관심을 두지 대화가 없다고요.” 
“흑인 여자들은 어때요?”
“그들도 음부는 장밋빛이었어요.”…… 

이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나열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자체가 수치요, 더할 수 없는 모욕일 수밖에 없다. 그 구역질나는 혐오감이라니! 이거야말로 당장 전자발치를 채워줘야 할 성폭행범들의 상용어 아닌가. 작가는 그렇게 독자를 성도착증 환자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 같은 낯 뜨거운 대화가 이어지는 한 탐사작업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 침몰선은 찾아지지 않았다. 탐사 구역을 바둑판처럼 나눈 해도에는 ×표가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탐사선은 사방 2마일에 걸쳐 수심 60미터 이내의 해저를 다 치훑었으나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드디어 좌초선 항해사가 투덜댔다. 

“있어야 해요.” 

여자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 소년이 일러준 위치가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소. 배가 침몰할 순간의 그 혼란 속에서…….” 
“그 녀석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소.” 
“그렇게 교묘하게 둘러대기에는 너무 어려요.…… 더군다나 선장이 일러준 좌표를 연필로 받아쓴 종이쪽지도 갖고 있었어요. 아마도 침몰한 지 두 세기 반이나 지났으니 모래 속에 깊이 박혀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어요.”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4



그들은 결국 탐사작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보물찾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모 대학에 봉직하면서 지도제작 분야에 일가견을 가진 익명(匿名)의 교수가 등장하는 게 그것이다. 코이와 소토 두 사람이 그를 찾아갔다. 

“침몰선을 찾지 못 했습니다.” 

소토 양이 교수에게 털어놓았다. 

“어디 봅시다. 우선 침몰 연도를 알아야 해요.” 
“1767년도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교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탐사용으로 사용한 해도가 우루티아라고 말하자 한참 계산을 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주었다. 

“틀렸소. 지금까지 당신들이 탐사한 곳은 엉뚱한 곳이었소. 정확히 말하자면 서쪽으로 36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헤맸던 거요.” 

아니 그 난해하던 위치추적이 그처럼 쉽게 풀릴 수 있단 말인가. 

‘저녁을 한 끼 사라’는 교수를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먹음직한 요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내려준 결론이었다! 

그 뒤의 일은 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다음 날 요트는 새벽안개를 헤치며 북위 37도 52분 선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카보 데 팔로스’(스페인 남동부의 곶) 남서방 6마일 해점이었다. 바로 그 곳, 가로 2.5마일에 세로 1.5마일의 범위가 에메랄드를 실은 채 가라앉은 글로리아 호의 무덤이었다. 

- …… 코이는 좀 더 깊이 들어가 주변 경관을 살폈다. 그곳에 키와 용골이 보였다. 키는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바로 그곳 초록빛 어둠 속에 데이 글로리아 호가 유령의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말총머리 중년이 나타난 것은 요트가 항구로 돌아간 직후였다. 평생을 보물사냥으로 보낸 그가 탐사대의 활동을 간과할 리 없었다. 그는 다짜고짜 손잡이에 자개가 박힌 크롬 권총으로 코이를 겨냥했다. 그러나 소토 양이 더 빨랐다. 총알은 코이의 갈비뼈에 박혔으나 그 몸으로 말총머리를 덮치면서 사격을 제지했다. 그 서슬에 말총머리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소토 양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서 흘러내린 피가 블라우스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다음은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 순간 코이는 생각했다. 이제 바다로 돌아가고 싶군. 정말 좋은 배나 한 척 만났으면 좋겠어. 



                                                         5



1951년 스페인 남동부 해안 항구도시이자 이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카트라헤나에서 태어난 로베르트는 20여 년간 여러 매체에서 기자 활동을 한 끝에 소설 겸업을 선언한 스페인의 대표적 대중작가다. 장편소설 <경기병(1980년)> 등 열 편 가까운 작품을 냈으며, 작가소개에 의하면 책을 내는 족족 중판을 거듭했고, 특히 2000년에 발표한 <항해지도>는 초판만 23만 부를 제작, 유럽 전역의 책방에 깔았다고 한다. 물론 그의 명성에 걸맞게 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래서 그에게는 ‘스릴러의 대가’라는 형용사가 항상 따라 붙는다.
  해양소설로 분류되는 <항해지도>를 쓰기에 앞서 그는 5년 이상 온갖 자료를 뒤진 끝에 스페인 왕 카를로스 3세의 예수회 추방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한 선박(데이 글로리아 호)의 난파 사실을 덧붙인 작품의 골격을 짜맞추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낯설 수밖에 없는 항해학의 기초를 비롯한 조선 및 해도제작법 등에 대하여도 항해사 이상의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비스러우면서도 위험한 바다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도서관이자 보고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그 도서관인 지중해를 내내 항해했다. 

이 말은 <백경>의 화자(話者)인 이쉬메일로 하여금 ‘바다는 나에게 있어 하버드이자 예일대학이다’라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작품의 군데군데 멜빌이나 콘래드가 인용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바다는 여전히 꿈을 꾸려는 사람에게 유효하다’고 부추기고 있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너무 많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했으며, 지나치게 독자를 의식한 나머지 스토리를 너무 드라마적으로 끌고 나갔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바다를 정나미 떨어지는 세계로 만드는 부작용을 만들고 말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도 동의하겠지만 작품 전체가 혐오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독자들은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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