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바다의 날’의 추억, 기억, 그리고 제언
22. ‘바다의 날’의 추억, 기억, 그리고 제언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3.06.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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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용의 지금, 이사람’ 스튜디오에서 정관용(왼쪽)과 함께한 김종성 교수
‘정관용의 지금, 이사람’ 스튜디오에서 정관용(왼쪽)과 함께한 김종성 교수

[현대해양] 우리나라 ‘바다의 날’이 28돌을 맞았다. 바다의 날은 1982년 채택,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협약’을 기념하면서 탄생했다. 1994년 미국, 1995년 일본 등이 바다의 날을 지정했고, 우리나라도 1996년 우리만의 바다의 날을 지정했다.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5월 말일을 바다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올해 28번째 행사는 경주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해마다 바다의 날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커져 왔음은 해양인으로서 반갑고 뿌듯한 일이다. 그만큼 바다를 둘러싼 글로벌 이슈와 위기감도 차츰 줄어들기를 바라며, 성인을 훌쩍 넘어 28번째를 맞은 ‘바다의 날’을 돌아보며 ‘해양과학 대중화’란 모토로 달려온 지난 몇 년간의 소소한 추억과 기억, 그리고 제언을 글로 남긴다.

 

유엔 해양법협약에 대한 아련한 기억

유엔 해양법협약은 바다의 이용, 개발, 보호, 보전, 관리, 연구, 협력 등 제반 활동에 대한 명문화된 국제 약속으로 구속력을 갖는다. 170개국 이상이 가입한 바다와 관련한 가장 광범위한 국제협약으로 국제적인 법적 기반을 제공하고 국가들 간 해양활동과 분쟁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학부 수업 때 유엔 해양법협약 전문을 수강생이 챕터를 나누어 요약 번역하는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11개 분야, 320조란 방대한 분량의 본문과 9개 부속서까지 포함한 전문을 거의 한 학기 내내 들여다봤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는 번역하는 데만 집중해서 내용 파악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여하간 전 인류는 바다를 지키고 가꾸고 지혜롭게 이용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노력해왔음은 자명하다.

 

해양과학 대중화를 위한 첫 여정 ‘김종성의 어서오션’

네이버 포스트에서 연재한 '김종성의 어서오션'
네이버 포스트에서 연재한 '김종성의 어서오션'

나는 우연한 계기로 2019년 네이버 포스트에 ‘김종성의 어서오션’을 1년간 연재하게 됐다. 네이버 연재는 내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의 내가 우리말 글쓰기로 해양학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훌륭한 계기이자 연습무대였기 때문이다. 사실 연재 제의는 기뻤지만 내심 걱정이 많아 망설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언론에 기고 글을 써본 경험은 일천했고, 솔직히 우리말 글쓰기는 자신이 없었다. 대학 교수로서 성과만 생각하면 영어 논문 작성 외에 한눈팔 여유도 없었다. 마침 연구년으로 호주 그리피스대에 자리를 잡고 맹그로브 생태학에 빠져 있을 때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기초와 응용을 아우르는 애매한 해양과학이 대중의 관심사를 끌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거란 선입견도 결정을 어렵게 한 배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정은 바뀌었다. 주변 지인들이 영어 논문만 쓰는데 몰두하는 내게 왜 결과를 우리말로 세상에 알리지 않느냐는 어찌 보면 황당한 질문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뾰족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선배 중에도 당시 해양환경공단에서 정책전문가로 활약하던 손규희 박사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논문은 천천히 쓰고, 발로 뛰고 말로 전하는 노력을 하라는 것이었다. 대중에게 해양학을 알리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고 공감했다. 왜 하필 내가 해야 하나 생각도 잠깐 했지만, 누구든지 많이 하면 좋을 거란 당연한 명분은 기대감과 의무감을 발동시켰다. 한편 안식년인데 하루 정도 빼서 쓰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매달 기한을 정해 놓고 우리말로 우리글을 쓴다는 것이 영어 논문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소위 작가의 일상적 고통과 대단한 노력과 집중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 외에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매번 어려웠지만 그래도 즐겁게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원고 기한에 맞춰 겨우겨우 한편씩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네이버 연재 글쓰기에서 어려움의 본질은 ‘김종성의 어서오션’을 시작할 때 잡은 나만의 콘셉트에 있었다. ‘우리 자료’로 말하는 우리 바다, 우리 생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로 작성했던 이미 출판된 논문의 결과를 우리말로 다시 쉽게 써야 했다. 물론 관련 데이터와 숫자까지 다시 확인해야 했고, 국내외의 다른 논문과 보고서 등도 참고해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발목을 잡았던 콘셉트였지만 다시 읽어봐도 ‘우리 것’이라 더 좋고 뿌듯하다.

그렇게 그간 우리 바다, 우리 생물을 연구하고 출판한 논문을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했고, 스토리텔링 하듯 매달 한편씩 써나가며 소위 작가가 겪는 고뇌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인 듯, 2019년 4월 시작했던 ‘김종성의 어서오션’ 연재는 2020년 4월을 끝으로 마침내 12장의 바다 이야기책으로 탄생하게 됐다.

12장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1) 갯벌과 함께 사라진 맛의 황제 ‘가리맛 조개’, 2) 바다생물 이름에 숨겨진 사연, 3) 공생의 철학을 담은 찰떡궁합 바다생물 이야기, 4) 삼면사색 우리 바다의 독특한 특성과 생물다양성, 5) 갯벌의 수호자 고둥과 조개 이야기, 6) 바다의 대표 곤충 갑각류(게류), 7) 귀염뽀짝한 갯벌의 보배 갯지렁이, 8) 우리땅 독도의 토종생물과 생물주권, 9) 기름 유출 사고를 극복한 태안의 기적, 10) 2020년 쥐해를 맞아 소개한 바다쥐 이야기, 11) 제주바다 물고기의 행복주택 인공어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12) 보이지 않는 바다의 거인 저서규조류 등이다.

영어 논문과 우리글 연재의 또 다른 큰 차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조회수다. 나의 걱정은 원고를 넘기고 끝이 아니었다. 지금 고백이지만, 매달 연재 글의 조회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걱정이 앞섰다. 당시 수십 명의 프로 작가 연재가 함께 게재됐기 때문에 부담이 컸으나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다. 많을 때는 조회수가 수만에 이르고 호의적 댓글도 많아 보람되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니 과연 내가 지금까지 썼던 수많은 영어 논문을 과연 몇 명이나 읽었을까를 생각해보면 한편 서글프기도 하다. 연재는 2020년 끝났지만, 지금도 찾으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 KBS라디오 데뷔!

내가 바다의 날을 새롭게 각인한 계기는 엉뚱하게도 2020년 5월에 라디오 방송에 처음 출연한 것이었다. 2020년 5월 초 KBS라디오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에서 깜짝 연락이 왔다. 바다의 날을 기념해서 갯벌의 가치를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당시 연락한 담당 작가가 네이버 ‘김종성의 어서오션’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대중매체의 힘이 대단함을 새삼 느렸다.

다시 망설여졌다. 글쓰기는 약간 자신이 붙었고, 그 사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 짧은 인터뷰는 몇 번 해봤으나, 30분간 대담 형식의 인터뷰는 또 다른 버거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처음 글쓰기 연재를 수락했을 때보다는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다행히 담당 작가는 매우 친절했고, 30분 정도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대본을 만들어줬다. 총 27개의 질문과 답변이 상세히 작성된 무려 16쪽 분량의 대본이었는데,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자신만만하게 방송국을 찾아갔다. 그나마 녹화방송이란 위안도 있었다.

난생처음 라디오 방송국에 갔고, 스튜디오란 낯선 곳에 들어갔다. 외벽이 튼튼하고 방음이 완벽한 방송국 스튜디오는 사뭇 위압감을 줬지만, 내부는 편안하게 세팅된 녹음실이었다. 시사토크 사회자로 유명한 정관용씨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착석하여 녹음이 시작됐다.

정관용 씨의 오프닝, 그리고 내 프로필이 성우 나레이션으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고 첫 번째 질문이 대본에 없는 내용이어서 사뭇 당황했다. 아 이것이 애드립인가? 그나마 질문은 ‘바다의 날’의 유래였고, 다행히 어렵잖게 대답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들어봐도 좀 더 유창하게 답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약 30분간의 질문과 답변이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순서도 약간 달랐기 때문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관용 씨의 프로다운 리드로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30분의 인터뷰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행히 작가, PD, 사회자 모두 그럭저럭 녹음이 잘 됐다고 처음인데 잘했다고 격려해줘서 고마웠다. 라디오 방송으로 나를 방송에 처음 데뷔시켜준 김자영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시 업그레이드, 대담프로그램과 환경예능까지

2021년 KBS 인사이드 경인의 대담프로그램 방송은 내게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해줬다. KBS라디오 출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김자영 작가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촬영 요청을 해왔다. 주제는 ‘해양쓰레기’였다. 라디오 출연 이후 몇 개의 다큐멘터리 인터뷰는 있었지만, TV 대담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1시간가량 진행하는 TV 방송이란 점이 부담스러웠고, 해양쓰레기는 나의 전문 분야라 하기에 약간 모호한 경계에 있었기에 망설여졌지만, 중요한 주제고 자료준비 등도 하면 촬영은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인터뷰에 응했다.

이번 대담프로그램은 안양대 류종성 교수와 호흡을 맞췄다. 지난 20년 넘게 함께 공부한 실험실 선배여서 호흡은 척척 맞았고, 질문과 답변도 적절히 전공 분야와 내용에 맞게 역할 분담을 하여 촬영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김자영 작가는 첫 라디오 방송 때보다 훨씬 잘했다고 격려해줬다.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나는 라디오, TV에 연달아 데뷔했고, 우리글 쓰기 연재나 기고보다는 분명히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이후 방송 매체 인터뷰나 촬영 요청은 차츰 늘어갔고, 지난 3년 동안 30여 차례 이상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그중 가장 많은 요청은 역시 다큐멘터리 촬영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이 좋은 점은 학교 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의 인터뷰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야외조사 장면을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다는 점이다.

생생한 바다, 갯벌 현장에서 학생들과 뻘을 뒤집어쓰면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채집하고, 때론 배에서 해수, 퇴적물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을 담고 이를 실험실로 운반하여 실제 실험과정을 촬영했다. 일반적 지식이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인터뷰보다는 현장 촬영은 훨씬 역동적이고 대중에게 설명력과 전달력 높다는 점도 매력적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연구실은 블루카본, 해양생물다양성, 해양생태계서비스 연구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TV 매체를 통해 소개할 수 있었다. TV 매체나 유튜브는 파급효과가 매우 큰 것 같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소개된 영상 중에 조회수가 높은 두 개의 영상을 소개하면, <KBS 경인방송> 「한국 갯벌이 세계 2대 갯벌」 16만 뷰, <샤로잡다> 「기후위기 한반도가 더 위험하다」 20만 뷰를 기록 중이다. 논문의 경우 피인용수가 그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데, 동영상은 조회수가 그런 지수인 것 같다.

작년, SBS에서 환경예능 프로그램인 「ECO 아일랜드, 천사도」 방송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뜻깊고 유익했던 촬영이었다. 난생처음 ‘계약서’란 것을 쓰고 거금의(?) 출연료를 받은 첫 경험이었고, 박진희, 홍석천 등 TV에서만 보던 유명 연예인들과 직접 호흡을 맞추면서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안 앞바다를 돌며 해양쓰레기 문제를 소개하고 여러 작가의 해양쓰레기를 활용한 전시품을 감상하며 해양쓰레기의 심각성과 해결방안을 주제로 토론했다. 특별한 저녁 식사와 토크쇼를 통해 대중에게 바다의 가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시사점을 진솔하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천사도 촬영 내용은 15화 「해양쓰레기와 ‘천사도’에서의 뜻깊었던 하루」에서 다룬 것으로 대신한다.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

해양수산부는 1996년 13개 부, 처, 청별로 분산 수행하던 해양수산 업무를 통폐합하면서 발족했다. 우리나라 바다의 날이 제정되고 시작된 첫해인 1996년과 그 역사의 궤를 함께한다. 비록 잠시 해체를 겪은 시기도 있었지만, 통합행정 30년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처음 시작될 때 내세운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은 분명하다.

과거 세계 5대 해양강국이란 말부터 최근 신해양강국, 초격차 해양강국이란 슬로건까지 해양에 관한 관심은 끊임없이 높아져 왔다. 신해양강국의 길은 관점과 분야에 따라 다양하고 달라질 수 있다. 해양주권과 국방, 조선과 해운산업, 물류와 항만, 북극항로 개발, 해양자원 개발, 수산업과 양식업, 해양환경과 기후대응, 그 밖의 해양신산업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글로벌 리더쉽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대전제에는 국민이 있고, 국민의 바다에 관한 관심, 이해, 그리고 지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바다의 날을 맞아, 바다로, 세계로 전진하는 해양수산부가 미래로란 최고 가치의 비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세계 최고 해양강국 실현에 묵묵히 걸어 나가기를 해양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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