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에서 ‘차근차근’으로
‘빨리빨리’에서 ‘차근차근’으로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4.05.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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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필자는 안산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1986년 미혼으로 반월지점(현 안산지점)에 발령받아 갔다가 근무지가 서울로 바뀐 후에도 내처 살았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애 둘을 낳았습니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은 가끔 자신들의 고향, 안산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엊그제에 우리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뒤로 물린다면 어쩌면 자기들이 그 배를 탔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그 학생들은 나를 대신해 희생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세월호 실종자’ 내지는 그 가족입니다. 온 국민이 이렇게 가슴 저리고 애가 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지요.

안산은 단원 김홍도와 관련이 좀 있습니다. 풍속화가 김홍도는 성장기에 안산에 살았습니다. 단원의 스승이자 문인화의 대가인 강세황이 32세 때 안산(安山)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때가 1745년이니 단원 김홍도가 태어난 때입니다. 강세황이 처음 벼슬을 한 것은 61세이니 30년을 안산에 살았군요. 7세 때부터 20세에 이를 때까지 안산에 있는 강세황(姜世晃)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김홍도는 안산에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일 김홍도는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습니다. ‘단원고등학교’는 이러한 연유로 단원 김홍도로부터 학교명을 얻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드는 조선강국인데 왜 다른 나라에서 18년이나 사용한 중고선을 사다 타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사람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안타까움과 함께 비아냥이 섞여 있습니다.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버스옆면에 ‘00마트’니 ‘00학교’니 하는 한글 문구가 적힌 대형버스를 불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수출한 중고차입니다. 그런 중고차들이 외부 도장(塗裝)도 하지 않은 채 버젓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눈에는 우리가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동남아 사람들과 같이 보이는 거겠지요. 도장 정도 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요.

문제는 ‘돈’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수명이 거의 다 된 중고차를 사서 운행하는 거나, 중고선을 헐값에 사다 일부 증축을 해서 정원과 화물 적재중량을 늘려 운행하는 일 모두 ‘돈’과 관련됩니다. ‘안전성’ 보다 ‘경제성’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후진성의 대표적인 양상입니다. 경제개발에 성공해 우리는 경제대국이 됐지만 개인적, 사회적 의식은 아직도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빨리빨리’ 성향으로 이만큼 성장했지만 ‘꼼꼼하게’ 확인하는 습관은 잊어 버렸습니다. 대신 ‘대충대충’이 몸에 배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선진적이고 또 후진적일까요?

미국의 심리학자로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고 이들 간에 위계적 관계가 있다는 ‘욕구위계설’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의 욕구는 생리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 생활이 향상될수록 점차 높은 수준의 욕구충족을 원하게 됩니다.

1단계 욕구인 생리적 욕구(physical needs)는 의식주와 관련됩니다. 식욕, 수면, 성욕 등의 삶에서 원초적인 욕구를 말하며, 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욕구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2단계 욕구는 안전 욕구(safety needs)입니다. 신체 및 감정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되고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욕구입니다. 3단계 욕구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입니다. 2단계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집단을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호감을 주고받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4단계 욕구는 존경의 욕구(esteem needs)입니다. 내적으로 자존심을 성취하고 외적으로는 타인의 주목을 받고 인정받으며 집단내에서 지위를 확보하려는 복합적인 욕구를 말합니다.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입니다. 최상위 욕구로서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욕구입니다.

1986년 당시 안산의 인구는 3만 정도였습니다. 도시라기보다는 한적한 어촌이자 한창 개발중인 지방도시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반월공단 배후도시로 100만 인구에 육박합니다. 따라서 ‘조선 팔도’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아, 공단의 외국인 근로자와 그 가족들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글로벌’한 도시가 됐습니다.

공단 배후도시로서의 안산시의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도 세계 15위의 경제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우리의 경제력과 기술력 그리고 문화력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욕구의 5단계를 국가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우리나라는 기본적 욕구와 안전 욕구, 소속감의 욕구 단계를 다 지나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 단계에 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안전의 욕구 단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두들 황당하고 스스로에게 창피하여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집단 ‘멘붕’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욕구는 혼재되어 있습니다. 안전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우리 사회에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선진적인 면과 후진적인 면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경제의 압축성장처럼 우리의 욕구단계도 압축적이고 동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빨리빨리’ 일변도에서 벗어나 ‘차근차근’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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