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선장, 운반선 감독관을 역임하며 전세계 망망대해를 누볐다.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중편소설)’, ‘제6회 등대문학상 대상(단편소설)’, ‘2018 평사리문학대상(소설 대상)’을 수상했고 한국해양문학가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해양] 1 오래된 장면 하나. 첫 선장 발령에 출국을 며칠 앞둔 날, 무전취식으로 붙들린 선원을 풀어내려 들른 경찰서였다. 취조형사 왈,“선생이 신병인수자요? 직업은요, 선장? 흠. 선장이란 직업은 없고 배 안 타고 있으면 무직이지. 안 그래요? 그냥 ‘지인’이나 ‘동료’로 기입합시다.”두 번째 장면도 IMF 사태 때니 이십년도 더 전이다. 외국계 합작회사(Joint venture)에 몸을 담았다. 현지 어선을 운항하는 ‘노가다 업무’는 그쪽이고, 전체 경영과 어획물 수입판매는 한국측 권한이었다. 우리가 컨트롤 타워라는 자부심
[현대해양]뉴질랜드에서 마주쳤던 몇 인연에 대한 기억-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1 45일 긴 항해 끝에 마침내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새로운 어장이다.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입어 허가를 남발하고, 쟁기질로 긁어대듯 씨를 말리는 후진국형 어장이 아니다. 어자원 분포와 자원총량에 대한 탐사자료를 토대로 해역별, 어종별 총어획허용량(TAC)를 산정하고, 국적별, 선박별 어획량(Quota,쿼터)을 배정한다. ‘살아있는 어장’, 생태계 순환을 염두에 둔 철저한 관리가 따른다. ‘닥치고 퍼올리기식’ 조업에 익숙했던
[현대해양] 대양항해, 적도를 지날 때 배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기억 하나.-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1 파나마를 버리고 태평양을 사선으로 내리지른다. 출발지와 도착지 이동거리를 최소화한 대권항법(大圈航法, great circle sailing), 적도를 지나 긴 항해로 날짜변경선을 통과하면 새로운 어장 뉴질랜드다.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날치 떼의 비상 외에는 해와 달, 그리고 적막 속에 드러누운 바다뿐, 열대의 땡볕에 갑판 판자가 쩍쩍 갈라진다. 동키호스(해수공급용 호스)로 틈틈이 물을 뿌려 적신다.
[현대해양]첫 대양항해로 파나마운하를 지날 때의 기억들. -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파나마운하에 관한 한국어버전 농담이 하나있다. 개통을 앞둔 중남미 산신령들이 톱클래스 한국 신선에게 작명을 의뢰했단다. 죽어라 산을 깔아뭉개고 땅을 파헤치는 인간들 소행에 열 받아 ‘그거 파나마나야. 헛일이지’라 꾸짖으셨다는데, 통역 필터링 미숙으로 그대로 ‘파나마운하’로 명명되었다는 썰렁한 아저씨 개그 같은 우스개.1 대서양을 가로지른 긴 항해 끝에 육지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뛴다. 멀리서 손짓하는 신천지
[현대해양]1 엉망진창 위선적인 편력과 성추문 때문에 막장으로 추락해버린 문제적(?) 노 시인. 한참 옛날 이 양반이 방송에서 들려준 일화가 있다.젊은 날 ‘살아있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항구도시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고, 그를 구조한 어느 일본선장이 ‘항구는 죽는 곳이 아니라 떠나는 곳이다’라는 말을 들려줬다던가.피식 웃음이 난다. 상당히 멋있게 들렸었는데 그의 이중적 행태가 겹치면서 그저 현학적으로 언어를 다루는 기발한 재능으로만 읽힌다.기능적인 표현만이라면 항구와 공항은 단지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
[현대해양]1실수로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캡틴’ 엄지의 막중한 역할을 뼈저리게 느끼며 아무 일도 못한 채 흘려버린 한 주간.옳거니, 책장 넘기는 정도라면 한쪽 손만으로도 가능하지 않겠나. 밴드를 칭칭 동여매고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그리고 ‘백경(白鯨, Moby Dick)’을 다시 찾아 읽기로 했다. 이왕에 알고 있는 줄거리야 술술 풀려 나올 것이니, 편안하게 훑어나가다 종횡무진 건너뛰기에 인상적인 부분을 표시해뒀다가 다시 새기는 내 방식대로.생물학적 기준과 가늠수치가 갈수록 모호해지지만,
35년 전 라스팔마스, 영원히 잠들지 않는 ‘천사와 악마의 항구’에서 겪은 몇 가지 기억들이다.-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일부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1 테네리페(Tenerife).선저 도색작업과 추진기(스크루) 점검을 위해 서쪽 옆 섬 ‘테네리페’의 ‘누바사’ 독킹장(Dry dock - 乾船渠)으로 첫 시험항해를 했다.17세기에 건립된 종합대학이 있을 정도로 라스팔마스와 약간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있는 섬이며, 최근에는 TV프로 ‘윤식당 – 스페인 편’의 배경이 된 ‘가라치코’ 마을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지명이 된 곳이
[현대해양]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짐에 버금가는, 배에서 키우던 개들과 이별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첫 배에서 짧게 키웠던 똥개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다.-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중 일부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1. “꼬뇨, 네그로(염병할, 검둥이 자식).”손수건으로 땀을 훔친 스페인 경찰이 침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한다. 어선전용부두, 겹겹이 정박한 배들 사이로 뜨내기 흑인부랑자의 시체 한 구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떠올랐다.생선박스를 훔치려다 실족했거나, 어느 배 선원들과 시비가 붙어 맞아 죽었을
[현대해양] 세상사 모든 것들에는 ‘처음’이 존재한다. 내 인생을 채웠던 수많은 ‘처음’ 중에서 ‘첫 뱃길’을 돌이켜 본다. 그때 그 젊음에 대한 아스라한 그리움, 그 ‘처음’이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니.-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1 아들에게.-네가 태어나기도 전 까마득한 시절, 바다에서 보낸 아비의 청춘을 이야기하려한다. 걸음마를 떼고 장난감들을 앞에 했을 때, 성큼 배를 골라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그 시절을 말하려
1그때 그 ‘상심의 바다(Sea of heartbreak)’에서삼십 오년 전 뉴질랜드 어장에서였다. 선단의 일등항해사들에게 회사여직원들로부터 단체로 편지와 선물꾸러미가 도착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무작위로 파트너를 지정하고, 미래의 선장인 젊은 항해사들을 격려하라는 회장님의 지시에 따른 깜짝이벤트였다. 내막도 모른 채 모두가 한껏 들떠서, 야간 당직 때 가상의 단체 미팅이라도 하듯 서로의 사연을 읽고 비교하는 재미가 컸다.내 짝(?)은 C자 이니셜을 가진 서울 본사 아가씨였다. ‘건강하시라’라는, 너무도 간결해 억지로 보낸 티
1 ‘삶은 흔들리며 중심(中心)잡고, 늘 출렁이며 수평(水平) 맞추는 일…….’친구가 시집을 한 권 묶어냈다. 서명과 함께 일필휘지로 갈겨 써준 자신의 시구절 한 줄이다. 이성배 시인, 시집제목은 ‘이어도 주막’. 60편 죄다 바다와 해양을 관조한 시들이다.10년 전에 이미 해양문학상을 수상했으니 글판에서는 한참 선배다. 육군 장교출신인 그와 선박특례로 군 면제인 나, 무슨 이유에선지 술을 멀리하는 친구와 주정뱅이인 나 사이에 어울릴 건덕지라고는 탈탈 털어봐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늑대는 개를 쉬 알아보는 법이었으니, 첫 만남에서
1 일본과의 통상마찰이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을 열 받게 한다. ‘한일어업협정’ 같은, 전공과 관계있는 분야에도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나라다.기질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이 아닐까 싶다. 일본 도덕의 근간은 충(忠)이고, 사무라이로 대변되는 ‘칼’의 정서다. 우리는 효(孝)가 최고의 도덕이며 선비정신을 추구한다. 한일청구권협상, 위안부문제, 충돌하는 사안마다 저들은 흘러간 과거는 묻어버리자는 전제하에 지나간 합의에 대한 신뢰를 주창하지만, 이쪽은 세상이 변했더라도 ‘바로잡기’를 원하며 ‘이치’와 ‘도리’를
1초임선장 때다. 다른 배 선배선장이 자랑을 했다. 어느 시사월간지에 편지를 보냈단다. 만리타향 바다에서 그 책을 꼭 읽고 싶다고. 후기에 사연이 실리며 공짜로 책을 매달 기지사무실로 보내줄 테니 입항 때 받아보라는 답신을 받았다했다.그 양반과 둘이서 작전을 짰다. 나도 다른 월간지에 동일한 내용의 글을 보냈다. 서로 바꿔보기로 하고 김칫국부터 마셨다. 친절하게도 년간 구독료를 먼저 송금하면 책을 보내주겠다며 자세한 액수와 송금방식을 첨부한 답신이 기지에 도착했다. 국제우편까지 보내 준 성의에는 감사했지만, 물 위를 떠도는 주제에
1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한다. 영광 뒤에 숨은 치부를 감추고 미사여구로 칠갑된 승자의 기록. 하지만 그 민낯들은 불편하고 거북할 때가 있다. 대항해시대 선각자들의 빛과 그림자를 들춰본다.대항해시대는 15~18세기 유럽인들이 대양을 무대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정복에 더해 해상국제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를 일컫는다. 대표주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십자군 전쟁 실패 이후, 이슬람 세력의 팽창으로 육로 무역이 막힌 상황을 역발상으로 뒤집어 해상 루트로 인도와 중국에 이르고자 했던 나라들이다.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
1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란다. 해안에 접근하던 미국군함에서 엉뚱한 사고가 났다. 한 해군병사가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었다. 작전이 일시 중지되고 부랴부랴 그를 구출해 건져 올렸다. 전쟁이 겁이나 도망치려 했던 치킨하트(새가슴, 겁쟁이)로 낙인찍은 상사들이 이 병사를 군법회의에 회부시켰다. 전쟁 중에 작전을 지연시키고 동료의 사기를 저하시킨 죄목이었다.그 병사가 이런 진술을 했다.‘철모 안쪽에 어머니 사진을 붙여뒀다. 언제나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상상을 했다. 실수로 철모를 바다에 떨어뜨렸다. 어머니 사진
1 일 반 놀기 반 스케줄로 여수에 들렀다. 부산으로 돌아오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가업으로 멸치잡이 연안선망 일을 한다는,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젊은 친구인데 막무가내다시피 한번 만나 달란다. 마침 여수에 있다니 반색을 했다. 이십 분 만에 숙소로 달려왔다. 숙소 입구에 선 여러 사람들 중에 바로 나를 알아본다. 웃음이 났다. 나는 목소리만으로도 즉각 생김새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사람이었으니.가업을 지키나가려는 젊은 친구가 대견해 보인다. 초면에 대화 초장부터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4대째 가업
1 4월이다. 어김없이 그 날은 또 온다. 떠올리기도, 다시 생각조차하기도 싫지만 꽃다운 넋들을 잃은 세월호 사고, 바로 그날 말이다.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슬픔과 비탄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한다. 버리다 시피 했던 외국 중고선들을 인수해 초인적인 능력으로 운항했던 선배들부터, 오대양 거친 바다를 휘저었던 이 땅에 차고 넘치는 뱃사람들이, 단 한번만 올라서 점검해보면 드러날 사고요인들을 밝히는데 걸린 헛된 시간까지도. 배출신이라 말하고 다니기도 부끄러운 치욕의 날들이었다.현역 시절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피해 닻을 내리고 피항을 하
1 아내가 아울렛(Outlet) 할인매장에서 구두 한 켤레를 사 준단다. 단벌 구두가 딴에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이월상품 떨이 행사장’에는 손님도 없었다. 중년의 판매원 여사님들이 전기난로 앞에 손을 부비며 나누는 잡담 위로 스피커에 노랫소리만 쩌렁쩌렁하다. 7080용 올드판 가요메들리. 짙은 브라운 색 키높이 구두 한 켤레를 집어들 때, 귀에 익은 비음 섞인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온다.전주가기가 막히다. 아, ‘내게도 사랑이’, 바로 그 노래.…… 긴 세월 흘러서 가고 그 시절 생각이 나면못 잊어 그리워지면 내 마음 서글퍼지네내
1 구정(舊正)이다. 차례상을 준비할 때가 되니 다시 뱃놈시절을 함께 했던 음식들이 얼핏 떠오른다.‘네가 먹은 것을 알려준다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프랑스의 어느 미식가가 했다는 말이다. 대문호 괴테도 이런 말을 했단다. ‘인간은 그가 먹은 것 그 자체다.’음식은 먹은 후 바로 그 사람의 일부가 되면서 인격으로까지 승화된단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데 그치지 않고 육체와 영혼을 형성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거의 잠언 수준으로 승격된 이런 말들을 옛날 뱃놈들에게 들려준다는 상상을 해보자.‘귀신 씨 나락 까먹는 말들’이라거나
1 까마득한 옛날, 대학을 선택해야할 기로에 섰던 고3때 어느 책에서 멋들어진 글귀를 발견했다. 미국의 저명한 문필가가 아들에게 보내는, 사나이 한평생 ‘무엇이 되어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절절한 조언이 담긴 글이었다.‘생업(Job, Work)’으로서의 호구지책이 아니라 내면에 잠자고 있는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위치(Position, Career)’에 관한 권고였다. 남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였지만, 그는 함대제독, 신문사 편집장, 영화감독, 프로야구감독, 이런 직종들을 꿈꾸어 볼만한 직업으로 천거했다. 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