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훈 목포해양대학을 나와 광탄선, 컨테이너선, 원목선, 실습선 등을 타고 4대양 5대주를 항해했다. 2014년부터는 모교에서 항해학을 가르치고, 해상교통 안전에 관해 연구한다. 우연한 기회로 2024년 말 한 달여간 남극해 및 남극 대륙으로 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승선해,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는 오랜 꿈에 도전했다.
[현대해양] 항해일지 – 연구 항해 3일 차 (12월 9일)오늘 새벽 0시. 새로운 연구 지점에 도착했다. 먼저 수중 680m까지 채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약 30분 동안 순조롭게 채수 작업을 마치고, 채수 장비를 실험실로 들여 와 채수한 물을 옮겨 담으려 연구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도울 일이 없냐고 물으니, 지금 하는 일의 사진을 부탁한다. 어떻게 찍으면 되냐고 되물으니, 잘생기게 나올 수 있도록 부탁한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내 탓은 아니다. 잘생기게 나왔으니, 사진의 얼굴은 지우지 않았다. 채수 작업을 끝내자마자, 현
[현대해양] 항해일지 – 연구 항해 1일 차 (12월 7일) 일찍 일어났다. 오전 8시 출항이라 저장해둔 팟캐스트를 들으며 느긋하게 씻고 담배도 피우다가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11차 월동대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직을 마치고 내려온 조타수를 만났다. 7시 30분부터 후진을 시도하고 있으나, 배가 얼음 사이에서 안 빠지고 있다고 한다. 일찍 일어났지만, 또 늦었다. 오늘은 내 탓이 아니다. 서둘러 브리지로 올라갔다.선장님이 두 대의 엔진을 전후좌우 방향으로 사용하며 얼음 사이를 비틀고 있었다. 선수 두 대의 쓰러스
[현대해양] 정박일지 – 정박 3일 차 (12월 6일)어젯밤 잠이 안 와 선내를 배회하다가 여태 못 가봤던 장소를 발견하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헬리콥터가 있던 격납고 내부이다. 2주 남짓 한솥밥을 먹던 헬기 파일럿은 헬기와 함께 장보고 기지로 영영 떠났다. 아래에 있는 긴 철제 상자에 날개를 분리해 보관했던 것 같다.항해 중 파도와 얼음을 정면으로 상대했던 선수 갑판은 바닷물이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가운데 있는 것이 앵커와 연결된 체인이다.밤 풍경도 사진에 담았다. 밤 열 시경이다. 태양의 위치가 오전에는 스타보드 쪽에 오후에
[현대해양] 정박일지 – 정박 2일 차 (12월 5일)정박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나, 그제부터 장보고 기지를 멀리서 보고 있어서 여기에 오래 있었던 기분이다. 어젯밤 월동대원 두 분과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필이면 1년여의 남극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하기 위해 아라온호에 승선하는 그 시점에, 고국에서 들려온 계엄령 선포 소식이 이들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을지는 상상하기도 싫다.아라온호는 국적선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와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남극 대륙은 남극 조약에 따라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하지 않지만, 장보고 기지
[현대해양] 항해일지 - 출항 11일 차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여전히 Ramming(충격쇄빙, 전후진을 반복하며 두꺼운 얼음을 부수는 쇄빙기법)의 진동과 소음으로 좁은 선실이 울리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가 사우나에 씻으러 갔다. 샤워 도중 반복되던 진동이 멎었다. 다 끝났나 보다.여섯 시를 조금 넘겨 브리지에 올라갔다. 아무도 없고 Ice Pilot 홀로 항해일지를 정리 중이다. 조금 전 여섯 시에 최종 목적지 앞에 도착했다고 한다. 내가 샤워 중에는 아라온호의 자세(기울기)를 바로 잡기 위한 Ramming을 한 것이라 한
[현대해양] 항해일지 - 출항 9일 차[현대해양] 오늘이 되면 더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나가는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어제의 쇄빙 항해는 찍어 두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브리지에 올라갔더니... 어라. 표의 사진처럼 조각난 얇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쇄빙 항해 첫날의 얼음과 같았다. 선장님에게 물어보니 남극 대륙에서 흘러내린 두꺼운 부빙 해역은 어제 지나갔고,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 했다. 두꺼운 얼음은 장보고 과학 기지 앞에서 다시 볼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두꺼운 얼음이 사라지니 너울이 일렁이기
항해일지 - 출항 7일 차어젯밤 11시까지 브리지에 있었으나, 부빙은 나타날 기미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아라온호의 모든 선실은 오션뷰를 제공한다)을 보니, 밤새(이제 깜깜한 밤은 거의 없다) 아라온호가 눈에 덮여 있었으나 부빙은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고 있다. 며칠 전 Ice Pilot이 4일 전부터 보일 것이라 했으니, 바로 오늘이다.아침에 식당에서 Ice Pilot을 만났다. 식사하는 중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는 아라온호에서 DPO(Dynamic Positioning Operator) 자격
[현대해양] 항해일지 - 출항 5일 차지난밤 아라온호가 더 심한 각도로 롤링을 해댔다. 아마도 횡방향 파도를 받는 듯하다. 아라온호에 처음 승선한 연구자들은 크게 요동치고 있는 아라온호와 높은 파도에 대해서 불안해했다. 이들 모두 승선 전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기초적인 해상안전훈련을 이수하였지만, 실제 배를 타고 바다에 나오자마자 겪는 이런 거친 풍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 북태평양에서 지금보다 더한 풍랑을 경험한 나로서도 아라온호가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흔들릴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그때의 기억이
[현대해양] 항해일지 - 출항 3일 차목포에서 출발한 이후 가장 잘 잤다. 7시 반쯤 일어나 씻고 혹시나 식당에 내려가 봤는데, 아직 식사를 치우지 않아 감사히 잘 먹었다. 아침은 된장국, 김, 김치, 나물, 달걀부침 등 한식과 토스트, 베이컨, 시리얼 등 양식(현재 외국인 연구자 및 대원도 7~8명 함께 승선하고 있다)이 간단히 준비되어 있고, 냉장고에서 낫토, 요구르트, 우유, 과일 등을 꺼내 먹을 수 있다.아침 식사는 간단한 편이나, 점심 및 저녁 식사는 준비된 것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잘 나온다. 아라온호에 승
선박 생활은 감옥과 같다.한 가지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익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현대해양] 아라온호로 가는 길아라온호는 2024년 10월 30일 인천항을 출항하여 11월 19일 뉴질랜드의 리틀턴 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극지연구소로부터 인천항에서부터 ‘아라온(Araon) 호’에 승선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사양했다. 나도 간간이 조금씩 할 일은 있는 사람이다.아라온 호는 리틀턴에서 보급 작업을 마치고 11월 24일 남극으로 출항할 예정이므로, 뉴질랜드에서 승선할 인원은 11월 22일
연재를 시작하며2024년 크리스마스이브, 남극 항해를 마치고 뉴질랜드에서 귀국길에 저의 항해기가 월간 현대해양에 연재된다는 선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남극을 항해하는 동안 온라인 동영상으로 강의를 들은 저의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항해 중 참고할 만한 자료 없이 쓴 것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가 생각하고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널리 양해를 부탁드리며, 날 것 그대로인 남극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합니다.[현대해양] 매번 이런 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