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마음에 꺼지지 않는 등잔불, 참세상을 기다리며'
'식어가는 마음에 꺼지지 않는 등잔불, 참세상을 기다리며'
  • 승인 2007.06.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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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표' 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고 교수는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순서대로 거르지 않고 연재해 왔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독자님들의 지적에 따라 앞으론 간혹 누락되는 내용이 있더라도 가급적 시기에 맞춰서 연재할 계획이다(작은 제목 괄호옆 날짜가 글을 쓴 날짜임). 누락되는 부분은 이후 다시 게재해 드릴 계획이다. <편집자주>

 
꺼지지 않는 등잔불(7/10)

그동안 종교인들은 무릇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종교의 역할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스스로를 태워서 주위를 밝히는 빛, 스스로를 녹여서 주변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 바로 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이 어둠을 몰아내고 부패하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쩜 진부해지고, 하나의 문화행사로, 운동의 격을 떨어뜨린 느낌을 주는 촛불시위이지만, 80년도에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만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문자 그대로 바리케이트 앞의 전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 시절, 반동의 역사 앞에서 한줌의 불꽃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불꽃이 들불처럼 번져 썩어 문드러진 이 세상을 바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인간답게 살고,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이 없는 대동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년 이맘쯤에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등잔박물관을 찾아가면서, 문득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선물하고 자기는 제우스의 진노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가 떠올랐습니다. 산내마을에 들어와서 내걸었던 `쉼표가 마침표가 되지 않겠다`라는 나의 구호는 등잔과 관련하여 표현하자면 `식어가는 마음에 꺼지는 않는 등잔불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참세상을 기다리며….


▲  전시되어 있는 목등잔, 유기등잔, 철제등잔, 은입사무쇠촛대, 청동촛대, 도자등잔, 화촉, 제등, 좌등, 토기등잔 중에서 가장 소박한 저 등잔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저 등잔불 아래에서 버선을 꿰매고 있었을 모습이 떠올라서….


▲  등잔 박물관 뜨락에 피어있는 능소화

능소화가 피었습니다

등잔 박물관에서 등잔 뿐만 아니라 나를 홀리게 하였던 것은 능소화였습니다. 능소화는 양반꽃이라고 해서 상놈이 이 꽃을 심으면 끌려가 곤장을  얘기가 전해지는데, 등잔 박물관 뜨락에 이 능소화가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상놈이 능소화를 심은 것이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이나 따지고 보면 의미가 상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산내마을 시골집에도 능소화를 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봄에 나무 파는 농원에 들러서 능소화를 사러 갔더니 값이 무려 십오만원이나 달라고 하여 에누리하여 십일만원에 사왔습니다. 아내에게는 반을 뚝 자르고, 거기에 끝전을 맞춰서 오만원에 사왔다고 내숭을 떨었습니다. 살림하는 아내 입장에서 보면 나무에 그만한 돈을 지불하였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듯하여 거짓말로 둘러댄 것입니다.

사온 능소화 나무를 감나무 옆에 심었습니다. 능소화가 다른 나무에 빌붙어 사는 특성이 있는지라, 마침 감나무가 여간 볼품이 없어서 능소화가 꽃을 피어 볼품 없는 감나무를 카무플라주할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나무 이파리가 돋아날 때까지도 능소화 가지에서는 움틀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도 빼빼 말라 비틀어져 있어서 도무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농원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였더니, 농원에 있는 다른 능소화는 벌써 이파리가 났다며 그럴 리가 없고, 잘못 심은 것은 아니냐며 책임을 나에게도 슬며시 떠넘기니 비싼 돈을 주고 나무를 사서 망신살만 뻗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속도 모르고 오만원이면 별로 비싸지 않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움이 돋아나지 않으면 다시 한 그루 더 사서 심으라고 합니다. 이러니 쉼표,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산내마을은 해발 표고가 400미터 정도로 봄이 더디 옵니다. 그 탓으로 능소화 나무 가지에 움트는 것이 늦었던 것인데, 쉼표 애간장을 녹일만큼 녹이고 나서야 글쎄 능소화가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파리 돋아나는 것이 늦다보니 덩달아 개화시기도 늦어져 오늘에야 꽃이 한 송이 피었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사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눈도장을 찍고 다닌 것이 바로 능소화였습니다.

양반 댁에 불려가 곤장 맞을 각오하고 상놈이 능소화를 심는 것이나,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불을 훔쳐온 것이나,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쉼표입니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 있는 아내에게 "여보! 능소화가 피었네, 구경나오소∼"라고 불렀더니, 아내 왈 "당신도 참, 꽃 한송이에 이리 호들갑을 떠시는 것을 보니, 이젠 많이 늙으셨네요."


▲  감나무 옆에 심은 능소화 나무


▲  드디어 능소화가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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