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 눈부신 5월의 아름다운 세상
아까시꽃 눈부신 5월의 아름다운 세상
  • 승인 2007.05.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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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민들레와 상청

노란 민들레꽃이 어느 사이에 지고 말았다. 시나브로 흘러가는 세월의 무심함을 실감하게 된다. 노란 물결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고 대신 하얀 민들레꽃의 결과만을 볼 수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씨앗에는 화려하였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민들레 씨앗은 산사(전북 김제의 귀신사)를 치장하고 있다. 무리를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탓인지, 원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꾸밈이 없이 원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람의 힘이 결국은 모든 것을 변형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들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작은 실수라도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희망을 놓치기 않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를 보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세 번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한다.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게 되면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되고 기회를 제대로 살리게 되면 성공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고 하여도 그 것을 잡을 능력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만으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민들레꽃이. 꽃을 피워내고 씨앗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까지는 주어진 일이다. 그 것을 완벽하게 해냈으니, 분명 훌륭하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상청(上請).
이는 상사를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끌어 들이는 사람을 말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은 만들어내고 동료와 상사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이들을 인재라고 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일은 실패할 확률이 낮다. 새로운 생각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그 것을 현실로 실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산사의 민들레 씨앗이 날아가 새로운 자리를 잡게 되면 그 곳은 신천지가 된다.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살아가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그 곳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산사의 한 가운데에서 하얀 민들레 씨앗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벌과 회향

“정신이 없네.”
아내의 말에 바라보니, 이름모를 꽃 속에 파묻힌 벌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식물인지 알 수가 없다. 이파리는 두릅처럼 생겼는데, 두릅 같지는 않다. 작은 줄기에 비해 엄청나게 큰 꽃도 이채롭다. 그 것도 단 한 송이만이 그 것도 하얀 색깔로 피워내고 있어 경이롭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50cm도 안 되는 작은 키에 두릅 순처럼 몇 개의 새싹이 돋아나 있는 사이로 하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꽃 안에는 노란 암술과 수술이 유혹하고 있다. 그 안에는 꿀이 넘쳐나고 있음을 육안으로도 충분히 식별할 정도다. 그러니 꿀 전문가인 벌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찌나 꿀이 많은지 벌은 아예 그 곳에 파묻혀 있다. 아니 그 안에서 뒹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벌의 양 발에는 노란 꽃가루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많이 붙어 있다. 욕심을 너무 과도하게 부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하였다는 듯이 정신이 없다.

청운사(전북 김제시 청하면)의 무량광전 앞마당이다. 은사님을 모시고 찾은 절이다. 비교적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써 있는 말들이 한글이다. 한자가 아니어서 쉽게 이해할 수가 있어 좋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고정된 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벌의 모습에서 욕심과 회향을 생각하게 된다. 꿀을 취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는 모습은 분명 욕심이다. 그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분명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결코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회향하게 되면 열정으로 바뀐다.

취한 것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분명 욕심이다. 냄새나는 일이고 지탄받을 일이다. 그러나 얻은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로 승화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게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벌은 행동을 보면서 회향을 생각하게 되다. 꿀을 얻어서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들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벌의 모습이 우뚝해지는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의 추하다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꿀을 취하고 있는 행동이 열정으로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살아온 날을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유한한 인생에서 이기심을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모두를 위하여 회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정신 없이 꿀을 얻고 있는 벌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다. 오월의 햇살은 축복이다.

빛나는 보석

“빛나는 보석이다.”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터뜨리는 말이다. 오월의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꽃들이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그 무엇이 이보다 우뚝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곳은 전남 담양에 있는 추월산이다. 가을에 높이 뜨는 달을 떠오르게 한다. 대낮이어서 달은 찾을 수가 없지만, 눈에 들어오는 오월의 풍광은 그 이상으로 돋보인다. 우리나라를 일컬어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디를 가나 어느 계절이나 상관없이 빼어나니,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까시꽃이 조금 빠르다. 올해에는 온난화로 인해 모든 꽃이 일찍 핀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오월 말이나 유월 초에나 피던 아까시꽃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활짝 피어 있으니, 말이다. 꽃은 무슨 꽃이든 다 곱다. 그런데 아카시아 꽃은 그 향으로 인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까시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임도 따라서 흔들리다. 보석이 가슴에 와 박히는 것처럼 온 몸에 그대로 스며든다. 따뜻해지는 느낌을 손을 만질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눈이 부셔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간절한 마음이 더욱 더 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그래서 아까시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에 가득 넘치는 향에 취해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누님들과 동생 그리고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죽마고우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모두가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모두가 이제는 하얀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면서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임에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이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까시꽃이 웃음 짓고 있다. 진한 향을 주체하기 어렵다. 흔들리는 꽃 사이로 그리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오월이 가기 전에 만나보아야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사 제쳐놓고 그들과 함께 지나간 세월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여야겠다. 아까시꽃이 너무 눈부시다. 아름다운 오월이다.  <정기상님은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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