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넘치는 땅,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
"생명 넘치는 땅,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
  • 승인 2007.04.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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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물밑 속으로 가라 앉아버린 서해안 해수범람 사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지난 2일 전북 고창의 한 장례식장은 온통 눈물 바다를 이뤘다. 수십년간 살아온 터전에서 하루 아침에 당한 충격적인 사건. 유족들은 그때까지도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 용두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와 어업을 하며 자식들을 키우며 생활해 온 최모 씨. 최씨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부인과 딸, 그리고 예비 사위의 영정 앞에서 차마 눈물도 잊은 듯 했다. 그저 "어떻게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며 한숨만을 내 쉴 뿐이었다.
일가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 3월 31일 새벽 1시경. 전날인 30일 토요일 저녁 딸 최씨는 뒤늦게 만나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사랑하는 예비 신랑 정모씨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친정집을 찾았다. 최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한 뒤 읍내로 나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삶을 일구고 있던 처지였다. 이날 방문은 뒤늦게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님께 인사시키고 결혼식 날짜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 최씨는 어머니 노씨가 바닷가로 실뱀장어를 잡으러 간다고 하자 예비 신랑 정씨와 함께 선뜻 따라 나섰다. 노씨는 오래 전부터 농삿일이 한가한 농한기에는 소일거리로 실뱀장어(실치. 새끼 뱀장어)를 잡아왔다. 잡은 실뱀장어는 풍천장어로 유명한 인근 장어양식장에 꽤 비싼 가격으로 팔려 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최씨의 집이 있는 용두리는 바로 바닷가 인근. 70년대 간척사업때 바닷물이 드나들게 만들어진 수문이 있기도 하다. 수문은 밀물이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내륙쪽으로 상당히 들어온 곳에 위치해 있다.
노씨의 실뱀장어 잡이는 바로 이곳 수문 옆에서 이뤄진다. 노씨와 그녀를 돕기 위해 따라 나선 딸 최씨, 그리고 정씨는 조그만 그물망에 걸려올라오는 실뱀장어 잡이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거의 다 될 무렵. 잔잔하던 바다에서 갑자기 집채 만한 파도가 일더니 순식간에 이들을 뒤덮고 말았다. 차마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나간 세 명의 일가족.
이 자리에는 또다른 일행들도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표모씨 등 3명이다. 이들 역시 집채 만한 파도에 같이 휩쓸렸다. 하지만 이들은 다행이 헤엄을 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씨 일가족은 싸늘한 주검으로 해안가에서 발견됐다.
신혼의 단꿈을 꾸던 최씨와 정씨, 그리고 노씨 일가족의 꿈을 앗아가 버린 재앙이었다.
2007년 3월 31일 새벽, 몸이 지탱하기 힘들 정도의 강풍과 밀물이 겹치자 새만금전시관 앞, 선착장에 갑자기 물이 밀려 들어왔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대부분의 배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주민들 발만 동동

해일이 일어난 건 이곳 뿐 아니었다. 비슷한 시간 지난해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된 전북 부안과 전남 영광에서도 집채만한 파도가 주택과 배, 농경지를 덮쳐 수십억원의 피해를 냈다.
31일 새벽, 몸이 지탱하기 힘들 정도의 강풍과 밀물이 겹치던 새만금전시관 앞, 선착장에 갑자기 물이 밀려 들어왔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대부분의 배들이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더니 급기야 뒤집히고 방파제 위로 올라가기까지 했다. 중선배와 선외기까지 합쳐 수십척의 배들이 파손되었다.
약 30여분간 계속된 해일은 변산면 해창, 송포, 성천 등 포구 3곳과 위도면 진리, 치도리, 대리, 벌금 등지에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만조 상태에서 해안 쪽을 향해 들이닥친 바닷물은 어선은 물론이고 주택과 농경지에도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부안군에서 단일지역으로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위도면. 부안군과 위도면사무소 자체 (추정)집계에 따르면 위도에서만 어선 50여척이 반파되거나 유실됐고 주택 38가구(87명)가 침수돼 이재민들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벌금과 정금을 잇는 다리가 무너져 정금마을 주민 13세대(15명)가 고립되기도 했다.  이 다리는 양쪽 입구가 모두 부서진 채 중간부분 10여미터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위도에서는 그밖에 농경지 2ha 침수, 바지락 양식장 19.5ha 유실, 45인승 공용버스를 포함한 차량 20대 침수 등 피해 범위와 규모가 막대해 주민들이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위도 바깥 피해지역인 변산면 해창, 송포, 성천 포구와 인근 해안에서도 어선 60여척이 반파되거나 유실됐고 그물 등이 훼손돼 피해는 어장까지 미쳤다.
부안군이 집계한 전체 추정 피해액은 5억∼8억여원. 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국가보상 가능 액수인 14억원에 못미쳐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피해 어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처음 겪는 일"

사건은 영광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군 법성면과 홍농읍 그리고 무안군, 신안군에서도 발생했다. 전라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과 1일 전남 서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해일로 영광원자력본부 직원 한 명이 숨지고 어선 72척이 전파되거나 반파됐다. 또 84동의 건물이 침수 피해를 입었고 김과 가두리 양식장 등 수산시설 79곳이 피해를 입어 현재까지 추산되는 피해액만 13억 6400만원에 달한다. 신안군이 5억 1000여만원, 무안군에서 58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숨진 영광원전 직원 지모씨(38)는 온배수가 배출되는 취수구 안으로 높은 파도가 밀려 들어오면서 상황을 점검하던 상태였다.
법성면 주민 조모씨는 "`해일이 발생했다`는 전화가 와서 가게 밖으로 나가봤더니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마을 쪽으로 들어왔다"며 "바닷가 인근 굴비가게들은 방바닥에까지 물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부분 주민들은 하나같이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십년간 단 한차례도 없던 일이 발생한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과연 원인은?

지난 2일 월요일 조간신문들의 사회면을 일제히 장식했던 이 사건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다. 사건 발생 직후 해수 범람의 원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던 언론들도 그 뿐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체결된 한미 FTA 폭풍도 사건을 바닷속으로 침몰시킨 주범이었다. 그저 피해를 입은 주민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사태의 원인을 무엇일까.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 어떤 결론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 해수 범람 사태를 예고하지 못해 빈축을 샀던 기상청도 아직까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덮친 모양새는 영락없는 해일이었다는 지역 주민들의 얘기다. 그러나 지진, 폭풍 등 해일 발생 요인이 전혀 없었던 데다 해상 기상 역시 바람이 좀 강했을 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측은“당시 풍랑주의보예비특보가 발령되긴 했지만, 남동풍10 m/s 내외, 해면기압 1,010 hpa 내외, 파고 1.5m 이내로 폭풍 해일이 발생할 조건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이날‘이변’이 너울 현상이나 해일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해일특보가 발령되기 위해서는 군산외항의 기준으로 한 해수면 높이(조위)가 해일주의보는 7.9m, 해일경보는 8.1m에 도달해야 했지만 실제 범람 당시에는 6.8m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결국 “서해 일대의 범람은 기상상황의 영향이 아닌 지형적 영향과 북서쪽에서 유입된 장파의 회절, 반사, 천수효과, 만조 등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상청의 굼뜬 조사 진행 과정도 문제가 되고 있다. 본청인 서울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현지조사를 해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역 기상청에선 조사를 했는데,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본청이나 합동대책반 등에서도 4일에야 당일 일정으로 부랴부랴 조사를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 장례식이 끝난 상황인데 아직까지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본청 관계자는 "다른 일로 바빠서…"라고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재로선 자연재해 보다 복합적 요인에 의한 재해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인위적 구조물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

주민들 "방조제 때문"

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방조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 한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방조제 공사 완료 이후 일어난 게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안 지역 주민들은 이 파도가 단순한‘대형파도’로 봐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정도의 파도였다면 파도가 부딪치는 방파제 부분이 파손돼야 하는데 차량과 선박만 떠내려갔을 뿐 방파제 파손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평생을 살면서 이런 파도는 처음 봤다”며 대형파도가 간척지매립공사나 방조제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등이 바닷물길을 막는 바람에 바닷물이 갑자기 늘어 피해가 났다는 것이다.
영광 피해지역 주민들도 최근 간척지 조성을 위해 영광군이 바다를 매립하면서 방파제와 매립지 사이에 만조로 바닷물이 갑자기 밀려들어와 피해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안군의 한 주민은 "벌금과 정금을 잇는 돌다리(정금다리)가 부숴진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부안에서 태어나 자란 올해 68세된 어머니는, 당신이 머리털 나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만금 때문에 물 소통이 안되니, 돌풍이 불면 파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리도 아닌 조금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또다른 한 주민은 "만약 이런 일이 사리때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며 "고인 물에 강한 바람이 일어나면 흘러 넘치기 않기 때문에, 흐르는 물보다는 물결이 높고 셀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 참사는 결국 새만금이 원인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 같아,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합동재해대책반에서 뒤늦은 조사가 이뤄졌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재앙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부안 지역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분명한 인재이다. 수천년동안 자연이 이루어놓은 완벽한 조화를 단 십수년 만에 바다에 죽 그어진 방조제로 인해 그 모든 자연의 조화가 깨지고 생명 넘치는 땅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라며 "수년전, 새만금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부터 우려했던 재앙들이 끝물막이 공사를 함으로써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재앙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고 얘기했다. 이순애 기자 leesae@naver.com <이 기사는 위클리서울 종이신문 4월 8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뒤늦게 인터넷에 게재하는 점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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