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 녹슨 양철 지붕엔 애꿎은 참새떼들만 들락거리고…
정미소 녹슨 양철 지붕엔 애꿎은 참새떼들만 들락거리고…
  • 승인 2007.04.2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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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표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쉼표찾기`를 위해 산내마을에 들어간 고 교수는 지금도 시끄러운 정세와 지역현안들로 바쁜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거르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때론 낙엽지는 시기에 새싹 피어나는 이야기를,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여름 무더위 이야기를 접하는 일도 있겠으나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될 듯 싶어 빼놓지 않고 게재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깽깽이 소리도 반가운 산내마을 (11/29)

여름 삼복 더위가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마을 개 짖는 소리가 `컹컹`에서 `깽깽`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년 동안 잘 먹여 키운 개들이 한여름 땡볕에서 논밭 일로 힘들어 몸이 축난 마을 사람들에게 몸보신으로 제 생을 바치고, 다시 그 자리는 강아지들이 차지하였기 때문에 개 짖는 소리가 갑자기 강아지 짖는 소리인 `깽깽`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깽깽이 강아지들의 운명도 내년 여름이면 역시나 컹컹이 신세가 될 것입니다. 키우던 개를 어찌 잡아 먹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개들에게 깊은 정을 주면 거사(?)할 때 아무래도 한울안에 산 짐승인지라 정 떼는 것이 어려워 속앓이가 생기니까 아예 처음부터 쳐다보는 개 눈길을 피하며 밥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네 농촌이 다 그러하듯, 내가 사는 산내마을에도 12세대, 20여 명의 마을 사람 모두가 다들 노인네들입니다. 몇 년이면 환갑이 되는 저까지도 거의 막내 그룹에 속하니, 평소 젊은 사람은 구경조차 하기 힘듭니다. 신문이 우편으로 배달되는데, 이 마을에서는 신문을 보는 사람이 우리 뿐이어서 하루에 한번(우리 집 신문 배달이 없다면 일주일에 고작 한 두번) 오토바이를 타고 우편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도 `우체부 할아버지`라고 불러 마땅한 나이입니다.

마을에는 명절이나 되어야 도시 사는 자식들이 찾아와 아기 울음소리도, 고샅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뛰어 다니는 발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명절이 아닌 때에 젊은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은 불행하게도 노인들이 죽기 직전 심하게 아프거나, 아니면 초상이 났을 때입니다. 그러하니 큰 개들의 컹컹 짖는 소리보다는 강아지들의 깽깽 짖는 소리가 훨씬 듣기 좋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7.3%를 기록해 고령화 사회의 일반적 기준인 7%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더구나 농촌 지역은 이미 초고령 사회의 기준인 20%를 넘어 21.7%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82살로 가장 나이가 많은 남궁 할아버지도 농사규모가 적어 비용이 많이 드는 농기계 사용은 엄두도 내지못하고 노인 내외가 손으로 짓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앉으나 서나 마찬가지인 152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건강하신지 처음에는 70살도 못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고령인지라 정중하게  `어르신`하고 여쭸더니 앞으로는 `성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호통치신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깍듯이 `성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성님`들도 해마다 나이는 쌓이고, 그들이 농사일을 놓았을 때 누가 이 농촌을 이어갈 것인지 도무지 대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농촌에 가면 쓰러져 가는 흉물스러운 빈 집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라면 그 마을에서는 그래도 떵떵거리면 사는 집이었는데, 지금은 양조장은 찾아 볼 수 없고 정미소 녹슨 양철 지붕에 애꿎은 참새떼들만 옛 생각이 나서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하고 있고, 그 중에서 특히 우리나라는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민족의 혼이며 생명입니다. 식량 자급율은 쌀을 제외하면 겨우 5%에 불과하며, 쌀은 우리에게 단순한 식량이 아니며 나라의 주권이자 안보산업입니다. 미 국방성의 비밀문서에 의하면 미국은 향후 에너지, 군사력과 함께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곡물의 80%를 4개의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고, 우리나라 수입농산물의 60%를 미국계 자본인 카길사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쌀 마져도 개방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이 붕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고령 농사꾼들까지 도농간 소득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농가부채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생산비조차 보장되지 않는 소득으로 이 농촌을 버리게 된다면 그 상황은 아예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농촌이 붕괴된다는 것은 결국 먹거리의 터전을 잃는다는 것이고, 우리네 목줄을 외국 수입곡물에 내맡기는 비참한 현실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갖난 아이들의 울음 소리, 고샅을 내달리면 뛰노는 어린애들의 발소리가 끊긴 산내마을에서 허탈한 심정으로 강아지들의 깽깽하며 짖는 소리가 느닷없이 반갑기만 합니다.


▲ 산내마을에서 82살로 제일 고령인 하회탈 성님. `하회탈`은 내가 붙인 별명이고, `성님`은 본인의 강요에 의해서 `어르신`에서 `성님`으로 호칭이 변경되었음.  


 ▲ 녹슨 양철 덩어리로 변한 흉물스러운 빈 정미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12/8)

늦은 밤, 강물은 어둠을 삼켜 온 몸이 검게 변하고, 그러다가 간혹 지나는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에 허연 속살을 잠간씩 드러내곤 합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자동차 불빛을 강물에 닿기도 전에 아스팔트가 울컥 삼켜버리기 때문에 강은 모처럼 깊은 잠으로 빠져 듭니다. 그런 날이면 나도 생각까지도 접고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밤이면 차를 세우고 잠시 밖으로 나와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생각까지도 쉬고 싶은 그런 밤인데도 그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많은 생각이 머리에 스칩니다. 문득 신영복 선생의 글이 생각납니다.  그 글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간다는 생각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강둑에 서 있고 물만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만 흘러가는 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함께 흘러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세기가 다가온다는 생각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새롭지 않고 대상이 새로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나무가 나무에게, 165쪽>

내 자신이 시간의 여울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대상만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그런가 하면 자신은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는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념에 빠지는 날이면 갈고 닦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산내마을로 들어온 것이 낭만을 빙자한 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농촌에 터를 잡고자 하는 귀농도 아니었습니다. 지적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 식구 먹거리를 사먹는 것에서, 다는 아니더라도 내가 먹고 사는 일부분이라도 내 육신으로 지어 먹어야겠다는 어쩌면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결행하였던 것입니다. 아파트 생활에서 시골 살림으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불편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내에게는 "가사를 돕겠다"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상념으로 지적인 사치(?)를 누리다가도, 문득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늘그막에 별스런 애정 표현을 한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내 손을 꼬옥 잡아 줍니다. 아직까지도 손 꼬옥 잡아주는 것으로 부부간의 관계는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고 있는 내 자신이 어설프기 그지 없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그것 뿐인 것을 어쩝니까.

강물에 빗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만들면, 앞선 빗방울이 만들어낸 파문이 뒤이어 떨어진 빗방울이 만들어낸 파문에 묻혀 버립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서 던진 돌멩이는 세상이라는 수면에 얼만큼의 파문을 만들고 있는지. 흐르는 강물에 차가워지는 심장을 데우겠다고 했는데 되레 머리가 뜨거워지고 가슴을 차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수면에 일렁이는 잔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아내, 그리고 우리 식구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 못나서 항상 애달프게 살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틀간 김장하는 동안에 내가 고작 도운 것은 마늘 까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내의 만류도 있었지만 돕는다는 것이 일에 걸리적 거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느 해보다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금년,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반복적인 단순노동이면서도 그 노동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양한 메뉴에 맛도 가지가지이면서 거리에 즐비한 것이 식당인데도 막상 점심 한 끼니 해결하려면 무엇을 먹을 것인지 그 결정이 쉽지 않은데, 하루 세 끼니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매 끼니마다 밥투정 부리지 않을 정도로 식단을 짜는 것,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어려운 과제를 주부들이 날마다 풀어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먹는 것에다 입는 것, 그리고 살림살이 모든 것에는 또 얼마나 많은 손이 들어가는지…. 

빗방울이 눈이었다면 강물에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터인데 생각이 꼬리를 물고 허공에서 맘껏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강물이 돌멩이들과 두런거리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내 손만 잡지 말고 우리들 두런거리는 소리들도 들어 달라고…. 돌멩이들의 외침도….
 
 
▲옅은 안개가 끼어 수면에 비친 마이산이 선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찬 기운이 도는 이른 새벽에 인적이 없는 산사를 거침없이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럽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3월23일 이른 새벽에 촬영한 것입니다.>


▲춘분,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진다는 춘분이 되면서 농촌도 겨울의 쉼을 뒤로 하고 바빠지고 있습니다. 경운기가 아닌 소가 밭을 가는 풍경은 이제 농촌에서 흔한 풍경이 아닙니다. 인력이 축력으로 그 다음에는 기계력, 더 나아가 자동화되어가는 세상에 아직도 소로 밭을 갈아엎는 농사꾼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중에도 시나브로 살고 있는 아나로그 세대들이 남아 있어야 낭만도 멋도 맛도 있을 듯 싶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3월23일에 이른 새벽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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