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자유 그리고 산수유
새들의 자유 그리고 산수유
  • 승인 2007.03.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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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들의 자유

“야 ! 곱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의 자태가 아름답다. 색깔이 선명하니, 눈길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몸통의 색깔과 어우러져 멋을 창조해내고 있다. 반짝이는 눈은 핵을 이루고 있다. 몸 전체가 눈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새가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주변의 것들에 비해 돋보이고 있기만 하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가 우리 안에 갇혀 있다.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 모습이 우뚝한 것이다.

전주 동물원.

꽃샘추위로 인해 동물원은 무겁게 가라 앉아 있다. 간간히 햇살이 비추고 있기는 하지만, 심술쟁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보인다. 3월 중순이니, 이제 봄의 기운이 넘칠 때도 되었다. 그런데 삭풍의 심술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을씨년스러움 속에서 만난 새의 자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의 활기에 꽃샘추위의 심술이 통하지 않았다. 창공을 마음껏 날아올랐다가 활강하는 모습이 그렇게 유연할 수가 없다. 그 유연함에는 강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물 흐르듯 움직이는 새의 모습에는 속 깊은 사려가 배어 있다. 하나하나의 몸동작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 바탕이 되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새의 자유.

자유가 삶을 얼마나 높은 곳으로 승화시키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새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 안의 동물들의 모습이, 그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유를 구속당하지 않고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자유는 그만큼 가치를 가지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과 내재적인 구속으로 나눌 수 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내부에서 작용하는 구속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압박하는 것이다. 이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생활 습관을 비롯하여 사회의 문화적인 작용 등 아주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몸에 배어버린 생활 태도다. 자신도 모르게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새들이 자유를 누리듯, 우기가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면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모두다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의 경이로움에 전율하게 된다. 그런 세상에서의 삶은 기쁨이요, 환희요, 행복이다. 자각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들의 모습에서 세상의 향기에 젖는다. 삶의 맑은 향은 바로 자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를 누리게 되면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버려야 한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굴레들을 모두 벗어버려야 한다. 자유를 통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산수유가 보여주는 봄

구름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하늘에 산수유가 피어 있다. 노랑이 제 색깔을 유지하지 못한 채로 흔들리고 있다. 선명하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 물론 노랑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면 더욱 더 빛이 나겠지만, 그 못지않게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화엄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좋다.



화엄의 세상은 부분을 아우르는 전체 속에서 더욱 더 개성이 돋보이는 것을 말한다. 홀로 독립되어 있으면, 분명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따로 있으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 희미해지고 그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 그 것이 전체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것만이 가지고 있는 향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구름에 의해 산수유의 노랑은 희미해졌지만, 어울림으로 인해 주변의 풍광에 돋보이고 있었다. 산수유가 전하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천사(전북 순창군 소재)의 봄은 산수유로 인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산수유가 없었다면 봄은 사라지고 겨울의 흔적만이 난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산수유가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인생이 들어 있다. 살다보면 어둡고 산만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불만이 터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고통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달라진다, 새로운 즐거움을 위해 필연적인 전제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긴장은 긴장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긴장의 이면에는 이완이 분명 함께 존재한다. 딱딱함의 이면에는 유연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긴장이나 딱딱함은 언제든지 다른 상황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면 놓아버릴 수 있게 된다. 놓아버리게 되면 고통은 그 순간에 기쁨으로 바뀌게 된다. 불행이 행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놓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집착하게 되면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진정시키면서 천천히 생각하고 실천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놓아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놓아버리고 사랑하게 되면 향이 난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만, 시나브로 진해져 가는 것이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모두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비결은 평범한 데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행복한 세상에 들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것을 추구함으로 우리는 불행해지는 것이다.

구름이 있기에 산수유의 향이 우뚝할 수 있다. 산수유를 인해 강천사의 봄은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나가 소중하다. 어제의 나는 흔적일 뿐이다. 내일의 나 또한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다. 내일의 나를 위하여 놓아버릴 수 없으면 사랑할 수 없고, 결국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산수유가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 봄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keesan@hanmail.net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한국아동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녹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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