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 승인 2007.01.2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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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표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성수면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쉼표찾기`를 위해 산내마을에 들어간 고 교수는 지금도 시끄러운 정세와 지역현안들로 바쁜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거르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때론 낙엽지는 시기에 새싹 피어나는 이야기를,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여름 무더위 이야기를 접하는 일도 있겠으나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될 듯 싶어 빼놓지 않고 게재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가을에는 - 최영미 (9/22)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어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이제 조금 여유가 (9/22)

지난 6월 21일 교수회 임시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3개월 동안의 준비를 거쳐 어제 오후 4시 제10대 교수회 임원선거를 위한 총회를 개최하였다. 교수회가 해체 위기까지 가버려 수렁에서 건져내는 일을 올 여름 유난히 불볕 더위인데도 비상대책위 위원들과 선거관리위원들이 10여 차례의 회의를 통해 선거규정을 만들고, 총회에 교수들을 독려하여 많은 회원 교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교수회 임원선거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새로 출범하는 제10대 교수회 임원들의 의지가 든든하게 보이니 튼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한결 가볍고, 그동안 노고가 보람있게 된 셈이다. 

2시간 가까이 교수회 총회 사회를 보느라고 피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7시부터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초청 <국가보안법과 한국 정치의 미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연대사를 하게 되었다. 강의는 직업이라서 그래도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대중연설에 있어서는 노회찬 의원이 워낙 달변이라서 자칫 망신살이 뻗칠까봐서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고 또 우리 대학에서 노 의원을 초청하였으므로 당연히 교수가 환영(총장이 해야하는데 총장은 국보법 철폐와 같은 주제에는 몸을 사린다)하는 것이 도리일 것으로 생각되어 흔쾌히 나서기로 하였던 것이다.

본 강연에 앞서 시작하는 연대사는 원래 본 강연의 강사를 소개하는 정도에서 가능한 짧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연대사 준비를 그 정도만 하였는데, 서울에서 내려오는 노회찬 의원이 차량이 밀려서 약간 늦을 것 같다면서 거기에 맞추어 길게 해 줄 것을 사회자가 요청한다. 해서 별 수 없이 대학 다닐 때의 경험을 비롯하여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풍자를 섞어 설명하였더니 청중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연대사를 마치고 저녁에는 비대위 위원들과 뒷풀이로 까페에서 늦게까지 술자리가 벌어지고, 노래방까지 전전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시. 노래방에서는 18번인 이동원의 <이별노래>를 오늘도 불렀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구입하고 채 읽지 못했던 <우리 역사 최전선 : 박노자, 허동현>,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 김민수>, <월경(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 김봉균 외 55인 공동집필>, <이청준의 인생 : 이청준> 등등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도하다 도중 하차하였던 프리미어(Premiere)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반달곰이 있는 지리산 자락의 문수사 (9/22)

지난 주말 성묘를 다녀왔다. 여동생네 식구들과 임실 대명휴게소에서 만나서 함께 출발하였다. 작년에는 전주에서 만나 출발하였는데, 산내마을로 이사를 와서 우리 내외가 전주까지 가는 것보다는 임실로 나가는 것이 가깝기 때문이다.

전주-남원-구례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아무래도 가을에는 국도변에 코스모스가 있어야 제 맛이 난다. 고종 사촌이 선산을 돌봐주고 있어, 벌초는 내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봉투를 준비해서 슬며시 놔두고 오면 된다. 사촌형은 선산에 오거들랑 점심을 자기 집에서 함께 하자고 그러지만, 고종 사촌이 농사도 짓지만 개 사육을 많이 하고 있어 어느 해인가 식구들이 개벼룩을 옮아온 적이 있어서 그 집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꺼림직하기도 하고, 시골 살림에 부담을 주지 말자는 취지에서 항상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다. 이번에도 도시락을 준비하여 섬진강변에서 소풍 나온 것처럼 둘러앉아 김밥을 먹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선산에 다녀와 돌아설 때마다, 죄짓는 마음이 든다. 봉건적인 관점에서 보면 종손이 대를 잇지 못해서 선조들을 돌봐줄 자손까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호주로 이민을 가버렸고, 그런다고 딸아이에게 그 부담을 줄 수도 없고, 사촌 동생들에게 그 역할을 떠넘길 수도 없고, 내 살아 생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내 죽음에 대해서는 수년전에 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약속하였다. 그러하니 의대 학생들이 해부용으로 사용하고 나서 화장하여 대학병원 구내에 있는 시신기증자 동산에 재로 뿌려지도록 되어 있으므로 내 사후는 내 식으로 정리를 한 셈이다. 우리가 추석 전에 미리 올 것으로 생각하였는지 이미 벌초가 되어있어 묘지가 깨끗하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니, 아버지를 비롯한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머리에 스쳐 자꾸  뒷꼭지가 가렵다.

고종 사촌네 집에 들렀더니 사촌내외는 출타 중이고 안사돈 어른이 더덕을 손질하고 있다. 안부 전해달라는 인사만 여쭙고 봉투만 내밀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해마다 몇차례 다녀가는 길인데도 눈에 뜨이지 않았던 <반달곰이 있는 문수사>라는 팻말이 보여 내친 김에 다녀가 보기로 하였다. 구례가는 방향으로 19번 국도에서 토지면 면소재지를 지나치면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을 따라서 오르면 되는데 처음에는 길이 편도 1차선으로 제법 다닐만 한데, 점차 경사도 급해지고 꼬불꼬불 S자형으로 길이 좁아져서 교차하는 차가 비켜가기도 힘들어진다.  국도에서 조금 들어서면 보이는 문수 저수지부터는 지리산 노고단 자락의 산 기운이 느껴지고, 계곡 이쪽 저쪽으로 다랑이 논들을 보느라고 자동차 속도는 저절로 낮추게 된다. 이 계곡이 <덕은내 계곡>이며 거의 30리 넘게 이어져 있다.

경사가 급한 좁은 길에 지쳐서 혹시 돌아가 버릴까봐 의도적으로 <문수사 몇 km>하는 표지판이 계속 이어진다. 산비탈에 있는 문수 마을도 코앞에 바로 계곡을 끼고 있는데 겨우 네 고랑이나 다섯 고랑밖에 안 되는 다랑이 논이 수십 층을 이루고 있다. 이 다랑이 논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짓는 이곳 농민들의 고단한 노동이 느껴진다. 이런 다랑이 논 농사 말고도 이 마을 사람들은 봄에는 고로쇠 물을 받고, 벌통을 놓아 벌을 치는 것으로 생계를 잇는다고 한다. 다랑이 논 여기 저기에 있는 벌통들은 겨울 날, 방 한 켠에 놓고 기르던 콩나물 시루처럼 이불 같은 부직포를 뒤집어쓰고 끈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있다. 콩나물 시루처럼 둥글 납작 펑퍼짐하지 않고 각을 잡고 다부지게 서 있다. 벌과 나비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날라다 주는 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돌아가 버릴까 하는 유혹을 이겨내며 겨우 겨우 올라섰더니 문수사 주차장이 나타난다. 대웅전이 하나, 그리고 절집들이 두어채로 작은 규모의 절이다. 우리나라에 문수사라는 동명의 절이 여러 군데에 있는데 문수보살의 성불과 관련이 되는 것 같다. 오늘 따라 스님은 뵈지 않고 누렁 잡종개 세마리가 툇마루에 네 다리 쭉 뻗고 오수를 즐기고 있다. 오가는 구경꾼들이 이 개들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다. 쇠창살에 가두어 둔 반달곰을 무슨 대단한 구경꺼리난 되는 것처럼 <반달곰이 있는 문수사>라고 오는 내내 표지판을 붙여 놓았다니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갇혀져 있는 반달곰을 보고 돌아서는데 두번 올 곳은 아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코스모스는 환하게 웃고 있다. 절간 곳곳에서.


▲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 섬진강을 따라 이 길이 나 있다.


▲  반달곰이 이 쇠창살에 갇혀 있다.


▲  문수사 대웅전


▲  절집의 굴뚝


▲  약수물. 지리산 자락이라서 약수물이 콸콸 쏟아진다.


▲  누워계시는 부처님


▲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절 내부


▲  절 마당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


▲  잡종견(혹시 진도견인지도 모르나)들이 천하태평으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개들이 이리 평안한 것으로 보아 문수보살이 성불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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