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원하지 않는 법을 '그들의 이름으로' 강행 처리한다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법을 '그들의 이름으로' 강행 처리한다고??
  • 승인 2006.02.22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분석> 끝없는 갈등 '비정규직법 개정안'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비정규직법 개정안를 두고 노동계와 정치권의 줄다리기가 격화되고 있다.
일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년 4개월째 미뤄지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2월 안에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을 비롯 노동계는 비정규직 개정안에서 파견제 근로자의 사용 제한이 관철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저지할 계획임을 천명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헌정 초유의 사태를 각오하고 강행처리 하겠다는 환노위 의원들과, 역시 마찬가지의 각오로 저지하겠다는 민노당 의원들, 그리고 노동계의 극한대립을 야기한 비정규직 개정안. 양측은 서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떠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현 비정규직 개정안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지난 17일 여의도에서 열린 노동계 집회 현장

현재 불법파견 근로자는 50∼6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 비정규직 근로자 전체를 보면 그 수가 850만 명에 이른다. 단순 수치도 문제지만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비정규직화 증가율이 더욱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이러한 현상은 "기업가들이 싼값에 노동력을 착취하고 해고해 버리는 이른바 `천민적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는 까닭이다"고 말하고 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문제나, 코오롱 집단 해고 사태 등의 바탕에는 천민 자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IMF사태에서 발생한 비정규직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가파른 증가율의 이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이 있었고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2003년 11월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 후 공청회와 시민단체 간담회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2004년 11월에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2005년 2월, 이해관계자들의 마찰로 법안 심의가 연기됐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민주노동당의 실력저지로 인해 개정안이 통과될는지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 등 두 개로 구성돼 있다. 비정규직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금지 원칙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에는 별도의 차별 금지 규정이 없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고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는 데 중점을 둔 개정안을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개정안이 현실적이 못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개정안에서 노동계와 정치권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안은 대여섯 가지에 이른다. 기간제 근로 분야에서 사용기간, 기간경과 뒤 고용보장 문제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파견직 근로 분야에서는 파견허용 업종, 사용기간 뒤 고용보장, 불법파견 부분 등이다. 그러나 이 사안들은 대부분 타협점을 찾았거나 협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파견 근로자의 사용 사유제한에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사용 사유 제한을 엄격하게 해야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용 사유 제한이 없는데서 찾고 있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사유 제한을 두는 것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이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환노위의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우원식 의원은 "사유제한을 받아들이면 기간제 노동자 370만 명 가운데 350만 명이 사유가 맞지 않아 일자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유제한이 있었던 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중소기업들도 다 문을 닫아야 한다"며 사유 제한 도입을 반대했다.
민주노총은 우 의원의 의견에 대해 `현실적 감각이 없는 비약`이라며 일축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천민 자본주의에 있다. 자본가가 근로자를 싸게 부려먹고 버리려는 인식이 제도와 함께 변해야 한다"며 "사유제한이 없으면 비정규직의 확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고 얘기했다. 현재 노동계의 현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동원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의 경우 판매가 늘어나는 하절기에 비정규직을 동원하는 것은 노동계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을 두고 있다"며 사유제한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임을 확실히 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용기간을 2년 이하(1년+1년 사유제한)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기업은 4년, 정부와 한나라당은 3년, 민주노동당은 사유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2년 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합의될 가능성은 크지만 확실한 것은 없는 상황이다. 현재 기간제 근로자들의 평균적인 계약기간은 대략 26개월이고, 2년 이상 근무자는 108만 명, 3년 이상 근무자는 7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정부측은 "(현 상황에서)노동권의 주장대로 3년에서 2년으로 기간을 단축시킬 경우 약 32만 명이 해고되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는 더욱 구체적으로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의 기술 숙련도가 향상돼 정규직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부가 해고를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노사간의 관계를 인적 자원 육성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하고 사장이 돈만 주면 되는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그래놓고 해고 인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사장들에게 해고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으로 보장된 기간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기간을 늘리는 것은 기업에만 유리하다는 얘기다. 편법이 난무해도 시정하려는 의지가 없는 정부가 `사용기간을 줄이면 해고가 우려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노동부의 입장은 더욱 가당치 않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현재 원칙은 2년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1년 9개월 사용하고 해고해버리는 식이다. 정부가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한` 사장님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며 "천민 자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부의 발언은 순진한 생각이다"고 비난했다. 노동부가 노동계의 현실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사용기간 뒤 고용 보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의원은 고용 의제를 보장하라는 것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것과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의원은 "고용의제를 하면 불법파견적발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규직만큼의 임금청구권이 발생하면 사업장이 도산한다"며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이 1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 사업장들이 임금 청구권 때문에 도산하면 비정규직은 어디 가서 뭘 먹고 사느냐"며 고용의제가 현실상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고용의제 보장 사안에 있어 중소기업이 문제라는 인식 면에선 이 의원과 같은 입장이지만 해결책의 도출면에선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국제시세에 따라 부득이하게 사야 하듯이 인건비도 마찬가지다. 인건비는 노사 관계와 시장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문제"라며 "설사 멍하니 있다가 망한다면 그것은 적응력이 떨어진 것으로 결국 도태된 것 아니냐"며 고용의제를 중소기업의 몰락과 연결짓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정규직 개정안 문제를 들여다보면 한가지 모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 정반대 되는 의견을 내놓는 두 집단이 서로 노동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례로 사용기간 3년을 주장한 노동부는 그 안이야말로 진정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큰 소리를 낸다. 파견허용 업종의 기준을 포지티브로 할 것이냐 네거티브로 할 것이냐를 두고 나오는 잡음도 마찬가지 사례다. 이는 입장에 따른 차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정부가 말하는 3년 사용기간의 요지는 결국 2년 넘게 일하게 할 수 있으니 그게 `안정`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서 봤을 때 10년을 사용기간으로 두더라도 언제 해고당할지 몰라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치권의 제안보다도 짧은 1+1 안을 고집하는 것이다. 어차피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니 차라리 비정규직의 남용이라도 막아보자는 게 노동계의 생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론적인 바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그러나 협의 단계에서 이와 같은 기본적인 바램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우리나라의 연공급 체계의 일반화, 낮은 노조 조직률·단체협약 적용률 등 적용 요건이 조성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당연한 가치달성을 위해 실효성이 척도가 된 것을 두고 노동계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차별대우에 대한 세부적 판단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개정안의 통과는 비정규직 양산의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노동계는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개정안이 어떠한 필요성에 의해 논의됐는지에 대한 정부의 심각한 고민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개정안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름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하나 기자 gellover@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