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횡보 염상섭의 품에 안기다!!
할아버지, 횡보 염상섭의 품에 안기다!!
  • 승인 2005.07.1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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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 웃도는 불볕더위, 종묘공원 현장


#종묘공원의 명인 붓글씨 어르신. 이 어르신 근처엔 항상 구경꾼들이 몰려 있다.

"뭐요? 氣자가 氣를 못받게 생겼다구?"
장마도 끝나고 한낮 불볕 더위가 작렬하던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 4가에 위치한 종묘공원은 말그대로 인산인해. 장마 때문에 한동안 바깥 출입을 못해 발등이 근질근질하신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신 탓일까. 장기를 두는 어르신, 바둑을 두는 어르신, 막걸리 한 잔에 오징어 다리를 뜯으시는 어르신, 술이 얼콰해진 얼굴로 다른 어르신과 싸우시는 어르신, 진한 화장에 화사하게 차려입은 할머니와 정담을 속삭이는 어르신….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한 장면은 붓글씨를 쓰는 것이었고, 또다른 한 장면은 공원 안의 한 동상에게 일어난 희귀한 사건(?).
▲장면1
먼저 붓글씨를 쓰는 한 어르신. 기자가 알기로는 이 어르신은 종묘공원으로 출근한지 꽤 되는 말그대로 종묘 명인. 항상 같은 자리에서 땅바닥에 깔아놓은 화선지위에 멋드러진 솜씨로 붓글씨를 쓴다. 이날 방문했을 때는 마침 `氣`자를 큰 글씨로 쓰고 그 아래에 `喜` 자와 `樂` 자를 조그만 체로 쓰고 있었다. 이 명인 어르신의 뜻풀이는 氣를 받으면 기쁘고 즐거워진다는 것. 한참 서예 삼매경에 빠져 있는 어르신. 주변에 몰려 있는 어르신들 중 한 분이 `고춧가루`를 뿌렸다.
"`氣`자가 `氣`가 빠져 있어…."
잠시 그 간섭의 주인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예 어르신. 끝내 웃음을 터트리며 "요즘 내가 그런 것 같여. 밤 일도 부실하고…." 주변에 서 있던 어르신들 폭소. 끝내 `氣`빠진 `氣`자를 쓴 화선지를 간섭 어르신에게 전달해주고 다시 `氣`자 쓰기에 몰입하는 서예 어르신. 이래서 종묘공원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횡보 염상섭 시인의 생가가 종묘공원 근처다.

▲장면2
종묘공원을 샅샅이 둘러본 다음 마악 큰 길로 빠져나오려는 찰나, 또 하나의 재밌는(?) 장면이 포착됐다. 나무로 된 벤치 위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한 어르신의 동상.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횡보 염상섭 선생이다. 보통 어르신들의 몸집보다 세배는 더 큰 몸을 벤치 위에 올려놓고 길가는 행인들을 사시사철 지켜보고 있다. 어라? 근데 저건 또 뭐지? 횡보 선생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린 채 곤히 잠들어 계신 한 어르신. 그 모습이 마치 아버지 무릎 위에서 잠든 어린아이 마냥 순수하게만 보인다. 기자가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그저 곤한 잠에 푹 빠져 계신다. 어르신, 편히 쉬십시오.


#횡보 염상섭의 동상 무릎에서 곤한 잠에 빠지신 어르신.

참고로 횡보 염상섭 선생은 1897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 1920년 `폐허` 창간 동인으로 신문학 운동을 시작한 이래 그 유명한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등 많은 작품들을 발표, 한국 소설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동상이 종묘공원에 세워진 건 생가터가 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정명은 기자 jungm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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