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대재앙- 멕시코 만 사태

2010-07-06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루이지애나 앞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요하네스버그와 포트엘리자베스, 그리고 더반 등 남아공의 각 스타디움에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월드컵 경기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인 미국 루이지애나 앞바다는 예기치 않은 재앙(災殃)으로 마치 인류의 종말이 도래한 것처럼 초비상 상태다.

지난 4월 20일 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로부터 남동쪽으로 50여 마일 떨어진 멕시코 만 1,500m 깊이에서 영국 BP(British Petroleum)의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의 파이프가 절단되면서 하루 평균 1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벌써 3개월째 분출(噴出)되고 있어서다. 그 사고로 11명이 사망하였고, 7명의 중상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그 같은 인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에 대한 추념(追念)의 여유도 없이 세계인의 우려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원유 분출을 막아낼 것인가에만 집중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인명을 중시하는 미국이나 영국 등이 희생자에 대한 일말의 안타까움조차 외면한 채 오로지 원유 분출구(噴出口)를 봉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 사태를 조기차단하지 못 하면 필경에는 사상 최대의 재앙으로 확대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멕시코 만 원유유출 사고는 20년도 더 전인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 만의 ‘브라이 섬(Bligh Is.)’에 좌초되면서 원유를 쏟아낸 ‘엑슨 발데즈(Exxon Baldez)’ 호를 떠올리게 한다. ‘알예스카 오일 터미널’에서 5,30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한 엑손 발데즈 호는 그 사고로 모두 11개의 탱크 가운데 8개가 파손되면서 적재량의 20%인 1,100만 배럴을 쏟아내어 순식간에 알래스카 만 일대를 죽음의 늪으로 만들어버렸다. 유출된 원유는 곧 끈적끈적한 ‘미트볼’로 뭉치면서 해류를 따라 남서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불과 열흘 후인 4월 3일에는 140마일 떨어진 케나이 반도를, 20일 후에는 코디악 섬 북단 곶(串)을, 그리고 56일 후에는 470마일 떨어진 트리니티 섬에 이르러 해안을 통째 둘러쌌다. 바로 그 무렵 우리들은 해안 바위틈에서 기름 범벅인 채 숨도 쉬지 못 하고 헐떡거리는 가마우지의 안타까운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고 경악을 금치 못 했던 것이다.

나중 밝혀진 대로 선장 하젤우드의 태만과 과실이 분명한 엑손 발데즈 호 사고는 향후 다섯 달 동안 알래스카 주민 1만1,000명을 연동원(延動員)토록 만들었고, 1,400여 척의 선박과 100여 대의 항공기가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음에도 마무리가 지어지기까지는 무려 2년도 더 넘는 1991년 여름까지 그 악전고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뭇 해안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갯벌을 파헤치면 여전히 기름 찌꺼기가 번져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현지주민들의 생계를 돕던 홍합은 그 씨가 완전히 말라버린 가운데 원래의 활발하던 서식환경을 회복하기까지에는 아직도 20년이 더 소요되어야 한다는 비관적인 보고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더 큰 손실은 많은 사람들이 관광명소이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를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는 암울한 사실이고, 거기에 청징(淸澄)의 대명사인 알래스카 땅과 물에 대한 심미적(審美的)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 버렸다는 사실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저지르는 인적재앙 가운데 기름사고가 얼마나 치명적이면서 회복이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우리는 ‘자기 무덤파기’를 멈출 수 없는가

일각에서는 멕시코 만 원유분출량이 하루 5,000배럴 정도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그 20배 상당인 10만 배럴도 넘는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하고 두 달도 더 넘은 지금까지의 양만으로도 이미 악몽의 엑손 발데즈 호 때를 능가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까지 사고 유발자인 BP의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유분출은 계속되고 있다. BP는 처음에는 유출구를 봉쇄하는 보편적인 ‘톱 킬(Top Kill)’ 방식을 채택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뒤이어 차선책인 타이어나 골프공 등의 고형물을 집어넣는 ‘정크 숏(Junk Shot)’ 방식도 워낙 분출력이 강하여 성과는 전무한 상태라고 한다.

문제는 분출된 원유가 해류를 타고 어디까지 확산될 것이냐는 데 있다. 사고가 난 곳은 미국 루이지애나 남쪽 바다지만, 그곳 해류인 ‘멕시코 난류’가 플로리다 반도를 휘돌아 대서양으로 빠져나간 다음 이윽고는 북미 동해안을 치훑어 오르는 ‘걸프 스트림(Gulf Stream)’과 합류되고 있어서 그러면 영국이나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유럽 전역의 서부 해안까지도 그 재앙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현장을 네 차례나 방문한 끝에 ‘이 사고가 국민정서를 나쁘게 한다는 점에서 9·11 테러와 닮았다’며 월드컵 경기도 외면한 채 사후수습에 진력하고 있는 것이다.

1983년 10월, 필자는 MBC-TV 해양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스코틀랜드의 애버딘(Aberdeen)에서 BP가 제공한 헬기편으로 북해(北海) 한가운데서 작업 중인 석유시추선에 탑승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그 시추선에는 대략 50여 명의 전문 기술자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교대하면서 하루 30여 미터씩 굴착하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채취하는 흙을 분석하면서 석유부존의 가능성을 측정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성공확률은 채 5%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의 시추를 완료하기까지 투자되는 돈이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던가.

그런데 어떻게 하여 북해를 독점하던 BP가 자국 영해도 아닌, 미국의 루이지애나 턱밑까지 시추선을 끌고 왔단 말인가. 그 동안 북해유전이 동이 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리고 또 미국은 여전히 이란이나 러시아 및 베네수엘라로부터 다량의 원유를 수입하는 처지이면서, 어떻게 자국 앞마당을 영국 BP에 내주었단 말인가.
화석연료의 과다사용이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여, 필경에는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극단적 예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유시추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자기 무덤파기’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