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영 해운대 여름해양경찰서 여경구조대장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신념으로 늘 준비하며 기회 쟁취해야

2013-09-12     박종면 기자

최초, 유일의 여성 특공대원 출신

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가 있다. 남들처럼 피서니 바캉스니 하며 물놀이 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피서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보람있는 ‘기회’를 반기는 해양경찰. 그 중에서도 여성과 어린이 안전만큼은 꼭 지켜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늘 ‘준비’하는 여성 해경. 해운대 여름해양경찰서 여경구조대장 정현영 경사를 일컫는 말이다.

정 경사는 여경구조대장 이전에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특공대원 출신이다. 국내 유일의 여성특공대원이라는 기록은 2008년 이후 깨지지 않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정 경사는 해양경찰이 되고 싶어 1년 동안 공부에 전념해 2002년 104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해양경찰에 합격했다. 해경 공채에 합격한 뒤에는 해양경찰 특공대원이 되고 싶어 인명구조자격증, 수상안전강사자격증, 생활체육지도자 수영3급 등을 갖추고 꾸준히 체력을 단련한 결과 2008년 최초의 해양경찰 여경특공대원으로 선발됐다.

그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피서객들을 만나기 위해 꾸준히 수영 등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다. 늘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여경구조대는 어떤 일을 하나?

물에 빠진 여성이나 어린이를 구하고 미아찾기, 찰과상 환자 치료 등을 담당한다. 특히 물에 빠진 여성을 구하고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접촉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 여성구조대가 구조하면 성추행 시비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또 해수욕장에서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해양경찰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본래 운동을 좋아해 운동선수, 특히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었다. 태권도는 4단 유단자이고 킥복싱은 진 경험이 없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로 운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여군에 지원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 해양경찰을 선택했다.   

여성 특공대원 1호라는 점에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최초의 여성 특공대원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여성 특공대원 출신이기도 하다. 요즘은 여경 특공대원을 못 뽑고 있다. 특공대에 여성 인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남성과 똑같은 조건으로 선발하다보니 여경이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윗몸일으키기, 1,500m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수영 자유형 100m, 횡영 25m(4㎏운반), 잠영 25m, 수중 장비착용 같은 것들을 다 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성이어서 힘든 점은 없나? 


육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 방학 때 남들처럼 캠핑을 갈 수도 없다. 한 번은 아이가 참여수업에서 발표한다고 꼭 오라고 했는데 못 갈 형편이었다. 그 날 인명구조대회 부산해양경찰서 대표로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가 메달 따서 보여주면 안 되겠냐며 설득했다. 다행히 우승해서 메달 보여주니까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당연히 사람을 구했을 때다. 작년에 열한 살 된 아이가 허유적대고 있는 걸 발견하고 구조했는데 어머니가 무척 고마워 하셨다. 미아 신고된 아이를 물에서 찾은 경우다. 이안류(역조) 때는 특히 사고가 많다.
또 딸이 자랑스러워할 때도 보람을 느낀다. 두 딸은 엄마의 열렬 지지다. 아이들에게 미안해 “엄마, 해경 그만 둘까?” 물어보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라고 한다. 그만 두더라도 딸에게 물어보고 그만둬야 한다(웃음). 

딸이 엄마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적극 밀어주겠다. 딸에겐 엄마가 롤 모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지 않다. 즐기기 때문이다.

생활신조는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준비하며 다가올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 해경에 들어올 때도 그랬고, 특공대 지원할 때도 아이 돌 지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제1회 특공대 근무 희망자 모집공고가 나서 지원할 수 있었다.

여름해양경찰서 여경구조대 근무하게 된 것도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한 것을 서장님이 아시고 구조대 근무해보라고 하셨다. 2009년부터 출산 때만 제외하고 여름 해양경찰서에서 계속 일하게 됐다.

꿈은 무엇인가?

아이 말대로 할머니 될 때까지 해경 근무하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경특공대원을 양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