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3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3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07.0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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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바다를 향해 나아가 큰 꿈을 펼쳐야 할 대학생, 청년들에게 향파는 어떤 기상을 요구하고 있었을까?

1954년 7월 23일자 <수산 타임스>에 실린 한 편의 글은 그 당시 학생들을 향한 향파의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바다를 개척해야 할 학생들을 향한 마음가짐을 설파하고 있다. 그 글은 <청년의 향기>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그는 이 글의 서두에서 “순수하고 정직하고 야성적인 곳에 청년다운 매력이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약고 경계심이 많고 타산적인 청년은 벌써 청년으로서의 경지를 떠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명제는 아주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청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9포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먼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특히 순수하고 정직하기만 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향파는 서두에서 제시한 자신의 청년상을 글을 마무리하면서도 다시 강조하고 있다.

“향기있는 청년! 향기를 청년의 한 미덕으로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청년들은 좀 더 순박하고 좀 더 정직하고 좀 더 야성적이어서 발전성 있는 내일을 우리들에게 보장하고 예고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는 청년의 상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면, 결론 부분에서는 청년은 우리에게 그러한 상을 보장해주어야 할 것으로 더 강하게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좀 더’ 라는 수사를 달긴 했지만, 향파는 왜 이렇게 청년의 순박성, 정직성, 그리고 야성을 중요시했을까? 향파는 “청년으로서의 창의성이 없는 곳에선 진보성 있는 아무 다른 명일의 역사를 바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세계 역사의 발전은 창의성과 진보성을 지닌 청년들이 개척해왔음을 향파는 인식하고 있었다. 새로운 역사를 추동하는 근원적인 힘은 청년들이 지닌 순박성, 정직성에 기초한 야성이었다는 것이다. 이 힘이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야성은 단순한 야성이 아니라, 순박성과 정직성을 지닌 야성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야성만이 역사를 제대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파는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수강을 하면서, 제대로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단죄를 내리고 있다.

“어떤 교실에 들어가 보면 어떤 학생들은 필기도 않고서 지껄이는 교수의 입만 멍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과목과는 관계도 없는 잡지 등을 뒤적거리고 있는 자도 없지 않다. 마치 길바닥에서 광고판을 쳐다보듯 하고 있다. 극장 막간에 나와 내주의 상연예고를 듣고 있는 눈표정 그대로다. 어떤 심정에서 그러는 것인지 정말로 이해하기 곤란하다. 이러고서도 대학이 징병기피소란 말을 변박하려 든다면 넌센스 이상이다”.

비참한 남북간의 전쟁을 치른 후, 일부 청년들이 학교에 적을 두는 것으로 군대 입대를 기피했던 사회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신으로는 미래의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으로서는 자격미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순박과 정직에 바탕을 둔 야성을 지닌 청년이라면 이러한 모습은 보이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순박, 정직을 바탕으로 야성을 갖지 못하고 물욕에만 영리한 청년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세계관이나 생활정신이란 것도 형편없이 산만멸렬하다. 물욕이란 것에 대해서도 청년들이 오늘날처럼 영리했던 적은 없었다. 사람 다루는 데 있어서도 이토록 기술적이었던 시절은 일찌기 없었다. 청년으로서의 순박성은 벌써 이미 없어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여하튼 슬픈 일이다. 탄식할 문제다. 청년이 순박하지 않고 청년이 정직하지 않고 청년이 야성적인 패기가 없는 곳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50년이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지금, 이곳의 청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시대나 지금의 대학생들의 형편이나 변한 것도 있지만, 여전한 것도 있는 듯하다. 특히 졸업 이후에도 취업이 불투명해진 이 시대 상황 속에서 대학생들의 순박하고 정직한 야성을 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청년들에게 현실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상황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어느 시대나 순박하고 정직한 야성을 가지고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은 있다. 50년 전 이런 정신을 가지고 바다를 개척했던 청년들은 반 세기가 지난 후에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대양을 정복했다. 세계 곳곳에서 야성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50년 전의 시대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여건은 그때와 비교하면 훨씬 나을 수 있다. 지금, 이곳의 청년들이 50년 전 향파 선생이 주문했던 <청년의 향기>를 품을 수는 없을까? 순진하고 정직하고 야성을 지닌 청년으로 자신의 미래를 당차게 개척해 나가는 세계 속의 청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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