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항 냉동냉장창고는 요즘…
부산 감천항 냉동냉장창고는 요즘…
  • 하동현
  • 승인 2019.07.0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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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그 곳엔

부산 감천항. 감천(甘川)의 어원은 감내(甘內)에서 왔다한다. 감은 ‘검’에서 유래되고 ‘검’은 신(神)의 뜻이며, ‘내’의 한자 표기가 천(川)이니 신이 내린 물이 달고 좋은 바닷가 마을 정도의 풀이가 될 것이다.

황량한 매립지였던 감천항에 1990년대부터 정부지원을 업고 냉동냉장창고들이 속속 들어섰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수십 개의 거대한 창고건물들이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부두 방파제 쪽으로 국제수산물 도매시장까지 들어서며 원양, 연근해 어획물의 하역, 보관, 가공에서 유통까지 해양 관련 산업형태는 다 품고 있는 모양새다.

감천항에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각국에서 수산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산식품 미래산업화 거점육성’ 사업과 ‘씨푸드벨리(Seafood valley)’ 사업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항만 기능의 부두에다 수리조선소에, 소형어선을 부리는 어촌계까지 있어 유동인구 증가에 따라 주유소와 식당, 심지어 모텔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있다.

감천항 주변에는 송도해수욕장과 천혜절경의 암남공원이 지척거리에 있다.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이 인접해 해안관광벨트로도 손색이 없다. 어둡고 칙칙했던 창고건물들 외벽에 수산물과 바다와 배를 디자인한 참신한 로고들을 그려 넣고, 밝은 색을 입혀 바다를 아우르는 미관도 살리고 있다.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였던 문화마을은 한국전쟁 전후로 태극도 신앙촌이 주도해 산자락에 형성돼 있다. 바다 조망과 독특한 미로체험에, 골목문화축제가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다.

 

고정형 장치산업의 운영방식

냉동냉장창고업은 장치(藏置)산업이다. 화물을 적재할 공간을 확보해놓고 위탁물량을 보관하거나 통관절차를 밟는 수출입물량을 임시로 보관하는 보세(保稅) 일이 주 업무다. ‘식품산업진흥법’에서의 등록과 냉동냉장수협이 자체 집계한 2018년 말 통계를 보면, 전국에 900곳(진흥법상 769곳, 기타 131곳), 저장능력은 460만 톤 정도 규모를 가진다. 다수 영세 소규모를 제외하고, 산업화시대에 걸맞는 5,000톤급 이상의 대형 냉동냉장창고는 부산(122곳 중 65곳)이 압도적이고 경기지역이 그 뒤를 따른다. 주가 되는 일반 수산물에 참치류 같은 초저온 물량, 과일과 채소를 아우르는 농산물, 가공식품, 축산품, 낙농제품에 빙과류 등 보관품목도 다양하다.

화물마다 포장규격과 형태가 다르지만 보관의 기본단위는 1.2X1.0m 혹은 1.1X1.1m 규격의 나무 재질이나 플라스틱 팔레트(Pallet) 적재다. 드럼통이건 카톤박스건 마대포장이건, 통마리 냉동양고기 같은 벌크 형태 짐들도 캠프파이어 장작 쌓듯 허물어지지 않게 차곡차곡 팔레트에 쌓는다. 적재 후 사각 철봉으로 고정해 단위규격화해서 보관한다. 부산의 경우, 입출고 때 적재와 상차작업은 부산항운노조 소속 하역반원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일반 대형창고 규모는 6,000~1만㎡(2,000~3,000평) 부지에 7, 8층 건물로 층마다 4, 5개의 개별 룸이 있고, 전체 수용능력은 2만 톤 정도다. 6~7만 톤급 초대형도 등장했다. 각 룸마다 보관대상화물에 적합한 온도를 세팅하고 유지해야 한다. 농산물 같은 냉장화물 방의 온도는 5도 이하, 냉동수산물은 영하 20도 이하 하는 식으로.

최적 온도 자동 관리 시스템, 외부방열 시스템, 재고관리시스템, 최첨단 물류시스템 구축을 통해 전산으로 보관물량과 입출고 물량을 관리한다.

감천항 냉동냉장창고 내부
감천항 냉동냉장창고 내부

성수기, 비수기에 울고 웃다

일반적으로 동절기가 성수기고 하절기를 비수기로 본다. 수산물의 경우 북양 명태와 포클랜드 오징어, 대만선단과 한국선단의 꽁치 반입시기 정도가 성수기이다.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선망의 금어기와 겹치고, 어선세력의 급감, 원양어업의 어획부진에 급등한 환율로 인해 수입물량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다. ‘한일 어업협정’도 큰 영향을 끼친다. 볼 멘 소리가 나온다.

“가장 활기 넘칠 때가 ‘생물’이라 일컫는 고등어를 주로 어획하는 대형선망들의 물량을 ‘동결처리’ 할 때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카톤박스에 선별해 담아오는 고등어나 플라스틱 바스켓 형태의 오징어를 중량을 규격화한 상자에 나누어 담고, 선도 유지를 위해 신속하게 얼린 후 입고시키는 작업이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나 창고의 하역반들이나 모두 정신없다시피 서둘러야 한다. 일반 냉동냉장물과 달리 보관료와 기본 부대경비 외에 상하차비, 작업비, 동결비 항목까지 추가되므로 창고 측에서 보면 수입면에서도 월등한 효자품목이다. ‘한일 어업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덩달아 입고물량이 대폭 줄어들어 채산성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드문 케이스지만, 수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는 일본으로 향하던 물량들이 감천항으로 몰려들어온 적도 있다. 원전사고와 수입화물의 증대로 냉동냉장창고들이 반짝 호황을 누렸다. 엄밀히 보면 그리 반길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화물과 유통은 말 그대로 돌고 돌아야한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며 순환이 되어야지, 화물이 그냥그대로 창고에 들어 차 적체되는 것은 소비경기 침체로 여길 수밖에 없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과거에도 대기업들이 직수입하는 엄청난 양의 신선식품과 돈육, 우육에 계육까지 유치한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광우병이나 구제역 같은 가축전염병에, 조류독감이라도 발생했을 때는 이 화물들의 유통은 기한도 없이 정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막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물량들로 인해 회전율이 떨어져 아예 다른 물량을 유치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일이었다.

 

창고운영과 영업에 따른 애로사항

문제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물량유치의 어려움부터 들어본다. “주 품목인 수산물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생산량의 예측과 관리의 어려움이 있어 적정량의 물량확보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렇다 보니 비수기에는 물량을 유치하기 위해 보관료와 작업경비를 싸게 제시하는 요율덤핑 경쟁이 심해진다. 부산항운노조와의 관계에서 오는 가격 경쟁력 약화문제도 꼽을 수 있다. 비수기에는 수산물 뿐 아니라 타 지역 일반냉동냉장 화물도 유치해야 한다. 하지만 항운노조 측 발생경비와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자체적으로 보관료를 올리다 보면 수도권 물류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표준화, 규격화 된 공산품이 아니라 생물을 동결한 상태의 물량이니, 보세(保稅)창고의 기능에서 수출입화물의 품질검사는 세밀하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하루에도 수차례 안전한 식용여부를 조사하는 식약처, 수산물 품질검사원, 농림축산 검역본부 등에서 검사 시료를 채취하고, 밀수여부를 확인 추적하는 세관의 현물검사가 이루어진다. 집행권도 없지만 자체적으로도 이러한 안전관리시스템을 수립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한다. 창고근무자라면 기본 무역관련 서류와 식품관련 법규정도는 상세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보관비와 물류발생경비를 절감하고자하는 의지는 백 번 이해하지만, 가격 후려치기와 이런저런 갑질에 가까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대형 화주들도 있다.

수출선적 시간이 임박한 물량에다 고기 몇 상자를 재래시장 좌판 아낙네들에게 넘기려 줄을 서서 대기 중인 트럭 소총부대들까지, 하루에 수 십, 수백의 화주를 상대하며 정확하고 신속한 입·출고를 진행해야한다. 불황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막대한 양의 화물을 입고시켜놓고 부도가 났던지 잠적해버려 보관료는 물론항운노조의 노임까지 몇 달, 몇 년을 징수하지 못하는 예도 허다하다. 곶감 빼먹듯 판매하기 쉬운 물량만 출고 해 먼저 유통시키고, 판매가 어려운 악성 재고화물을 남겨두고 연락두절인 하주도 부지기수다.”

유통기한을 초과해 상품가치를 잃은 화물도 있다. 원화주의 허락 없이는 폐기 처리할 수도 없다. 유해식품 관리 규정대로라면 세관의 허락을 득하고 반출해 소각한다든지 안전하게 처리해야겠지만, 상위법인 일반 민, 상법에 따라 잠적한 화주라도 그 소유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따로 악성재고들을 모아놓고 내용증명을 보내며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에 담보대출 받은 물량들 중에서 이 같은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거래당사자도 아니고 단순보관과 관리기능이 주 임무지만 복잡하게 얽힌 소송이나 수사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비전과 전망

냉동냉장창고의 미래 핵심 키워드는 ‘대형화와 자동보관시설의 도입’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물량이 있건 없건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물량이 없다고 유지비와 인건비가 줄지도 않는다. 고정비용을 줄이려는 시도로 근래 건립되는 창고들은 거의가 자동화창고다.

자동화의 이점을 열거하면 냉난방비와 유류비 같은 고정경비 절감, 장비효율성 강화와 보관공간의 효율적 이용, 관리인력 절감, 가시성 제고에 따른 적극적인 규제 준수, 제품 손실 방지를 통한 고객 서비스 강화 등이 있다.

막대한 초기건설비가 투입되더라도 인력노무분야와 장치환경 분야의 대폭적인 절감을 통해, 회수비율이 연 20, 30 %에 달한다면 불과 수년에 걸쳐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데이터도 있다.

“일자리 창출 면에서는 안타깝게도 역방향이다. 자동화창고 하나를 건립했을 때, 기존의 영업과 관리 직원 몇 명에다 하역장과 각 층마다 대기하며 작업하는 지게차 기사 도합 10여 명이 넘는 가상 일자리가 사라져 버린다.”

업계의 불황 극복 전략이라면, 냉동냉장 창고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먼저 나온다.

“냉동냉장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물량의 태반이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관련되는 식량자원이다. 안정적인 수급과 유통 및 합법적이고 공정한 거래유지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서 예를 든 위해화물의 강제폐기나, 정부가 정한 공시요율로 고객들의 저 단가 요청과 동종업체간 출혈을 감수한 덤핑경쟁을 막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일일생활권으로 접어든 유통형태를 감안해 자동화, 대형화에 첨단 물류시스템으로 전문화된 시설과, 작업 효율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앞세워 수출입 축산물과 낙농가공품 등의 물량유치를 강조하기도 한다.

수협 감천항 물류센터
수협 감천항 물류센터

소비 트렌드는 변한다. 기존의 재래식 원형상품 유통에서 간편식위주 가공포장형태, 다품종 소량화를 염두에 두고, 가공과 포장, 배송을 연계한 ‘콜드체인’ 시설로 미래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몇 달만의 직원들 회식을 늦은 시간 대형화주의 일방적인 작업지시로 부득불 연기하고, 새벽시장 짐을 배달하는 소형트럭기사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갈치 몇 박스를 실어주기 위해 밤늦도록 기다리며 남아있던 당직기사가 생각난다.

산업화에는 주도와 보조기능이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복합적인 상생의 시스템으로 함께 움직인다. 단순 보관기능을 넘어서 냉동냉장창고도 물류와 유통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 생생한 작업현장에 사시사철 활력이 넘쳐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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