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해운 불황에도 선박 발주 ‘강행’...이유는
그리스, 해운 불황에도 선박 발주 ‘강행’...이유는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6.0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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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투자, 자부담 높은 선박금융...국내 해운업계 본보기

최근 세계 최대의 선박 보유국인 그리스가 해운시장의 침체 국면에서도 중고선 매입과 더불어 신조 발주 비중을 확대하고 있어 그 속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북유럽 밀려나고 그리스 선주 강세

세계 3대 조선산업 박람회인 ‘Nor-Shipping 2019’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려 우리나라 조선 3사를 포함한 전세계 주요 조선소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박람회가 개최된 노르웨이는 전통적으로 북유럽 선주들이 다수 포진해 있으며 이번 박람회를 필두로 세계 주요 조선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신조선 상담 및 영업을 벌이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이 가운데 이번 ‘Nor-Shipping 2019’에서 그리스 선주들이 신조 발주의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해운신문에 따르면 벌크(드라이 화물) 시장에서 8만톤급 신조 가격이 여전히 척당 3,000만달러(300억원 가량) 전후에 있으며 현재와 같은 용선료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일본 선주를 비롯해 전세계 선주들이 신조 발주에 선 듯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반면 그리스 선주들은 벌크, 탱커, LNG, LPG선 여하 불문 공격적으로 발주를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는 과거부터 중고선 거래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확보한 국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영국 선박가치평가기관 베슬스밸류(VesselsValue)가 발표한 ‘2018년 세계 10대 선주국 순위’에 따르면 지난해 그리스 선대가치는 1,052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947억달러)이 2위, 중국(908억달러)이 3위를 기록했으며 노르웨이(488억달러)가 6위, 한국(300억달러)은 8위, 덴마크(230억달러)가 10위에 올랐다. 2018년 전 세계 선박 중고선 거래(S&P)는 총 1,628척(9,000만dwt), 205억달러 규모로 이중 그리스 선주들은 총 305척(2,822만dwt), 46억달러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이 중고선 거래를 주력으로 선박을 확보해 온 그리스가 최근 신조 발주도 주도하면서 조선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 쇼크 이후 벌크, 유조선 시황 등이 급락하면서 기존의 신조를 견인해 온 북유럽 선주들은 정기용선료 지불도 어려운 수준으로 경영상태에 적신호가 켜져 신조 발주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윤희성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빅데이터센터장은 “노르웨이는 해양플랜트(Offshore) 자산들이 많고, 펀드를 통한 선박금융이 활성화 됐다. 덴마크는 세계 1위 정기선 선사인 Mearsk(머스크그룹)이 신조를 주도하면서 기존에는 북유럽에서 신조가 강했다”며, “최근 시황이 악화되면서 북유럽 선주들은 밀려나고 유동성이 좋은 그리스 선주들이 대거 선박에 투자하고 있는 모양새이다”고 내다봤다. 

▲ 동아탱커는 지난 2005년~2007년 해운 호황기에 무리한 신조 발주를 강행했다. 이것이 법정관리까지 가는데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동아탱커의 탱커선(사진=동아탱커)
▲ 동아탱커는 지난 2005년~2007년 해운 호황기에 무리한 신조 발주를 강행했다. 이것이 법정관리까지 가는데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동아탱커의 탱커선(사진=동아탱커)

 

선박 투자 전략 본보기

그리스의 선박 투자는 통상적인 투자 방식을 역행하는 모양새이다. 호황기일 때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 불황일 때 긴축하는 일반적인 산업의 특성에 비춰볼 때 그리스 선주들은 작금과 같은 해운 침체기에 대규모 선박 발주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그리스의 전략이 오랫동안 해운업을 건실하게 견인했다고 분석한다. 박홍범 베슬스밸류(VesselsValue) 한국지사장은 “그리스는 수백 년 동안 선박 거래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어느 시점에 과감하게 투자해야하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다”며, “호황기에 당기수익이 누적되면 사업 확장 보다 유동성을 잘 축적해 불황기에 싼 가격으로 선박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그리스 선주들의 의도를 풀어냈다.

그리스 선주들은 2021년 즈음 드라이 시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해 그 때 선사들과 정기용선을 체결하거나 혹은 만약 시황 호전이 안될 경우 선박을 매매하여 손실을 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반해 한국 선주들은 그리스와 정반대의 투자 방식을 택했다. 윤 센터장은 “우리나라 선사들은 지난 2008년 이전 호황기때 해운업뿐만 아니라 여타 사업에 손을 대면서 자본금 축적이 안됐고 동시에 오랜 불황으로 자본금이 바닥을 치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동아탱커의 경우 지난 2005년에서 2007년 해운 호황기에 비싼 가격에 무리한 선박 발주가 법정관리까지 이르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탱커는 시황이 급격히 나빠지자 3년 전 선박 10척을 처분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었으나 미상환 선가가 약 4597억원 가량을 상쇄하지 못하고 채권단에게 선박이 넘어갈 예정이다.

한편, 이와 같이 자본금 활용에 여력이 있는 그리스는 선박 발주를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 조달이 원활한 편이다. 윤희성 센터장은 “그리스 선주들의 경우 신조 가격의 30~40%를 선사 자본금으로 충당 하다보니 은행들은 리스크가 줄어 금융대출 거래를 성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선사의 경우 선사 평균 부채가 400%에 이르고 있으며 신조 발주시 선순위로 70%, 후순위로 20%를 금융권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 지원없이는 선박 발주가 불가능한 국내 해운업계에 그리스의 투자 전략이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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