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다른 길로 집에 가기
창조경제, 다른 길로 집에 가기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3.05.09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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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사람들은 기존의 생각, 동작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지정좌석제가 아닌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대체로 같은 자리에 앉는다. 집에 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대개 같은 길, 같은 방법으로 다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길거리 보행기준을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바꾼 것이 2007년 10월, 5년이 넘었다. 2009년 7월, 아파트 면적을 평(坪)에서 ㎡로 표시방법을 바꾸었다. 일본식 표기를 버리고 국제표준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좌측통행하는 사람, 평방미터(㎡)를 평(坪)으로 환산해야만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많다.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동전 테두리의 빗금도 경로의존성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백 년 전 금화나 은화를 쓰던 금은본위제 시절 사람들은 금화나 은화 테두리를 미세하게 깎아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동전 옆면에 빗금을 친 것. 그러나 금화나 은화가 사라진 지금은 빗금을 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가 옆면에 빗금을 쳐서 동전을 발행한다. 과거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ancy)이란 일종의 타성이고 사회적 관성이다. 인간사회에는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그 후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하는 경향이 있다. 즉 과거의 선택이 관성(inertia)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그 대상에 있어서는 법률이나 제도, 관습이나 문화에까지 이른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경제 성장방식은 아직 요소투입형이다. 발전초기의 산업정책은 싸고 흔한 노동을 집중투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집약형 산업이 고속 성장했다. 축적된 자본이 없었으므로  해외에서 빌려왔다. 차관이 그것이다. 자본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중화학공업에 집중 투입했다. 정부정책에 너도 나도 부응해 과잉투자와 중복투자까지 진행됐고 결국 구조조정에 이르렀다. 노동집약과 자본집약의 요소투입형 경제개발로는 추격형 경제, 모방형 경제를 벗어날 수 없다. 잘해야 중진국 진입이 한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투입해 지난 30년간 압축적으로 성장했다. 기술은 모방하거나 도입했다. 그 동안 상당한 개발과 축적을 이뤘고 일부 품목에 있어서는 세계 일류의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직도 ‘투자’하면 요소투입을 생각한다. 인건비가 비싸니 은행 금리가 너무 높네 하며 불평한다. 그렇게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직도 요소투입형 경영에 머물고 있다.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법칙을 지금도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입형 성장은 그 한계에 이르렀다. 투입요소에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되는 것이다. 노동의 단위생산성이 비용을 초과하지 못한다. 자본의 수익성이 은행 금리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니 대기업들은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신기술의 적용 없이는 요소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는 다른 길로 집에 가는 것이다. 즉 경로의존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마구잡이 요소투입이 아니라 문화와 과학기술을 스마트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문화와 기술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문화는 세계인이 관심 갖는 ‘한류’를 중심으로 한다. 유투브를 이용하여 세계적 관심을 불러온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기술은 지구적 경쟁력 있는 ICT를 기반으로 한다.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눈다. 이를 융복합이라고 하던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이팔`은 대표적인 ICT기반 벤처기업이었다. 페이팔은 인터넷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로 전자상거래 업체에 신용카드 번호나 계좌번호를 직접 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보안에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 청년 9명이 1998년 만들었으며 2003년에 이를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했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번 이스라엘 창업자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돈을 활용해 엔젤투자자로 변신했다. 주로 이스라엘 출신 젊은이들이 세우는 벤처회사에 초기 자금을 댄 것이다. 페이스북과 유투브, 링크트인 등 최근 미국을 뜨겁게 달구는 벤처기업 상당수가 이들 9명과 관련돼 있다.

아직도 산업정책 하면 ‘OO산업 집중지원’처럼 손에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다. 다분히 경로의존적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낡은 패러다임이다. 창조경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창조는 방법이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열심히 일하라. 그럼 망할 것이다’ 게리 헤멀의 말이다. 오랜 시간 일하는 것도 아니다. 집문서 땅문서 잡히고 내돈 네돈 마구 집어넣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방법은 유효하지 않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경제는 모호하다. 전에 집에 가던 길은 하나였지만, 이제 집에 가는 다른 길이 여러 개 생겼으니까.

대통령의 창조경제, 이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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