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⑯ 슬기로운 감빵생활
하동현의 양망일기 ⑯ 슬기로운 감빵생활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19.06.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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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란다. 해안에 접근하던 미국군함에서 엉뚱한 사고가 났다. 한 해군병사가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었다. 작전이 일시 중지되고 부랴부랴 그를 구출해 건져 올렸다. 전쟁이 겁이나 도망치려 했던 치킨하트(새가슴, 겁쟁이)로 낙인찍은 상사들이 이 병사를 군법회의에 회부시켰다. 전쟁 중에 작전을 지연시키고 동료의 사기를 저하시킨 죄목이었다.

그 병사가 이런 진술을 했다.

‘철모 안쪽에 어머니 사진을 붙여뒀다. 언제나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상상을 했다. 실수로 철모를 바다에 떨어뜨렸다. 어머니 사진을 건지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법무관인 해군장성은 무죄를 선고하고 되레 그를 격려했다.

-해군이 어머니를 사랑함은 바다를 사랑함과 다름 아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바로 어머니 같은 존재다.

어디서 읽었던 ‘바다예찬’에 곁들여진 글 한토막이다. 사건의 실제는 확인 해 볼 수도 없다. 바다를 모성의 이미지와 연관지으려한 작가의 필력으로 여길 뿐이다.

바다를 사랑했고 뱃놈이 되었다. 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는 ‘물빵’에 갇혔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한 적도 있음을 고백해야한다, 사랑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고 밥벌이가 개입되면 세상 어디나 피곤하기는 마찬가지 아니던가.

사랑이나 증오 같이 감정을 측량하는 기준은 민주주의의 원칙인 과반수에 근거한다. 51 대 49, 마음에 들지 않아 섭섭할 때 보다 끌리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더 많다면 사랑이라 이름 붙여도 된다는 말이다. 사랑했던 바다지만 그 곳에서의 생활은 솔직히 고단했다.

하물며 ‘사랑의 감옥’이란 말도 있던데, 그 고통스럽고도 황홀하던 ‘물빵’에서 시도해봤던 ‘슬기로운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2 자동빨래

어선 선원들에게 바다에서 피곤한 항목 1번이 고기비린내가 등청하는 빨래 문제였다.

청수를 아끼느라 마실 물까지 자급자족해야할 처지였다. 조수기의 원리는 엔진으로 바닷물을 데워 증류시킨 수증기 방울을 모으는 것이다. 보리차 같은 것을 넣어 끓여 마셨다. 이런 마당에 세탁기에 청수사용은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한국에서 출항하며 세탁기를 실은 적이 있었다. 구식 상자형 모델이었다. 외국항에 입항할 때 입성이라도 멀쩡하게 챙긴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바닷물을 퍼부어 돌리는 바람에 항상 소금기에 삐거덕대고, 흔들리는 배에서 수평이 맞지 않아 덜컥거리며 하루걸러 고장이라 아예 무용지물이었다. 그냥 해수비누, 해수샴푸로 바닷물로 목욕을 할 때 발로 밟아 빠는 게 상책이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선미 스크루 물살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작업복을 그물에 둘러싸고 선미에 매달아 던져둔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잠겼다가 널뛰듯 펄떡거리다가를 반복하며 한 삼십 분만 지나면 냄새와 기본 적인 때는 다 빠진다.

로프가 장력을 못 이겨 끊기거나 빨래가 다 풀어 져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부드러운 셔츠같은 것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체해도 산산조각 찢어질 수 있으니 적당한 시간에 들어 올리는 게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작업복은 그대로 말려 입고, 외출복은 입항 때 단 한번 목욕탕 가득 채워지는 청수에 헹궈 입는 수밖에.

목욕은 사치였다

조업 때는 늘상 바닷물 목욕이다. 시대를 앞당겨 원도 한도 없이 해수탕에 몸을 담궈봤던 셈이다. 날이 추워지면 욕탕에 바닷물을 채운 후 팔뚝만한 철근코일을 담그고 전기를 연결해 물을 데운다. 철사로 매달아 고정은 해뒀지만, 벌겋게 달궈진 불기둥 코일이 물거품 속에 쉬익쉭 소리 내며 흔들리는 그림은 공포 그 자체다. 돌이켜보니 위험천만이다.

다행히 감전사고는 겪지 못했지만, 욕탕에 몸을 담근다면 인둣불에 지지는 화형을 상상하며 코일에 가까워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벽을 붙들고 매달려야 한다. 결국 배가 요동치는 조업 중에는 욕탕 입실을 금했다. 그저 데운 물을 바가지로 떠서 욕실 바닥에 앉아 끼얹을 뿐이다. 온몸이 소금기로 서걱거린다.

이러니 출항하면 대부분이 머리를 박박으로 밀어버리고 목욕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했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트리오’라 일컬었던 주방세제가 머리를 감을 때나 빨래 때나 그나마 바닷물에 제법 잘 풀렸다는 것.

아프리카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울 때다. 깨끗한 건 백번 좋다만, 목욕을 시키고 털을 말리자마자 그 사실을 모르는 교대조 다른 선원이 또 씻겨대는 통에 강아지가 고역을 치렀다. 의논 끝에 자원봉사(?) 담당자를 추려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목욕시간을 정해 공고를 붙였다. 잠 잘 시간도 모자란 판에 강아지 목욕과 털 빗질은 서로 하고 싶었던지 당번을 자처하며 다투던 기억이 난다.

 

태풍속의 식사와 오락

배가 전후좌우로 요동치는 상황에서의 식사는 괴롭기 그지없다. 일어 선채로 다리를 넓게 벌려 중심을 유지하며 그릇을 들고 퍼먹어야 한다. 솥이 뒤집힐 판이라 국물마련도 힘든데 갓 등장했던 컵라면은 훌륭한 대용식이었다.

식탁에 고무판을 붙이거나 물에 젖은 광목을 깔아두면 웬만한 동요에도 그릇들이 미끄러져 엎어지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다. 날씨가 너무 사나우면 조업을 중단하고 피항을 한다. 모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하지만 조리장을 비롯한 식당요원들은 한 끼 빠짐없이 밥을 지어다 바쳐야하니 쉴 수도 없다. 입항 때면 선원들 몰래 그들에게 용돈 한 푼이라도 쥐어줘야 했다.

바둑알이나 장기알도 물에 적셔두거나 혹은 고무판에 선을 그어 만든 바둑판과 장기판이라면 배가 흔들려도 그럭저럭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화투나 카드라면 또 장면이 달라진다. 태풍 속의 피항 같이 모처럼 휴식이 주어질 때면 화투를 허락해달라는 건의가 줄을 이었다. 일체의 도박을 금한다는 전제하에 시간 때우기로 허락을 했다. 하지만 귀신들은 못 막는다. 바둑알이나 성냥개비 하나에 얼마 이런 식의 가상화폐가 존재했다. 심증이 가서 취조해보면 모두 심심풀이 담배내기라며 딱 잡아뗀다.

귀국을 앞두고 큰 다툼이 일어났다. 이년동안 두들긴 화투외상장부가 눈덩이처럼 커진 결과였다. 지불각서를 쓰고 귀국해서 정산하자는 친구와 조금이라도 탕감해 달라는 친구가 회식 때 술에 취해 치고받은 사고였다. 술을 더 내오라 했다. 인민재판이 벌어졌다. 선내규율을 무너뜨리는 사행성 도박을 했다는 죄목(?)을 덮어씌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 잊어버리고 채무선원을 결코 건드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상당한 금액이었다. 노름 빚 차용증이니 각서니 법적인 효력여부는 모르겠지만, 공개적인 빚잔치로 노래자랑을 곁들인 회식판에서 뭉개버린 것이다. 돈을 땄던 친구는 ‘한 번 뱃놈은 영원한 뱃놈’에 이어 ‘진짜 통 큰 사나이’라는 짜고 치는 거짓 칭찬세례에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당첨된 복권을 잃은 듯 원통하고 억울함에(?) 급기야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돈을 잃었던 친구는 꿈인지 생시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귀국 때까지 화장실 청소를 달게 받아들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공중부양 화장실

고기가 갑자기 너무 많이 잡혀 뱃짐이 차 흘수(吃水, 선체가 물에 가라앉는 깊이)가 잠기면, 저층 선원화장실 변기에 해수가 역류할 수 있다. 수십 명이 한 두 칸 밖에 안 되는 고층 사관화장실을 같이 사용해야한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고 화장실이 전부 저층이라면 큰일 난다. 다행히 내가 경험한 배들은 제법 큰 배들이라 극한 상황까지는 피했지만 다른 배로부터 들은 애로사항 해결방안은 실로 기상천외 한 것들이었다.

글로 옮기기는 뭣하니 다른 한 예를 들어야겠다. 적도를 내리그어 남반구로 향하는 항해를 할 때다. 망망대해에서 어법이 다른 한국어선과 마주쳤다. 그 배는 엔진을 쓰면서도 선미에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하는 항해를 했다. 돛 아랫부분 구조가 이상했다. 쌍안경으로 살펴본 선미에 두꺼운 철판 앵글이 11자 평행에 2,3미터 쯤 길이로 다이빙 발판처럼 튀어나오게 용접이 되어있고, 케이블로 매달아 고정시킨 그 튼튼한 철 구조물 위에 나무의자가 얹혀있었다. 교신을 신청해 용도를 물어봤다.

“아, 그거요? 간이 화장실입니다. 적도 무풍지대나 파도가 없는 해역에서 사용합니다. 의자 밑에 구멍이 변기처럼 뚫려있어 바로 수세식이지요. 찜통 같은 선내화장실보다 탁 트인 바다위에서 우산으로 햇볕을 가리면서…….”

아쉽게도 민망하기 그지없을 그 하늘과 바다 사이 공중에 뜬 화장실을 사용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담배 구하기

장기 조업 기간이 늘어지며 담배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어장에 다른 한국배들도 없었다. 입항시기까지 남은 열흘정도가 문제였다. ‘잘되었네, 이참에 담배 한번 끊어보자’ 라는 결심을 다지는 선원은 몇 되지도 않고,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비상용으로 꿍쳐뒀던 남은 것들 얻어 피우고, 나중에 두세 곱절로 갚겠다며 빌려 피우고, 심지에 양파와 대파나 과일껍질을 말려서 종이에 말아 피워보자는 실험정신이 투철한 아이디어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입항차 어장을 지나는 소련(독립국가 연합으로 분리되기 전)어선에 교신을 신청해 애원을 했다. 절절한 사연을 들은 그 배 선장이 시원스레 말했다.

“너희나 나나 뱃놈이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50카톤(열 갑들이) 한 박스 비닐로 포장해 플롯(뜸)을 달아 물에 띄우겠다. 맛이 좀 독할거다. 건져서 피워봐라.”

선원들이 갑판에서 환호를 질렀다. 계산은 회사 대 회사로 송금처리하기로 결론을 봤다. 가만히 생각하니 면세담배라 국제송금할 만큼 큰 액수도 아닌데다 공산국가와의 거래가 어떻고 피곤할 것 같아 그 배 선장과 합의를 봤다. 굳이 계산한다면 우리가 약간 밑지는 장사였다. 소주 한 박스와 위스키 조니워커 한 박스에 화질이 좋은 에로영화 테이프 열 개에다 컵라면 한 박스 까지를 역시 비닐과 그물로 단단히 포장해 물에 띄워 건네주는 걸로 퉁쳐버렸다.

 

3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다. 절박하거나 간절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왔다. 허리가 아프다는 선원에게 소화제를 건네며 플라시보효과를 기대했다. 작업복이 떨어지면 보급품 중에 기름닦이용 우에스(일본어 발음, waste-넝마, 마른걸레의 의미) 더미에서 티셔츠며 점퍼 같이 버려진 헌 옷을 찾아 입었다. 누룩까지 한국에서 공수해 도수도 측정이 안 되는 밀주 막걸리를 빚어 마셨다.

아프거나 다쳐도 당장 찾아 갈 병원도 없을 것이니 사관들 중 한 사람이 형식적인 의무교육을 받고 배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희망자가 있다면 젊은 선원들의 포경수술은 훌륭한 실습과정이었고, 심한 경우 치질수술까지 눈 딱 감고 과감히 해내야했다.

그 때 그곳에서는 번득이는 잔머리 아이디어들이 끝없이 샘솟아났다. 고립된 공간에서, 무인도에 표류해 피곤한 인생 알아서 살아가야했던 ‘로빈슨 크루소’처럼 궁하니까 통하더라는 뭐 ‘생활의 발견’ 쯤 되는 에피소드 들이다.

딴 나라 선원들이 죽어도 못 타겠다는 똥배나 고철중고선 들도 한국 선원들이 올라갔다하면 외판부터 내부까지 며칠도 안가 새 배로 환골탈태했다. 시절이 그러했다. ‘까라면 까’, 돌이켜보면 인권차원에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지만, 울어봤자 젖 줄 사람도 없어 이런저런 불편은 몸으로 때워야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부족할 것 없는(?) 좋은 환경과 설비에도 바다와 배를 꺼린다는 세태에 그냥 한 번 들어나 보라고 주절거린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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