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2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2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06.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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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향파는 평생 붓을 놓지 않았다. 그가 평생 붓을 놓지 않고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그의 문학관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향파는 1979년 한국예술원상을 수상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관을 총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글쓰기가 지닌 인문학적 사유의 토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입장 표명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만년에 들어 밝히고 있는 자신의 문학관은 더 깊은 사유의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 문학을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가?

답) 문학을 한다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나에겐 생활이 문학이었고 문학이 생활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문학작품의 소재였고 그 살아가는 의미가 주제와 직결된다고 보아왔다.

향파의 대답 중 의미 있는 대목은 ‘나에겐 생활이 문학이었고 문학이 생활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바꾸어 표현하면, 바로 삶이 문학이었고, 문학이 삶이었다는 말이다. 문학과 삶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가 되어있는 상태를 이어온 것이 향파 선생의 문학적 일대기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의 소재를 특별하게 선별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문학작품의 소재였다고 고백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문학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향파 선생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작품의 소재는 굉장한 사건을 다루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일상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향파 선생은 아주 사소한 일상사 자체만으로 작품을 형상화해 나갔는가? 이 점에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 구체적으로 문학관을 말씀해 주신다면?

답) 현실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것보다는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문학창작 태도인 것 같다. 예컨대 인간의 영원한 테마일 수 있는 사랑・죽음 등 언제 어디서 인간과 함께하는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속의 흐름, 당시의 유행이 나를 유혹한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휩쓸리는 것이 문학의 영원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본다. 문학은 때로 현실참여도 필요하겠지만 현실참여 자체가 문학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학작품이 되었을 때 현실참여니 뭐니 할 것보다 훨씬 뛰어넘어 문학적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제약이 없는 인간의 사랑을 발굴해보고 그것을 간직해보고 그것을 형상화해보는 것, 나는 그것이 나의 문학적 기본 입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듣는 순간 첫 질문의 대답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문학작품의 소재를 일상에서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대뜸 문학은 현실적인, 시류적인 문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일상 자체인 구체적인 현실참여 성격의 문학 자체에 대해 약간의 부정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대답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보면, 현실적인 작품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소재를 활용하더라도 그 주제는 인생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 현실 삶에 있어서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죽음, 사랑 등의 주제로 연결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표피적인 일상사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사를 통해 인간의 영원한 과제요 숙제인 죽음, 사랑 등의 주제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작품이 생명성을 지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 그렇게 되면 문학에 맥이 빠지는 것은 아닐지?

답) 그렇지 않다. 오히려 힘이 있다. 한 시점에 얽매여 좁게 생각할 때는 그렇지만 인생이란 거대한 문제의 상하나 좌우에서 고르게 볼 때 결국 인생도 문학도 흥분이 아니라 관조다. 조용히 생각해가면서 들여다 볼 때 거기서 참된 미적 힘을 발견하게 된다고 본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문학의 주제로 삼는다고 하면, 그 작품 자체가 맥이 빠져 재미가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부정하고 있다. 일상이란 한 시점에 매여 쉽게 지나갈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인생의 거대한 문제를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당장은 맥이 빠져있는 듯하지만, 조용히 생각해보면, 거기서 참된 미적 힘을 발견하게 된다고 본다. 단순히 감각적인 재미를 넘어서는 힘을 문학 작품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향파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통속문학을 넘어선 본격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향파 선생이 문학을 통해 실현해 나가고자 한 인문학의 한 모습이다.

 

문) 문학 하는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답) 읽어서 재미보다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유행작가들이 쓰는 통속소설을 문학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문학의 통을 빌린 오락이다. 통속문학과 순수(본격)문학을 구별할 수 있어야겠다. 즉,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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