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가 보지 못한 바다의 꿈
장보고가 보지 못한 바다의 꿈
  • 강정극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 승인 2013.05.09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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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극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통일신라시대의 장군인 장보고는 청해진 건설을 통해 서남해 일대에서 암약하던 해적무리를 소탕하여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였고,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삼각 무역을 통해 동방 국제무역의 패권을 잡음으로써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였다. 해상왕 장보고는 바다를 ‘무역을 위한 길’로 개척하는 데 이용하였지만, 그가 활약하던 시대에는 바다 밑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장보고의 후손인 우리는 심해의 가능성을 개척함으로써 그가 꿈꾸지 못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다. 오늘날 우리가 산유국이 아니면서도 석유 정제 기술을 통해 많은 석유를 수출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타국에 매장된 원유를 정제하여 되파는 것에 불과하기에, 한정적인 경제활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원부국으로 급부상할 기회가 있다. 바로 장보고가 보지 못한 깊은 심해에 말이다.

우리나라는 약 44만㎢의 해양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토 면적(약 10만㎢)의 네 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해역은 계절에 따라 한류와 난류가 만나 천혜의 어장이 형성되며, 이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생물종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구 표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바다에는 지구상 생물종의 약 80%가 서식하는 만큼 해양생물을 바탕으로 한 자원 개발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해양생명체 중 연구ㆍ개발에 이용되는 종은 1%미만에 불과하다. 즉, 99%이상의 해양생물종이 ‘미개척’ 상태인 것이다.

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해양생물 연구를 통해 자원 확보와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을 도모하고 있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다. 육상생물과는 다른 해양생물의 유전자정보를 활용하는 신약 개발 분야와 심해열수구의 고온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바이오수소 생산 분야, 그리고 해양의 미세조류를 이용하는 바이오디젤 생산 분야가 그것이다. 

우선 해양생물을 이용한 신약 개발 분야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연구 분야다. 오늘날의 의약품 가운데 40~50%가 생물자원에서 얻은 천연물이거나 천연물질에서 유래된 의약품이지만, 육상의 생물자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약품은 한계에 이르렀으며, 지금까지 개발된 의약품들에 대한 내성균들도 많이 출현해 있는 상황이다. 해양생물은 육상생물만큼 연구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육상생물과 달리 3차원이 모두 물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진화를 거듭해 오며 생존을 위한 화학적 방어능력을 습득해 온 특성이 있다.

이러한 화학적 방어에 필요한 물질들이 지금까지 육상생물로부터 개발된 것과는 다른 성질의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활용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해양생물자원을 활용한 신약 개발 연구에 있어 우리나라는 후발 주자에 속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생명공학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삼면의 바다에 항생제 내성균들에 효과를 나타내는 물질의 생산이 가능한 미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심해열수구 주변의 고온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수소 생산도 주목할 만한 연구 분야다. 이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해양극한미생물을 생촉매로 이용하여 국내 제철소 등에서 배출되고 있는 부생가스의 주성분인 일산화탄소(CO)를 수소로 전환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으며, ‘바이오수소 실증생산 플랜트동’의 운영을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2단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환경오염물질인 일산화탄소의 저감은 물론이며, 제철소 부생가스의 재활용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수소를 생산하는 것이기에 ‘해양 개발을 통한 녹색성장’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더불어 클로렐라, 스피룰리나 등 미세조류를 이용하여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기술 또한 각광받고 있다. 미세조류는 담수와 해수에 고루 분포하여 서식하며, 오늘날 바이오디젤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는 대두유, 카놀라유 등 육상식물에 비해 연간 단위면적당 250배의 오일생산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세조류로부터 추출되는 바이오디젤은 석유연료와 유사하고, 상업적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체에너지이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치열하게 연구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미세조류를 고밀도로 배양함으로써 연간 약 600리터의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는 ‘미세조류 바이오연료 실증실험장’을 지난 2011년부터 운영해오고 있으며, 관련 기업들과의 대량생산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은 2013년, 신정부의 출범과 해양수산부의 부활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과 함께 발표된 바 있는 국정과제에서도 ‘해양 신성장 동력 창출 및 체계적 해양관리’, ‘수산의 미래산업화’, ‘물류, 해양, 교통체계 선진화’, ‘해양환경 보전과 개발의 조화’ 등 해양수산 분야의 성장에 관한 신정부의 의지를 담은 여러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다의 중요성에 대한 선언이, 세계적인 연구 성과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방안의 강구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심해는 여전히 미개척지이며, 기회의 땅이다. 우리의 선조인 해상왕 장보고가 상상하지 못했던 ‘자원부국’을 우리는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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