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⑮ 연안선망 어업인 그들은 정말 바다 위의 무법자들인가?
하동현의 양망일기 ⑮ 연안선망 어업인 그들은 정말 바다 위의 무법자들인가?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19.05.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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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선장 출신인 내 경험과 지식으로는 현행 규정에 따른 합법어구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에 백번 동의"

일 반 놀기 반 스케줄로 여수에 들렀다. 부산으로 돌아오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가업으로 멸치잡이 연안선망 일을 한다는,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젊은 친구인데 막무가내다시피 한번 만나 달란다. 마침 여수에 있다니 반색을 했다. 이십 분 만에 숙소로 달려왔다. 숙소 입구에 선 여러 사람들 중에 바로 나를 알아본다. 웃음이 났다. 나는 목소리만으로도 즉각 생김새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사람이었으니.

가업을 지키나가려는 젊은 친구가 대견해 보인다. 초면에 대화 초장부터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4대째 가업인데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와 또 내가 만나봤으면 하는 한 분을 합한다면 전과가 100범에 육박할 것이란다. 아, 맞다, 대화중에 기억을 더듬어 ‘현대해양’의 한 기사를 떠올렸다.

작년 여름 전남연안어업인들이 ‘싹쓸이 근해어업 단속, 어구어법규제 해수부규탄’을 외치며 궐기대회를 열고 해상시위까지 벌였다. 귀족노조들의 밥그릇 챙기기 시위와는 차원이 다른 처절한 생존권 사수의 의미로 보였다.

개정된 수산업법(표준어구어법 고시에 이은 수산자원 관리법 시행령)으로 기존 사용해왔던 어구가 불법으로 규정되는 바람에 수많은 어업인들이 졸지에 범법자가 되었으며, 심지어 벌금형, 집행유예, 면허취소 등의 죄목으로 전과 40범이 넘는 어업인까지 나올 정도라 했다.

‘현대해양’을 구독하면서 내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고깃배 출신 작가 시각으로 한 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는 부탁이다. 간절함이 느껴졌다. 오케이, 그렇게 하세. 넓은 의미에서 내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은데다 궁금한 사실투성이라 직접 만나 묻고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업인 연안선망어업을 이어가려는 부자(父子)가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했다
가업인 연안선망어업을 이어가려는 부자(父子)가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했다.

 

작은 포구에 들렀다. 이 친구의 아버지가 그물을 수리하고 있었다. 나도 어디 가서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기로 호가 난 사람인데, 이 분도 막상막하다. 마음의 각오를 미리 하라는 아들의 충고와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악수를 나누기가 무섭게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는 어구규제와 법규시행령의 부당성에 대한 격정적인 토로가 이어졌다. 담배 한 갑이 순식간에 연기로 다 날아갔다. 연도나 법조항에 따라붙는 수치 나열은 제외하고 본질만 들어보자.

“연안선망어법은 직사각형 평면 그물로 어군을 둘러쳐 포획하는 어법이다. 포획된 어류가 모이는 고기받이 자루그물을 따로 만들어 부착하거나, 둘러쳐진 그물을 동력을 가해 끌면(인망,引網) 위법이라는 게 개정된 시행령이다. 이는 해수부와 전남도가 어장특성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기존 사용해오던 그물은 어구역학상 끌 수도 없다. 자루그물이 유체저항으로 다 찢어진다. 단지 조류에 떠밀리지 않으려 지탱할 뿐인데도 인망으로여긴다.”

그리고 고기를 모으는 자루그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몸통그물만으로 흘러들어 온 고기를 포위해 들어 올린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양이나 공해상이었으니 규모가 다르지만 내 전공은 트롤어법이었다. 그물을 끈다(Trawl)는 의미다. 어군을 찾아 포위해 몰아서 구집(驅集)하는 이른바 저격(狙擊)어법이다.

예망할 때는 반속정도, 양망 때는 미속전진 강도의 동력을 쓴다. 그물을 끌어당겨 올릴 때의 장력은 엄청나서 배는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정도다. 만약 엔진을 쓰지 않는다면 배는 뒷걸음질을 해 아차하면 스크루에 그물이 감겨버린다. 그물을 당겨 올리면 물은 당연히 빠져나가고 고기들은 매듭으로(지퍼처럼 개폐가능한) 마감된 ‘고기받이’ 끝자루(Cod-end)그물에 모인다. 끝자루가 없다면 고기들은 망목(網目, 그물코 너비)에 겨우꽂혀 올라오거나 소형어종은 물살에 죄다 빠져나간다. 끝자루 매듭이라도 풀린다면 이른바 ‘설사’라 부르는 헛방, 물방이다.

명태 같은 부유어종은 뜸을 사용해 망고(網高)를 높이거나 중층용 그물을 쓴다. 가오리 같은 저서어종은 최대한 천천히 끌며 밑판 그물입구에 채운 체인으로 바닥을 두드려 놀래켜 띄워 올린다. 이때는 오징어 같은 어종에 쓰는 촘촘한 자루그물과는 반대로 끝자루 망목이 커야한다. 체인에 긁혀 고기받이 부위에 뭉친 진흙 펄이 씻겨 빠져나가 유류저항을 덜 받도록 해야 하니까. 요컨대 어장별 어종별로 특성에 맞춰 어구를 변형해 썼다는 말이다. 어법과 해역이 천양지차로 다르겠지만 그의 말을 더 들어본다.

“개정시행령에 따른 어구어법으로는 유속이 느린 경남연안에서나 가능할까, 조류와 물살이 거센 전남연안에서는 아예 고기를 잡지마라는 말과 다름없다. 정부가 지정한 합법그물이라는 것은, 어구하단부가 열려있는 일직선 평면 형태라 신속한 그물전개도 어렵고 수면 아래로 도피하는 습성을 가진 멸치 포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물 아래판과 불완전한 자루(움쌀, 고기받이)로 형성된 어구로 고시요청을 하고, 해수부에 건의해 법규개정과 적절한 어구 개발을 촉구했지만 특정연안의 문제는 당해 지자체와 논의하라는 입장이다. 전남도는 자루그물을 써서 어구에 확대개념이 들어간다면 어구 규모를 제한하는 상위법(수산자원 보호법)에 위반되고, 관련 유사어업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댄다. 지자체가 관할하는 연안어업이지만 사실상의 법규는 해수부가 제정한다. 책임 떠넘기기, 눈치보기 행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때 명량바다에서 조수간만과 물살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전법까지 상기시키며 전남의 드센 조류를 설명했다. 비현실적인 법을 적용하다보니 연안선망업자들이 범법자로 내몰리는 실정인데다, 이런 상황에 전년도 위판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TAC를 적용하려한다니 연안선망어업인들의 추락을 더욱 부추키는 정책들이라는 말들이 이어진다.

유사한 상황이던 충남도에서는 충분한 현장실사 같은 적극적인 지자체의 개입으로 제도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물을 펼치고 강한 조류에 대항해 떠밀리지 않으려 동력을 쓰는 것을 선체고정을 위한 버팀(지탱)동력으로 해석하고, 조류에 밀려 자연스레 뒤로 팽창하는 ‘움쌀그물’을 인정했다. 그 결과로 기존 자루그물 대신(그 용도로) 신축성 있는 세목망을 부착해 어획물을 모을 수 있게 했다는 것. 타 어법 어민들과의 분쟁을 대승적 차원에서 설득하고 어장특성을 고려한 결과다.

같은 어법에서 지자체 별로 다른 어구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고장난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다.”

출어를 준비하는 연안선망어업인. 뒤쪽으로 용주리 마을이 보인다
출어를 준비하는 연안선망어업인. 뒤쪽으로 용주리 마을이 보인다.

신월동 가공공장에 들렀다. 두 번째 만난 어업인은 선비풍 외모에 매서운 눈매를 가졌다. 가동을 멈추고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기기들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린다. 화장실도 못 갔다. 전기와 수도가 끊겼으니 공장마당에 알아서 처리하라며 씁쓸히 웃었다. 여기도 담배가 굴뚝이다.

정확히 전과가? 다시 생각해도 참 한심한 질문을 했다. 숫자마저 섬뜩한 누적전과 44범이란다. 거기다 허가취소 2회, 실형 8개월 집행유예 2년 2회, 어업정지 백몇십 일, 사회봉사 300시간, 단속 시에도 법 적용을 ‘어구적합성여부’가 아닌 ‘무허가 어업’에 비중을 두어 보다 과중한 처벌이 내려지는 악순환이란다. 서둘러 미안하다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약 올리러, 열 받게 하러 온 게 아니잖은가.

“죄다 연안선망 조업관련 처벌이다. 어떤 사연이었건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장인 아비가 전과 수십 범임이 알려진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나? 같이 처벌받은 어업인 중 나이 드신 한 분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요양원 환자를 씻기고 입히는, 참으로 서글픈 사회봉사를 한 적도 있다.”

이분은 투쟁, 엉터리 행정, 직무유기, 혈세낭비, 이런 거친 말들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부터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말했다.

“여기저기 인터뷰도 몇 번 했다. 어장 고유의 특성이나 어구어법에 대한 설명도 이젠 지겨울 정도다. 불합리한 제도는 바로잡아야 할 것 아닌가. 현장 실태조사와 발생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기존 어구를 사용하던 어업인들이 하루아침에 범법자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워낙에 영세한 업종이라 체계적인 대응을 해볼 기회조차도 얻지 못했다.”

차분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그의 말이 이어진다. 어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자루그물이 없는 어구로는 전어나 청어, 고등어를 어획해야지, 멸치를 목적어종으로 할 때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과학적 연구와 학술자료에 의해 2017년 정부가 멸치를 수온상승에 따라 어획량이 증가할 어족자원으로 지정했다. 전남연안선망의 생산량은 자루그물을 합법화했을 때도 도내 전체의 2% 미만에 불과한, 그야말로 생계형 영세어업이다. 이런 마당에 타 업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자체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 채무가 18억이다. 수협정책자금도 환수당하고 부산으로 보냈던 상품매매대금도 압류당했다. 막장이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지 않나. 바다를 터전으로 삼겠다는 내 의지에 힘을 보태고 기다려 준 가족과 친지들이 있는데 무책임하게 엎어버릴 수는 없다. 연안선망은 긁고 뒤집고 파헤치는 조업시스템이 아니다. 그물을 펼치고 지탱해서 거기에 모인 어군만을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불법어구 사용으로 떼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합리적인 법 개정과 어구사용으로 떳떳하게 준법조업을 영위해서 폐를 끼친 분들께 피해를 보상하고, 금전적, 심적 손실을 차근차근 청산해나가며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뿐이다.”

불손한 농담이지만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기반이 약하고 힘없는 타 업종 영세어업인들 까지 아우르는, 큰 틀에서의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장이 힘든 이 형편에도 미래를 보고 행정소송이며 헌법소원 청구소송까지 진행중이다. 그나마 관심을 가져주고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께 다시 감사를 드린다. 충남의 예처럼, 정확한 실태파악을 위해 이해당사자 어업인들과 주무관청, 학계가 함께 하는 공청회나 간담회 형식의 대화부터 시작해보고 공개된 시험조업도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주장을 확인해보는 절차라도 먼저 가져보자는 말이다. 근거 없는 억지주장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알게 아닌가.”

헤어질 때 그가 했던 말이다. 부산으로 돌아오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KBS ‘제보자들’ 91회 분 ‘멸치잡이 어부들이 전과자가 된 까닭은’ 편 동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강지원 변호사가 진행한다. 연안선망의 주장과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일일이 확인한다. 제작진이 조업선에 동승해 어로작업을 참관했다. 그래서 개정된 합법어구로는 거의 고기를 잡을 수 없었음을 증명하고, 물속에서 전개되는 그물 겨낭도와 조업방식의 설명까지 이어진다. 이에 대한 타업종과 지자체의 입장도 나온다. 더해서 어장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한 충남도의 예까지 밝히고 있다. 지자체는 길이 있다면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답한다. 강변호사의 최종멘트가 있다.

“모든 국민은 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법이 잘못되었다 생각되면 언제든지 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관계기관이 타당성 검토부터 나서야 한다.”

그들을 만나고 입장을 들어봤지만, ‘현대해양’이나 여러 매체에서 다뤘던 내용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재탕, 삼탕의 사실만 나열한 것 같다. 듣고, 보고, 그물구조를 살피고, 조업 동영상을 확인한 후에 하나 더 보태자면, 어선 선장 출신인 내 경험과 지식으로는 현행 규정에 따른 합법어구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에 백번 동의한다는 것이다.

현역 때 배에서 이런저런 사고라도 나면 컨트롤타워격인 본사와 관계기관에서 제대로 된 방향 제시없이 ‘현명하게 대처하라’ 라는 식의 선문답 같은 답신을 받고 분통을 터뜨린 기억이 난다. 묻고, 확인하고, 잘못됐으면 고치고, 보완하고, 도출해 낸 근거와 소신이 뚜렷하다면 모두가 동의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의 입장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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