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1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11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05.0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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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멸치의 일대기에 나타난 동심의 역사적 의미

[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아동을 위해 많은 동화를 창작했다. 그런데 그 동화의 소재로 사용된 대상들이 다양하다. 그 중의 하나가 ‘멸치’이다. 이 작품은 1939년 5월 9일에서 1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전체 구성이 상중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부의 그물에 잡혀 결국 사람에게 먹히고 마는 어린 멸치의 삶의 과정을 재미있게 그린 동화이다.

새끼 멸치가 엄마 멸치와 함께 바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부들이 바다 속에 내린 그물을 피해 가는 도중에 새끼 멸치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그물을 구경하다가 그 그물에 걸려들고 만다. 새끼 멸치는 발버둥을 치면서 다시 원래의 자신이 살던 바다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물에 싸여 배 바닥에 내팽개쳐져 고기잡이 배에 실려 항구로 들어온다.

이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새끼 멸치는 몸이 바짝 말라 죽은 상태가 된다. 몸은 죽었지만, 마음은 살아있는 존재로 멸치를 의인화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새끼 멸치가 말려져 푸대에 담겨지고, 이후 물고기 도가집에 보내어져서, 시골 점방집으로, 이후에는 시골 가정집에 팔려가 결국 식탁 위에 올려진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자. 우선은 마른 멸치가 푸대에 담겨진다. 이때 새끼 멸치는 이제 우리 집에 돌려보내어지나 하고 기뻐한다. 자기 생각으로는 엄마 말 잘 안 듣고 이렇게 잡혀와서 지옥살이를 당했으니, 이제는 엄마 말을 잘 들을 것 같아 엄마에게로 돌려보내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멸치가 온 곳은 바다 속 멸치 나라가 아니라, 어느 큰 물고기 도가집으로 보내진 것이다. 그곳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다 있었다. 고향 바다에서 보던 문어, 전복, 명태, 홍합, 상어, 복어, 가오리, 청어 등 많은 종류의 고기가 있어, 새끼 멸치는 고향에 돌아온 듯 반가워했다.

거기에서 건대구 영감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화를 통해 건대구 영감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곳의 근황도 듣게 된다. 최근에 잡혀들어온 애꾸눈이 새끼 명태를 통해 들은 고향 소식은 참담한 지경이었다. 건대구 영감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소식은 암담했다. “우리 동리는 씨도 없이 망해 버렸단다. 늙은 놈 젊은 놈 할 것 없이 반치나 잡혀가구 학교도 쓰러지고 미역공원에 운동장도 헐어져 버리구” 이 소식에 새끼 멸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이 순간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새끼 멸치는 그곳에서 시골 마을 점방으로 팔려갔다. 그 점방에는 새끼 멸치가 생전에 보지 못한 온갖 물건들이 즐비했다. 밤, 대추, 사과, 생강, 과자, 사탕, 미역, 족어, 양초, 비누, 실, 종이, 연필, 양말, 고무신 등을 파는 잡화상이었다. 새끼 멸치는 점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동그란 모양을 한 돈을 주고 물건을 바꾸어 가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겼다. 바다에 살던 새끼 멸치의 눈에는 육지에서의 사람들의 삶이 별스럽게 보인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새끼 멸치 입장에서는 과자나 과일을 바꾸어 가는 동그란 것이 과자나 과일보다는 나을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서 심심해진 새끼 멸치는 고향 친구인 족어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나, 족어는 잠이 들어 옆에 있는 방망이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눈 대화 중 새끼 멸치가 관심을 보인 것은 세상 구경이었다. 방망이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세상 구경은 사람 목구멍 구경이었다. 사람 목구멍 구경을 추천한 방망이는 추천한 후에 요절할 듯이 웃었지만, 새끼 멸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다음 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려 항아리에 갇혀있던 숭어 새끼는 항아리 물이 넘쳐 항아리 밖으로 굴러떨어져 개천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광경을 보면서, 새끼 멸치도 그 물 속에 풍덩 빠져 고향 바다로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바짝 말라버린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점방에 멸치 사러 온 어린 아이의 손에 의해 새끼 멸치는 어느 시골 가정 집으로 갔다. 그 집 방 가운데에는 숯불이 타오르는 화로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남빛 냄비가 놓여 있었다. 물이 담긴 냄비 속에 새끼 멸치가 들어갔다. 순간 새끼 멸치는 물을 만나 기뻐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니, 그 물 속에 무우와 마늘과 고춧가루가 들어왔다. 새끼 멸치는 이들에게 바다로 함께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곧 바다가 가까워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서, 새끼 멸치는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죽을 지경을 넘긴 새끼 멸치는 숟가락에 의해 사람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방망이가 알려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경거리라는 사람의 목구멍 속은 새끼 멸치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곳이었다.

이렇게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는 한 마리의 새끼 멸치 이야기를 통해 향파 선생은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을까? 일차적으로는 바다 속의 고기 이야기를 의인화시킴으로써 아동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려는 아동문학적 기능을 발휘하고자 했을 것이다. 새끼 멸치가 어부들에게 잡혀 육지에 올라와서 결국 사람들의 식탁에 놓이고, 사람들의 먹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새끼 멸치가 펼치는 상상력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인 토대는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전후의 상황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 신음하던 최정점의 시기였다. 일제에 완전히 먹혀 숨도 쉬기 힘든 시간들이 계속되던 때였다. 힘없이 먹히기만 하던 새끼 멸치의 운명과도 같았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이 동화 속에는 고스란히 스며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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