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닮은 정도경영, 동원그룹 창립 반세기
바다 닮은 정도경영, 동원그룹 창립 반세기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9.05.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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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 1척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까지

[현대해양] 자본금 1,000만 원의 작은 수산기업 ‘동원산업’으로 시작한 동원그룹이 창립 반세기를 맞았다. 1969년 서울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출발한 동원산업이 모태가 됐다.

동원산업은 신규 어장 개척과 첨단어법 도입 등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오일쇼크 등 갖은 위기를 잘 넘겨 국내 최대 수산업체로 발돋움했다. 1982년 동원산업은 국내 최초의 참치 통조림인 ‘동원참치’를 출시해 참치 선풍을 일으켰다. 동원산업이 공급하는 다랑어로 동원F&B가 제조하는 ‘동원참치’는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인 62억 캔 이상 팔리며 국민식품으로 사랑 받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 최대 참치 브랜드인 스타키스트 인수했고, 세네갈의 통조림 회사 스카사(S.C.A SA)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동원산업은 세계 최대 수산식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원산업은 지금까지 오대양을 누비며 대한민국의 수산산업을 선도하고 있으며, 고품질 수산 식품 공급으로 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동원산업은 태평양, 인도양 등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며 직접 잡은 참치를 급속 동결해 최상의 가치를 보존한다. 동원은 일본, 미국, 유럽 등에 고품질 참치를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 물류 네트워크와 콜드체인 시스템(Cold Chain System), 전 세계 20여 개국 72개 파트너를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동원산업의 고품질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동원산업은 지속 가능한 조업을 위해 국제 수산기구의 조업 규정을 준수하며, 자체적으로 해양환경 보호지침, 선단 운영 관리지침, 안전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원양어업 혁신의 주인공 ‘코스타 데 마필호’

50년의 세월 동안 5대양을 누빈 동원의 여러 선박 중 대한민국 원양어업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배로 ‘코스타 데 마필호(COASTA DE MARFIL)’가 있다. 동원산업은 창업 3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하며 업계 중상위권 업체로 빠르게 부상했다. 회사의 규모는 점차 커지고 안정돼 갔지만, 창업주 김재철 회장에게는 못 이룬 꿈이 하나 있었다. 너른 태평양 바다를 정복할 새로운 선박, 바로 참치 선망선이었다.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경제계 전반은 물론 수산업도 큰 타격을 받았다. 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고민하던 김 회장은 이러한 위기에 놀라운 결단을 한다. 바로 선망업 진출이었다.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치르고 얼마 뒤, 동원산업은 국내 최초 헬리콥터 탑재식 대형 선망선 ‘코스타 데 마필호’(807톤)를 인수한다. 무려 320만 달러에 이르는 선박 가격은 당시 다랑어 연승 독항선을 7척이나 살 수 있는 큰 비용이었기에 업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치잡이의 꽃’이라 불리는 선망업은 헬리콥터나 레이더 등 첨단 장비로 참치 무리를 탐지하고, 소형 모터보트와 지름 800m 이상의 그물로 참치를 일괄 포획하는 방법이기에 단시간에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과감한 투자로 시작한 선망업이 쉽지는 않았다. 1차 시범 조업 동안 무려 280만 달러 적자가 났다. 모두가 동원이 망할 것이라고 했다. 동원산업은 어장을 서부태평양으로 옮기고, 24명의 선원 전원을 한국인으로 대체했다. 김재철 회장도 직접 코스타 데 마필호에 올라 2차 조업에 나섰다.

그렇다고 바로 전세가 역전된 것은 아니다. 1차 시범 조업이 이뤄진 1년 3개월간 엄청난 적자가 났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조업을 이어나갔다. 승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비록 어획고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선원들의 숙련도를 높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과거 선장으로서의 경험과 선망업에 대한 연구 지식, 다양한 외부 정보, 그리고 직접 체험한 어로현장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었던 것이다.

2차 시범 조업부터는 변화가 나타났다. 2차 시범조업 1항차 91톤, 2항차 447톤, 7항차는 664톤까지 급속하게 어획량이 증가했다. 김재철 회장은 선망업의 미래를 확신하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선망선 ‘캡틴 김호’, ‘자이언트 김호’, ‘월드 김호’를 잇따라 인수하며 참치 선망업계를 선점해갔다.

 

김재철의 어장 개척사가 ‘한국 원양어업사’

동원산업이 참치 선망업에 사활을 건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연승어법으로 포획한 참다랑어, 황다랑어 등은 고급 횟감으로 인기가 높지만 포획 규모도, 시장도 한정적이었다. 이에 반해 가다랑어와 황다랑어를 대량으로 포획할 수 있는 선망업은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될 뿐 아니라 동원에 ‘참치캔’이라는 새로운 가공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1979년 당시 국내 선망업을 그대로 포기할 경우, 한국 원양어업 규모가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초기 부진한 실적으로 선망업을 포기했다면 지금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원양어업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김 회장의 도전에 대한 철학은 선망업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동원그룹의 도전이 되었고, 지금도 대한민국 원양어업의 혁신을 이끌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코스타 데 마필호는 동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세계의 수산강국으로 견인한 어선이다. 코스타 데 마필호는 1972년 대서양 비스케이 만의 히혼 항 조선소에서 진수된 이래 태평양을 누비다가 페루의 카야오(Callao) 조선소에 닻을 놓고 있던 중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가장 역동적인 참치 선망어업 시대를 개막시킨 배다.

김 회장은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일찍 위기가 기회라는 믿음 하나로 일본의 대표 수산회사인 미쓰비시 상사(三菱商事)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려 1,300만 달러를 투자해 4,500톤급 대형 공모선인 동산호를 일본 시미즈의 미호조선소에서 신조, 북양어장에 투입한 데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렇게 캄차카 어장으로 나간 동산호는 출어 3개월 만에 3,000톤의 어획을 달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만선에 만선을 거듭함으로써 항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쾌거를 이룩했던 것이다. 그 같은 김 회장의 의

지야말로 위기에 봉착하면 오히려 과감한 투자로 정면승부하는 ‘역발상의 신화’인 것이었다.

 

서울대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로 방향 틀어

전남 강진군 금강리 작은 마을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농고를 졸업한 김재철 회장이 원양의 역사를 이끌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필름은 6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강진농고 재학 중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빼앗겨 본 적 없는 그는 졸업을 앞두고 일찌감치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 예정이었다. 당시 고교 스승 중에는 서울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추천장 하나만으로 면접을 거쳐 입학이 결정되었고, 그리고 얼마든지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스승 가운데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최석진 교사가 있었다. 어느 날 교사가 진로 문제로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이제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보라! 국내에서 최고 대학을 나왔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되돌아보면 나는 청년 시절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큰 웅지를 가졌다면 서슴지 않고 바다로 나갈 것을 권유한다. 바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꿈과 희망을 가진 생기발랄한 의지의 청년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바다야말로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며, 자원의 무진장한 보고이니 말이다.”

그게 곧 서울대 농대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부경대 전신) 어로학과로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4년 뒤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출항을 앞두고 있을 역사적 순간인 1958년 1월 15일 오후 영도다리가 건너다보이는 자갈치 언저리의 제동산업 부산사무소로 한 청년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남호에 승선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미 성원이 끝난 뒤였다. 당시 김재철 졸업예정자는 무급으로라도 지남호에 승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 결국 제동산업의 배려로 김재철의 최초 승선이 이뤄졌는데 그것이 무급 ‘실습항해사’라는 것이었다.

이후 김재철을 태운 지남호는 귀국하기까지 총 500여 톤의 어획으로 10만 달러 가까운 어획고를 올리면서 한국 원양어업의 가능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동안 실항사 김재철도 어부들과 함께 갑판작업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남호의 어획 성적이 월등해야 회사도 성장할 것이며, 그래야 속속들이 진수할 후속선 가운데 한 척을 넘겨받으면서 선장이 되리라는 확신이었던 것이다.

조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남호가 귀항한 것은 출항 18개월이 1960년 7월 10일이었다. 실항사로 출발했던 김재철은 2등항해사를 거쳐 1등항해사로 승진해 있었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그는 뒤따라 귀국할 예정으로 있던 제2지남호의 후임선장으로 임명됐다. 배를 타고 불과 3년 만인 스물여섯의 나이에 그는 선원으로는 최고 자리인 선장 직에 올랐던 것이다. 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수산식품 중심 글로벌 기업으로

김재철 회장이 창업한 동원산업을 발판으로 성장한 동원그룹은 1982년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에 진출했고, 이후 사명을 동원증권으로 바꿔 첨단 금융기법을 잇따라 도입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동원증권은 이후 동원그룹과 계열 분리돼 국내 최고의 증권그룹인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원그룹은 양반김, 양반죽 등 다양한 국민 대표 식품 브랜드를 선보이며 사업을 키웠고, 2000년 종합식품기업인 동원F&B를 설립해 일반 식품은 물론 유가공, 건강기능식품, 온라인 유통까지 사업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동원그룹의 종합 포장재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는 대한은박지(2012년), 한진피앤씨(2014년) 테크팩솔루션(2014년), 아르다 메탈 패키징 아메리칸 사모아(現 탈로파시스템즈, 2014년), 베트남 포장재기업 ‘TTP’, ‘MVP’(2015년) 인수를 통해 연포장재 및 각종 기능성 필름을 포함해 PET용기, 캔, 유리병, 알루미늄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 종합포장재 기업으로 도약했다.

작은 수산기업 동원산업으로 시작한 동원그룹은 2016년 종합물류기업인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며, 물류 사업을 본격 확대했으며, 50년 만에 수산·식품·패키징·물류 등 식품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편 동원그룹은 창립 10주년이던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고 어린이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책꾸러기 캠페인’과 대학생 대상으로 전인교육 강좌를 진행하는 ‘라이프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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