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 생물학적 특성 고려해야
TAC, 생물학적 특성 고려해야
  • 정석근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교수
  • 승인 2019.05.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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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1999년 해양수산부가 TAC(총허용어획량)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이래 대상 어종을 11개 어종까지 확대하는 동안 선진국 수준 수산자원 관리를 한다는 평가를 국내외에서 받았다.

하지만 TAC 제도를 시행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 효과가 과연 어떠했는지, 또 문제점은 없었는지 평가하고 진단한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선진국에서 시행하니 깊은 고민 없이 우리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는 2020년부터 멸치를 TAC 대상어종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하는데, 전문가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독특한 멸치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해 관련 계획을 세운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다.

 

멸치 어획고 소비 권장해야

멸치는 육상 생태계로 치자면 사람에게 단백질 공급원에 해당하는 콩과 같은 것이다. 생태계 먹이사슬 위에 있는 소고기 1kg을 먹는 것과 아래에 있는 콩 1kg를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환경 친화적이고 생태계에 충격을 덜 주는지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위에 있는 소고기 1kg이 식탁에 오르는 데는 그 아래에 있는 먹이생물인 콩이 약 10kg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위해 육지에서 소고기 대신 콩 소비를 권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는 물고기 중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는 멸치 어획고 소비를 권장하는 것이 바다 생태계에 미치는 인간 어업활동 충격을 줄이는 길이다.

바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물고기 영양단계는 대개 종에 관계없이 몸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데 작은 물고기일수록 자연사망률이 높고 덩치가 큰 물고기일수록 자연사망률이 낮다.

멸치처럼 자연사망률이 높은 물고기나 미성어는 어획활동이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에 덩치가 큰 물고기는 자연사망률이 낮아 어획이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 따라서 어획충격을 줄이려면 그 어획사망률 영향을 크게 받는 덩치 큰 어종이나 어른 물고기들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큰 물고기 보다 작은 물고기 충격 덜해

이미 20년 전에 D. Pauly가 밝혔듯이 지금 해양생태계는 대구, 새치, 참다랑어와 같이 서양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먹이사슬 위를 차지하는 몸집이 큰 물고기들은 남획으로 이미 90% 이상 고갈됐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먹이사슬 아래에 있는 청어, 멸치 같은 작은 물고기를 잡는 방향으로 어업구조가 바뀌어왔다(‘Fishing Down’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대구나 명태 같은 큰 물고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멸치와 같은 작은 물고기도 전통적으로 좋아했고, 또 많이 잡았으며 이미 생태계 균형을 고려한 어업이 자리잡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 멸치를 일정량 이상 잡지 못하게 하면서 연근해 어획량은 100만 톤 이상을 유지하겠다는 정책은 모순이다. 같은 100만 톤을 잡는다면 대구나 명태 같이 큰 물고기보다는 작은 멸치를 더 많이 잡을수록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이 덜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바다 멸치는 1년에 100만 톤 이상 어획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내외 연구 논문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름값과 같은 조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육지와 가까운 연안역인 통영 앞바다에서 주로 멸치를 잡고 있지만 황해나 남동해까지 조업 해역을 확대하면 어획고를 2배 이상 늘리면서도 지속 가능한 멸치 어업이 충분히 가능하다.

 

남획? 기후변화?

기후변화와 수산생물 변동 관계에 대한 과학 지식이 없었던 1970년대 이전에는 어떤 어종 어획고가 갑자기 줄어들면 그 원인으로 일단 남획을 지목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남미 페루나 캘리포니아 앞바다, 그리고 일본 연안에서 멸치나 정어리 같은 소형부어류는 어획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던 수백 년 전에도 기후 변화 등으로 몇십 년 주기로 그 개체군이 크게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것을 반복했음을 수천 년 동안 해양 퇴적물에 쌓인 물고기 비늘 조사가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초반 페루 앞바다 멸치 어획고가 폭락한 주원인은 남획이 아니라 ‘엘니뇨’라고 알려진 해양 기상변동 때문이었다.

또 1950년대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정어리 어획고가 갑자기 폭락해 지역 수산업이 도산하는 경제충격을 받자 그 원인으로 남획을 지목하고 모라토리엄을 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바다 퇴적물에 쌓인 비늘로 정어리 양이 지난 2,000년 동안 어떻게 변동했는지 조사해본 결과 어획이 전혀 없더라도 약 60년 주기로 정어리와 멸치가 크게 풍흉을 반복했음을 알게 됐다.

 

대형저어류 위주로 TAC 방향 바꿔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1999년 TAC 대상 어종으로 한 때 약 20만 톤까지 잡혔던 정어리를 포함시키자마자 다음해부터 어획고가 계속 줄어들었다가 2005년 이후로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따라 정어리와 같은 소형부어류 어획고가 얼마나 크게 변동할 수 있는지를 짐작하지 못한 채 탁상행정으로 할당량을 정한 결과였다.

그 뒤 정어리는 TAC 대상어종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이젠 이 정어리를 대신해서 멸치를 집어넣으려는 모양이다.

만약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가격 조절 수단으로 멸치 TAC는 검토해볼만 하겠지만 멸치, 고등어, 전갱이, 살오징어와 같이 외부 충격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회유성 소형부어류보다 대형저어류나 정착성 생물 보호 위주로 TAC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해양생태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어업인들 생계만 힘들게 할 것이다.

다만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가격 조절 수단으로써의 멸치 TAC라면 검토해볼만 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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