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위판고 3년 연속 1위, 여수수협 위판장을 가다
[르포] 위판고 3년 연속 1위, 여수수협 위판장을 가다
  • 변인수 기자
  • 승인 2019.04.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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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이 일등조합 만든다

[현대해양]  ‘빛나는 물의 도시’라는 이름의 여수(麗水).

여수는 2012년 세계엑스포가 열린 도시로, 또, ‘밤바다가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로 알려져 연간 1,5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여수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도시지만, 동서남북 바다와 인접한 지리조건으로 풍부한 수산자원이 바탕이 돼 일찍이 남해안 일대의 어업의 중심이자 수산물 집산지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 원동력은 여수수협 약 9,000여명의 조합원과 200여명의 직원들이 분주히 흘려온 땀이 바탕이 됐다.

여수수협은 여수시 국동항에 위치하면서 인근 지역은 물론 남해안 수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온 지구별 수협이다.

여수수협은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91개 회원조합 중 위판고 3년 연속 1위라는 기록을 달성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위판액이 1,300~1,500억 수준에서 2017년에는 위판액 2,200억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날 경매된 대삼치 600상자는 전량 중국으로 수출됐다.

 

여수수협 위판장은 산지 생선 백화점

이른 새벽 국동항 여수수협 본소 위판 현장을 찾았다. 해가 뜨기에는 이른 시간, 새벽의 분주함이 아침을 재촉하고 있었다. 경매사의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중매인들의 분주한 손짓과 몸짓이 어울려 선어 위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기위한 날카로운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번뜩였다.

선어경매는 보통 5시부터 열려 7시면 끝난다. 물량이 많을 때는 하루 종일 개최될 때도 있다. 부둣가에서는 7시부터 낙지활어 경매가 열린다. 9시 부터는 멸치 등의 건어 경매가 시작된다.

오늘 선어부류 위판에는 쌍끌이, 유자망, 외끌이 어선 6척이 입항해 삼치와 아귀, 쥐치, 가자미 등을 한껏 풀어놨다. 여수수협은 패류 등을 제외하고 쌍끌이, 트롤, 유자망, 안강망 등 17개 업종이 위판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어종은 다 구경할 수 있다는 수협 위판장은 산지 생선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수많은 어종 중에서도 삼치랑 아귀가 단연 양이 많다. 이 중 아귀는 이상기후 때문인지 철이 아님에도 전국적으로도 갑자기 많이 잡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겨울에는 제값을 받는 아귀인데 대량 생산으로 인해 가격은 상자당 2~3만원까지 떨어졌다.

대삼치는 800g 이상 중대형 사이즈 삼치를 일컫는다. 3미는 6kg, 10미는 1.5~2kg 정도다. 7~8만원 정도였던 가격이 몇 년 전 중국 수출이 시작되고부터 22kg 한 상자에 15~16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소삼치는 400~800g 정도의 크기로 이 역시 중국 수출로 어가가 크게 상승한 품목이다. 10여년 전 마트 등 소매용으로 판매될 때는 2~3만원 가격대를 형성했는데, 지금은 20만원 넘게 호가될 때도 있다.

낙찰된 삼치는 흰색 스티로폴 박스로 포장하고, 선적해 중국으로 보낸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아귀가 철이 아님에도 대량 생산되고 있다.

 

중국 소비 증가가 어가 상승으로 이어져

쥐치와 가자미도 눈에 띤다. 쥐치는 지금이 시기다. 흑빛의 쥐치는 전량 포로 가공되는 어종이다. 포가 아닌 원통형의 쥐치는 언제 봐도 생소한 고기다. 가자미도 생산량이 많았다. 11~12월 한 철에는 상자에 50~60만원까지 나갔지만 산란기가 지나 살이 빠진 현재는 반값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4~5년 전부터 중국이 생선을 많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산물 소비가 크게 늘었다. 여수 관내 뿐 아니라 국내 산지 위판장에는 중국 상인들이 상주하고 있다시피 하고, 중매인을 통해 주문을 한다. 오늘 아침 위판한 대삼치 600상자가 전량 중국으로 수출될 정도다. 그만큼 중국 단가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 생산자 입장에서는 중국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어종은 삼치, 병어, 백조기 등으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이 상승했다.

포 형태가 아닌 쥐치는 언제봐도 생소한 고기다.
끝물을 타고 있는 가자미는 지난 겨울 산란기에 비해 살이 많이 빠져서 가격이 하락했다.

예전 상자 당 5,000원 가량이던 돌병어(샛돔)도 중국 바이어들을 거치면 5~6만원 선에서 거래가 된다.

달처럼 생긴 반점이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달고기는 ‘개천에서 용이 된’ 대표적인 어종이다. 이 고기는 3~4년 전만 해도 버려지는 생선으로 취급 받다가 지금은 중국에서 가공해서 유럽에 생선까스 등으로 수출되면서 고부가가치 상품이 됐다.

반면 국민 식습관이 점점 생선에서 육고기로 이동하고 있기에 국내 수산물 소비량은 줄고 있다. 여수수협 관계자들은 국내 소비위축으로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과거 명절 때면 냉동수산물의 경우 4~5,000 상자를 반출하곤 했으나 지금은 절반도 안된다는 푸념이다.

어업인들에게 국내 수산물 소비위축 문제는 고기를 잡는 것 외에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중국 수출용 단가가 높다고 마냥 현재에 만족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돌병어(샛돔)

 

어가(漁價) 지지사업 통한 신뢰 확보

여수수협이 괄목할만한 위판 성과를 내는 가장 큰 요인은 어가 지지를 통해 선주들의 신뢰를 확보한 것에 있다. 어가에 민감한 선주들에게 어가의 하한선을 제시해 어가의 등락폭을 완화했다는 것이다.

경매 순서는 좌에서 우와 같이 차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면서 불규칙적으로 행해진다. 배가 들어온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경매 순서가 낙찰가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선주들에게는 민감한 사항이다.

선주들은 인터넷이나 정보원을 통해 가격을 조회 해보고 높은 어가가 형성된 위판장을 찾아 그곳으로 향한다. 여수 배들이 부산, 마산, 통영, 목포 등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배에서 물건을 내렸다가도 어가를 보고 냉동탑차에 실어 다른 위판장에 물건을 보내기도 했다. 배를 운행하면 기름값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멸치 등 건어물 경매는 9시부터 시작된다.

 

이점에 착안한 것이 ‘어가 지지사업’이다. 경매 시 여수수협 유통과 직원이 상주하면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어가의 하한선을 지지해주는 제도다. 경매 주체인 수협이 손해를 볼 수 있으나 전체 위판액이 상승한다면 감수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펼쳐진 노력이다. 이를 위해 여수수협은 이사회 의결을 통해 근거를 마련했고, 유통과에 재량권을 부여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실행 수 있도록 힘써왔다. 물론 중매인들과의 마찰도 있었다. 그러나 제도를 탓하며 떠나는 중매인은 없다.

“수협은 생산자 단체고,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입니다. 어획량은 감소한 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어업용 유류가격 폭등으로 어업인들의 출어비용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수협이 생산자 입장에서 안정된 어가를 지탱해 줘야 생산자들이 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출근해 경매를 지켜보던 수협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유자망 조기의 경우 여수수협은 지속적으로 가격을 지지해 왔다. 유자망 조기는 목포, 영광 등지와 경쟁 하고 있는 품목이다. 어가 지지사업 이후 지난해는 목포를 비롯한 서해안 배들이 많이 들어왔고, 심지어 제주도와 통영 배들도 다수 들어왔다.

아울러 조합 내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큰 몫을 차지했다. 실제 여수수협은 위판고 증대를 위해 경상·충정권 어민단체와 어민들을 찾아가 여수수협 위판을 귄유하기도 했다.

위판장 부두에 정박중인 쌍끌이저인망 어선

 

‘국민 먹거리에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

여수수협 조합원들과 직원들은 국민 먹거리에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동안 여수수협은 경기침체와 연근해 어족자원 감소란 악조건에서도 정통 어업 위판만으로 전국 최상위권의 위판고를 기록해 왔다.

지난해 기준 91개 회원조합 중 상위 7위까지 수협 중 6곳이 전남권에 분포한다. 이 중 전남 서부권이 4곳이다. 여수수협이 1,800여억원을 기록한데 비해 목포, 진도, 고흥, 신안 등이 1,500~1,700억의 위판고를 내고 있다. 이들 전남 서부권 조합들은 해조류나 젓갈이 위판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 전남 서부권이 1·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 어류만 가지고 위판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악조건들이 존재하고, 그 와중에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에 여수수협 사람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여수수협 판매과 최삼현 경매팀장은 “여수수협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유통의 큰 축을 담당하는 중매인 뿐만 아니라 양륙을 담당하는 노조원, 고기를 선별하는 회원들에 이르기 까지 모두의 단합된 노력이 뒷받침 돼 온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여년을 경매업무에 종사해 온 최삼현 여수수협 경매팀장, 여수수협의 야전사령관으로 통한다.

여수수협의 중매인 수는 선어 50명, 건어 50명, 낚지 활어 20명 총 120여명 정도다. 부산공동어시장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중매인 수를 보유했다. 상하차를 담당하는 항운노조원은 70명, 고기를 선별하는 부녀반은 정회원 15명에 비회원이 70명에 이른다.

최 팀장은 “유통을 담당하는 중매인들은 어가 제고를 위해 노력해 줘야 합니다. 항운노조원들은 양륙, 상차, 결복 등에서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 줘야 합니다. 선원들이 귀해지다보니 배에서 선별작업이 따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녀반들은 신속히 그들의 책임을 다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위판장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여수수협의 탄탄한 수산세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중매인, 직원들 모두의 합작품인 것이다.

여수수협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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