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없는 정부의 ‘어부병’ 대응
성과 없는 정부의 ‘어부병’ 대응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4.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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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지정한 어업안전보건센터 제 기능 못해

[현대해양] 어업인들이 열악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채 직업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정부가 자청해 이들의 보건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어민들은 실체가 없다는 반응이다.

 

각종 질환에 무방비

해상에서 어업활동을 영위하는 어민들은 다양한 유해환경에 노출돼 있다. 거의 대부분의 어민들은 자외선, 소음, 진동, 유기용제, 협소한 작업공간, 음용수 부족, 정신적 스트레스, 기온과 습도의 변화 등으로 인한 각종 질환을 피할 도리가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해상에서 다중작업과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어업인들은 무릎, 골관절염, 수근관 증후군(손목), 요통 등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만성피로에도 시달리고 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과 목포해양대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선종별 피로유형 분류 및 원인요소 보고서’에 따르면 어업원의 경우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를 하며 4~6시간 정도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외선으로 인한 각종 피부병도 어민들이 겪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태양 빛의 반사를 간섭하는 물질이 육지에 비해 적은 바다에서 자외선 노출량은 더욱 많아져 어업 종사자들은 피부, 눈 등의 질병 발생률이 타 직군보다 현저히 높다. 어업안전보건센터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어업인의 자외선 노출은 심할 경우는 1m 거리에서 용업에 의한 자외선 노출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각종 질병도 어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다. 지난 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고도위험 음주율에서 농어촌 지역이 도시지역보다 높고, 농어업종사자 집단에서 고도위험 음주율이 도시 근로자보다 27.5% 더 높았다. 또한, 알코올 의존 유병율도 농어촌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 어민들은 알코올로 인한 간질환, 당뇨병도 쉽게 노출된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이밖에도 나잠어업으로 인한 감압병, 염산업으로 인한 유해화학물질 피해, 어선 배기가스 등 분진에 의한 폐질병, 소음·진동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어민들은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와 이격된 어촌의 특성상 주기적인 건강검진은 커녕 날씨가 굳은 날 빼고는 매일 일을 하는 고령의 어민들은 본인 질환을 방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부병’, 근골격계질환 가장 심각

대부분 어업인들에게는 소위‘어부병’이라고 불리는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처럼 나타난다.

근골격계질환이란 특정 신체 부위에 부담을 주는 업무와 관련하여 근육, 인대, 힘줄, 추간판, 연골, 뼈 또는 이와 관련된 신경 및 혈관에 미세한 손상이 누적돼 기능 저하가 초래되는 급성 또는 만성적인 질병으로 통상 어깨, 허리, 무릎 등의 통증을 유발한다.

어업인과 근골격계질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연구자료는 부족한 실정이나 어업인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어업안전보건센터가 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를 통해 어업인 질환의 비중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허리질환(9.4%), 무릎 등 하지 질환(7.1%), 순환기계 질환(5.4%), 목과 어깨 등 상지 질환(2.6%) 순으로 근골격계질환이 어민들이 겪는 각종 질환 중 19.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은 부적절한 자세가 반복되고 과도한 힘으로 인해 근육의 긴장과 피로가 근육불균형을 야기하는 가운데 부적절한 통증 대처로 재손상되는 과정을 거쳐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같은 근골격계질환이 어업현장에서 특별히 잘 나타나는 이유는 어민들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선상에서 양망작업, 어획물 채취, 그물정리, 투망작업, 어선정리, 청소작업, 어획물 하역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충남 서천군 어촌계장 A씨는 “우리나라 해상은 거의 매일 파도가 출렁이는데 조업시 긴장된 상태에서 몸은 선체 벽면에 기댄 채 장시간 서 있는다”며, “양망·투망 때는 팔을 뻗고 허리는 숙이는 자세를 유지하고 그물을 들고 올리고 내리다 보니 온몸에 무리가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해상에서 어선 생활은 규칙적이지 않고, 선장이 판단해 충분한 어획량이 되기 전까지는 휴식시간이 거의 없다”며, “항구에 도착하면 곧바로 어획물을 하역하고, 다음 출항 준비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토로했다.

어선뿐만 아니라 양식장 어민들도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다. 사료입고, 사료분쇄, 사료급이, 그물갈이, 출하 등의 작업 역시 반복적이며 강도 높은 신체부담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맨손어업을 하는 어민들 역시 수산물 채취 시 팔 부위는 반복적으로 사용하지만 허리·다리는 정적인 자세로 장시간 불편하게 유지해야하므로 근골격계질환 발생위험이 높다.

이와 같은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방법 개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조선대학교 병원 송한수 교수는 “근골격계질환 완화를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 운동과 근력강화, 적절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며,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운동프로그램을 통한 근육불균형 개선이 효과적이다” 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장의 어민들은 근골격계질환 치료를 위한 운동프로그램 같은 장기적인 치료방법보다는 쉬는 날 주로 지역 보건소를 찾아 주사, 약물 같은 일회성 치료를 받고 있다. 행정·사무를 보기 위해 시내·읍내에 나갈 때 어민들은 종합병원을 방문하여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한시적으로 받고 있는 실정이다.

▲ 정밀진단
▲ 정밀진단

 

어민들 진통에 미온적 대응

어민들의 숙원사항이었던 근골격계질환을 포함한 각종 질환관리를 정부가 적극 개입하겠다며 지난 2015년 해양수산부는 ‘어업안전보건센터’를 설립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경상대학병원, 인제대부산백병원, 조선대병원을 제1기 어업안전보건센터로 지정·운영했고 지난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2기 어업안전보건센터로 동 병원 3개소를 지정, 개소당 연간 3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어업안전보건센터는 △어업인의 직업성 질환에 대한 조사연구 △질환 예방 교육·홍보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사업, △직업성 질환자 자료 구축 △정밀 진료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개소별로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취약계층어업인에 대해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어업안전보건센터가 만들어낸 가시적인 성과물들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어민질환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 지난 5년간 자료를 분석했으나 연구동향 0건, 의학칼럼 3건, 운동정보 8건, 작업개선정보 0건, 보고서 2건, 홍보자료 리플렛 7건, 논문 0건(2019년 3월 20일 기준)에 그쳤으며 활용도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유효한 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질환관리 매뉴얼·자료들도 행정력과 어업인들의 인식 부족으로 현장의 어민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북 포항 어촌계장 B씨는 “그런 연구센터가 있는 줄도 몰랐고 거기서 받은 질병 예방 메뉴얼을 수협이나 공무원으로부터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어촌 보건분야 관련 연구원 C씨는 “세미나, 포럼 참석차 현장에 가면 어민들이 어업안전보건센터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어민질환관리 체계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 남해 어민 C씨는 “어민 보건 관련 사업은 실적도 가시화되지 않는 사업이어서 정부, 자제체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고 꼬집었다. 이와 같은 사업을 지역 보건소가 나서서 추진하기에도 3년 의무만 채우면 떠나가겠다는 보건의사들의 저조한 사기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한편, 어업안전보건센터가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분야는 정밀진단. 어업안전보건센터마다 교수, 전공의,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전문의료진과 관련 장비를 갖춰 어민에 특화된 정밀진단을 하겠다는 당초 기대와 달리 예산 부족으로 실효성 있는 사업추진은 힘든 실정이다. 센터 관계자는 연간 3억 원의 예산으로 3년마다 지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전국은 커녕 지역만 담당하기도 현실적으로 버겁다고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제한된 예산에서 도서, 열악한 지역에 대해 우선적으로 진료를 진행한다는 차원에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다.

어촌계장 B씨는 “센터에서 불규칙적으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어 언제 우리마을로 의료진이 오는지 예측할 수 없다”며, “의료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낮 동안 어민들이 조업을 나갈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어업안전보건센터가 서비스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일정을 짰다면 앞으로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여건을 고려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기존에 센터가 기초연구조사 및 자료 구축에 주안점을 둔데서 나아가 점진적으로 현장 접촉을 넓히고 교육·홍보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입장이다”고 밝혔다.

 

전문인력 확충해야

각종 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민들의 체계적인 보건관리를 위해서는 관련기관들의 협조체제 구축이 필수이지만 어업인 보건관리 사업 업무가 보건복지부(진료)와 해양수산부(예방)로 이원화돼 있어 추진방향이 일률적으로 마련되기 힘든 실정이다.

실제로 해수부 담당공무원은 보건복지부와 업무상 소통을 위한 업무연락이 힘들다고 실토했다. 중앙정부에서부터 상호 필요한 정보 공유 등의 소통 부재가 나타나는 가운데 지자체까지 어민을 위한 보건정책이 연착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관련 기관의 업무가 상호 유기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협조체체를 구축하고 어업인 보건 업무를 효율적으로 운영·관리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력 또한 달리는 상태이다. 관련 업무는 해양수산부 소득복지과 1명,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1명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데 특히,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농어촌 의료서비스 개선, △건강생활지원센터, △공중보건의사제도까지 맡고 있는 실정이어서 어촌 입지는 더욱 좁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예방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어업 최전선에서 예방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어업안전보건센터의 경우 센터장을 비롯하여 농업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비중이 높다.

농업 분야의 경우 특수건강검진제도 도입 및 주요 질병관리 서비스 확대 필요성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방안을 논의해 왔다. 지난 1월 18일에는 농업인 특수건강진단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학계기관 전문가, 농민들이 그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법 제도화 방향을 공유하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농업안전보건센터 관계자는 “어업현장에서도 검강검진과 더불어 사후관리 등 보건의료서비스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안다”며, “어민,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올해 어민질병예방을 위한 모범사례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시범 마을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어민들의 고통에 실질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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