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종말이 올지라도
내일 당장 종말이 올지라도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3.03.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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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불안한 출범이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서두에 ‘국민적 환호 속에 대한민국 미래를 견인할……’ 등의 현란한 수식어가 붙지 못한 것은 나라 안팎으로 국가적 숙제가 중첩한 탓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줄곧 안으로는 국민대통합이요, 밖으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조성을 주창해 왔으나 어디서도 그 조짐이 엿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부터 최악이다. 미대통령의 2기 시작과 함께 새해 연두교서 발표 순간을 정조준한 북한은 세계를 얼어붙게 하는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6년과 2009년의 1·2차에 이은 세 번째지만, 이번에는 폭탄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동시에 성공시키면서 이제 그 사정범위는 태평양을 건넌 미국 본토에까지 다다랐을 뿐 아니라, 이로써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만인불용(萬人不容)의 사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핵무기는 공포 그 자체다. 가령 1945년 8월 6일, 원폭을 맞은 히로시마는 시민 35만 명 중 13만 명이, 그리고 그 사흘 후 나가사키는 24만 명 중 7만4천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었고, 두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불도저로 민 듯 잿더미로 화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된다. 이처럼 가공스러운 핵 위력은 2001년 빈 라덴의 9·11테러에서 보듯 세계 최강국인 미국마저도 비켜나기 어려운 최악의 인류멸망 시나리오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세계는 일시에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고, 지척지간인 55마일 DMZ(비무장지대)를 경계선으로 한 자유대한민국은 당장 핵폭탄을 머리맡에 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은 없어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유엔 안보리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북한제재 결의안을 내놓고 있지만 뒷북치기로만 그치면서 공허한 메아리로 남은 게 그 증거다. 그 결과 인민은 굶어 죽더라도 핵무기만 보유하면 체제유지가 가능하다는 김일성의 유훈이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성취감에 스물아홉 철부지 김정은 군중대회까지 열면서 미소 짓고 있는 상황이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축제 분위기는커녕 시야가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갖가지 이견(異見)이 난무하는 것도 한국적 병폐의 하나다. 개국한 지 1년을 넘은 3대 종편방송들은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건 시사토크 등의 뉴스 해설판에서 허다한 전문가들의 향후 전망과 해법을 듣고 있지만 중구난방에 각양각색이어서 마치 언설(언設)의 유희라도 보는 듯하다. 가령 책임 있는 국방 당국자 등은 실현 불가능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는가 하면, 여타 인사들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북한이 쉽게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없다거나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식이니 말이다. 거기에 북한 핵개발을 부추긴 두 전직 대통령의 이적행위를 비판하는 뒤늦은 자성(自省)까지 춤을 추고 있어 이거야말로 사후약방문에 다름 아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있고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망각을 좋아하는 국민 일부는 벌써 까마득히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한반도의 내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국가와 국민에게 몹쓸 일을 저지르고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이 자리에서 현재 핵보유클럽에 가입한 영국과 프랑스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는다. 두 나라는 소련의 위협에 노출되자 미국의 반대도 무릅쓰고 각각(1952년과 1960년) 핵개발에 성공하면서 국가안보의 토대를 굳건히 구축한 역사적 전례를 두고서다. 중동 소국 이스라엘 역시 이란 등 주변 4개국을 완벽하게 견제할 수 있는 것은 핵보유 말고도 국가존립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국민적 언행일치(言行一致) 의지와 강단에 의한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가진 것 없이 20년의 세월을 허송하고 말았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을 읊조리기에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암담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국민대통합을 위한 우선적 과제는 지천으로 널린 친북 패거리들을 깡그리 소탕하는 내부단속일 수밖에 없다. 유엔과 미 의회가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있음에도 국회로 진출한 진보의원들은 당치도 않은 이유를 내세워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국민적 통합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그들을 심판할 근거는 충분하다.

한 그루 사과나무의 의미


여기에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를 떠올린다. 핵폭탄은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휴전선 철책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다.

그 사과나무가 무엇인가.

경북 울진군의 어느 마을- 20년 전 300가구에 600여 명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절반인 165가구에 276명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 몇 가구는 손바닥만한 뒷산 땅뙈기를 갈아 채소를 가는 게 고작이고, 대부분 고기를 잡거나 해초를 채취하는 60세 이상의 어민들이다. 그처럼 인구와 가구가 반 토막 난 것을 계기로 전국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지난 해 연말 기준으로 6만3천여 가구에 15만5200여 명이 현재의 어업세력이라는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20여 년 전에는 12만2천 가구에 50만을 헤아리던 어민세력이 3분의 1로 팍 줄어든 것이다.

이유는 너무도 빤했다. 소득은 줄어들고 있고 매년 6∼7%씩의 부채이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버틸 방도가 없어진 결과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수산업은 필경 종말을 고하고, 급기야는 우리 어장에서 중국어선이 잡은 생선을 사먹어야 하는 최악의 사태와 마주하는 일도 시간문제일 판이다.

작년 11월, 전국의 수산인 8000여 명이 서울시청 광장에 모였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국 어민들이 당하고 있는 참상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달라는 시위였는데, 그들의 피켓에는 해수부 부활도 있었지만 날로 열악해지기만 하는 우리 수산업의 중흥을 위한 갖가지 절박한 주문이 주를 이루었다. FTA 대책, 우리 수역을 침범하는 중국어선의 철저 단속, 지속 가능한 수산업 기반 조성, 자연재난에 대한 지원책 등 너무나도 기본적인 하소연이었다.

여기에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이를 수협 관계자가 요약해 주었다.

“도대체 고향을 등진 어민들이 갈 곳이 어디입니까? 허드렛일이라도 찾아 도시로 갔겠지요? 하지만 자본도 없고, 특별한 손재주도 없는 처지에서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그저 도시빈민으로 추락하는 길뿐일 겁니다.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야지요. 황폐해진 우리 어촌에 다시금 풍어가가 울려 퍼지도록 말입니다. 그러려면 건국 이상으로 수산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건 모두 정부 몫이고요.”

그러면서 그는 처참한 신경으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언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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