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狼狽)라는 동물
낭패(狼狽)라는 동물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3.03.15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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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狼)과 패(狽)라는 동물이 있었습니다.

둘 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이리를 말합니다. 낭(狼)은 앞다리가 짧고, 패(狽)는 뒷다리가 짧은 이리입니다. 따라서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 합니다. 혹 둘이 다퉈 떨어지게 되면 따로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낭패(狼狽)라 한다’고 중국의 <酉陽雜俎(유양잡조)>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낭패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낭패’는 진(晉)나라의 정치가 이밀(李密)이 쓴〈진정표(陳情表)〉라는 글에도 나옵니다. 이밀은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촉한(蜀漢)의 관리가 되었습니다. 촉한이 진(晉)에 멸망하자,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그의 유능함을 듣고는 그를 관리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이밀은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마염의 거듭되는 요청에 이밀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처지를 글로 써서 올렸습니다.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의 일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었고, 네 살 때 어머니는 외삼촌의 권유로 개가를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겨 직접 길러 주셨습니다. 저의 집에는 다른 형제가 없으며,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도 없어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합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저는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께서 연로(年老)하시니 제가 없으면 누가 할머니의 여생을 돌봐 드리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관직을 받지 않으면 이 또한 폐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니, 오늘 신의 처지는 정말로 낭패스럽습니다.[臣之進退 實爲狼狽(신지진퇴 실위낭패)]”

왕을 모실 기회는 앞으로도 많은 날이 있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봉양하고 싶다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왕의 요청을 들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왕이 이해해 준다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충성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표(陳情表)를 읽어본 무제(武帝)는 그에게 돈과 곡식을 보내어 할머니를 잘 모시라고 했다고 하니 이밀(李密)로서는 실로 낭패를 면했다 하겠습니다.

오늘날에는 낭패(狼狽)의 뜻이 조금 바뀌어서 계획한 일이 틀어져서 곤란한 처지가 됐을 때의 의미로 쓰입니다. 비슷한 뜻으로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있습니다.

이밀(李密)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적은 〈진정표(陳情表)>로 낭패의 상황을 벗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안동사람 이시선(李時善)이 멀리 남쪽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날은 저물고 비까지 내려 왔던 길을 놓치고 말았다. 길 가던 이에게 묻자 외쪽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생각에는 암만해도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왼쪽 길로 가니 마침내 바른 길이 나왔다. 한번은 북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 고개를 넘는데, 갈림길이 나왔다. 어림한 방향이 틀림없지 싶어 묻지도 않고 또 쉽게 물을 곳도 없어 성큼성큼 나아갔다. 막상 가보니 엉뚱한 방향이었다. 그가 후회하며 말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은 잘못되었고, 남에게 물은 것은 올발랐구나. 길은 정해진 방향이 있는데, 의혹이 나로 말미암아 일어났으니, 땅의 잘못이 아니다.’” 조선시대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설(僿說)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순(堯舜)은 남에게 묻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요순보다 훌륭했던 것이 아니다. 능력을 과신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문제없다고 여기는 순간 독선에 빠져 실수가 생긴다.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장님이 절름발이를 등에 업고, 그가 일러주는 길을 따라 달아나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장님은 두 다리가 성하고 절름발이는 두 둔이 멀쩡했다. 둘은 서로 장점을 취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명하다 자처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늘 남을 이기려고만 들면, 어찌 능히 모르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위정자의 귀가 얇아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문제지만 쇠귀에 경 읽듯 남의 말을 도무지 안 듣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내가 못나 남의 말 듣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합니다.

신정부는 과반(過半)하는 표를 얻었기에 충분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마당에 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은 왜일까요. 정부 구성의 기반인 정부조직법 개정과 장관 임명이 그야말로 낭패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감이 지나친 탓인가요, 아니면 야당의 협조가 부족한 탓인가요.

낭(狼)과 패(狽)가 항상 붙어 다니듯, 장님이 절름발이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듯, 요순(堯舜)이 남에게 묻듯, 그렇게 할 순 없을까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졸렬함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의 능한 바를 쓴다고 합니다.

신정부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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