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영토라면 목숨인들 아까우랴
한 뼘 영토라면 목숨인들 아까우랴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2.11.09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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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못 고치는 북한집단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네 명 선원들(제미니 호)이 550일째 인질로 잡혀 있다. 운이 조금만 좋았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유를 찾았을 것이다. 납치되고 7개월만인 작년 11월 30일, 선박 소유주인 싱가포르 선사(船社)가 몸값을 건네주는 즉시 풀려나기로 하였으나 해적들은 그 약속을 어기고 중국?인도네시아?미얀마 3개국 선원(21명)만 넘겨주고 한국인 선원들은 소말리아 내륙으로 끌고 기버렸다.

 해적들이 유독 한국선원들만 물고 늘어진 것은 석 달 전(1월) 청해부대가 삼호주얼리 호 구출작전인 ‘아덴만 여명’ 당시 사살당한 8명에 대한 보상과 생포되어 한국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 5명과 맞바꾸기하자는 인질이었던 것. 하지만 한국정부는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재판을 강행,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선원들만 생환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후로 여타 한국선박이나 선원들이 더 이상 소말리아 해적들의 타깃에서 벗어난 점이랄까.

 또 지난 9월은 서해안 해역에서 우리 해군과 국방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북한 꽃게잡이 어선들이 12일부터 22일까지 예닐곱 차례에 걸쳐 NLL을 침범하여 급기야 우리 고속정이 수십 발의 20mm 벌컨포를 쏴대고 나서야 겨우 물러나는 불법행위가 이어진 때문이었다.

 북어선들은 아주 의도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NLL을 집적거릴 적마다 북한 해안포대는 포구(砲口)를 개방한 상태였고, 경비정까지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서해 NLL 인근은 연평도 포격사건이나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에도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 모두가 국가존립의 근거인 한 뼘 땅 때문이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

 해양수호(海洋守護)에 대한 연안 각 나라의 의지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 하는 최후의 보루다. 한반도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지난 한 달 동안 중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 주장을 편 조어도(釣魚島) 인근은 실로 전쟁일보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그 섬을 둘러싼 양국의 기본인식과 대응 정도를 살펴보자.

 지난 8월,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중의원은 총리 선출을 앞두고 잇달아 강경발언을 쏟아냈다(이를 언론에서는 포퓰리즘이라 한다). 그는 일찍이 동경국제재판에서 1급판결을 받은 전범들을 국내법상 범죄인이 아니라는 발언을 했고, 2010년 9월 중순 조어도 해역에서 발생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과의 충돌사건 당시에도 중국인 선원들의 구류조치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심지어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센카쿠열도에 대해 사족(蛇足)을 달면 자위대(自衛隊) 병력의 출동도 불사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한 장본인이다. 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겠다 했고, 8월 30일 총리에 선출되자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문제의 센카쿠를 ‘국유화(國有化)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드디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잠자는 곰’이 아니었다.

 그 일주일 후인 18일, 중국해군 호위함 두 척이 조어도 북북서 방향 80마일 해역으로 진출, 다음날 밤늦도록까지 순항을 계속하는 가운데 감시선과 어업지도선 등 관공선(官公船) 14척이 가세하였고, 다음 날 새벽에는 다른 관공선 두 척이 추가된 가운데 도합 1,000여 척의 자국 어선들로 하여금 섬을 둘러싸게 하면서(전군에 3급 전투태세를 하달한 상태에서) 홍레이 외교부대변인으로 하여금 ‘우리 고유의 영해에서 주권을 침해하는 타국을 제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라는 입장을 표명케 했다. 그에 앞서 일본은 40mm 기관포를 장착한 1000톤급 순시선 ‘아소’ 함을 배치한 데 이어, 해상자위대까지 투입함으로써 양국은 급기야 무력대결 양상까지 치달은 것이었다.

 중국은 무력시위뿐 아니라, 국가지도자 급이 나서서 단호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관공선들이 조어도 인근을 압박하고 있던 바로 그 날, 벨기에를 방문 중이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일본이 웃기는 짓을 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 문제라면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 했고, 마침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패네타 미 국방장관을 만난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역시 “일본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코미디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의 입장은 단호하니 미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삭의 경고를 보냈다.

 이에 대한 미국측 반응은 부드러운 편이었다. ‘미국은 댜오위다오와 관련, 어떤 견해도 갖고 있지 않고, 일본의 주장을 인정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철저하게 중립적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는 미 의회 조사국의 보고서(1996년 재발간)를 인용한 게 그것.

 하필이면 중국 관공선이 섬 주변으로 접근한 그 날은 일본이 만철선로(滿鐵線路) 폭파와 함께 중국 동북지방 3개 성(省)을 점거한 만주사변(滿洲事變)의 81주가 되는 날이어서,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전역 100여 도시에서는 격렬한 반일시위가 벌어졌고, 정오 무렵에는 일본대사관과 식당 등으로는 계란과 물병이 날아들고, 그 기세는 거세어져 급기야 ‘일제물품 불매!’를 외치는 등의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되었다. 이른 바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압박의 신호탄이었다.

 그런 중에도 대만까지 가세, 순시선과 어선 등 50여 척이 섬 인근으로 접근하면서 상호간 물대포 공방전을 벌이기도 하여 사태는 더욱 것잡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 호가 실전배치된 것도 바로 그 무렵.

 그처럼 동지나해가 들끓고 있는 동안, 뉴욕의 유엔본부라고 해서 조용할 까닭이 없었다. 9월 26일 앞서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영토 문제에 타협은 없다”고 언급한 데 대해, 이튿날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은 “일본이 우리 고유 영토인 댜오위다오를 도둑질했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하면서 설전(舌戰)은 확대되어, ‘정식 절차를 밟아 영토에 편입되었다’는 일본 유엔대표부 차석대사의 말을 받아 ‘거두절미하고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야!’라고 유엔주재 중국대사가 맞받아치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우리의 해양과학기지인 ‘이어도’가 엉뚱한 여파(餘波)에 휩쓸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나온다. 하필이면 중국과 일본이 조어도를 두고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던 9월 23일, 중국의 위칭쑹 국가해양국 해역관리국장이 동남아 각국과 분쟁중인 난사 및 서사군도 등과 함께 이어도까지 들먹이며 “우리 중국은 앞으로 무인기 이용을 확대하여 이들 해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바다는 분명 우리 영토지만, 참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북한의 NLL에 대한 빈번한 집적거림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독도와 이어도까지 두 고래가 호시탐탐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 낀 우리는 과연 무슨 방법으로 자위권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한 뼘 땅을 수호하기 위한 국민적 단합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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