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근무예비역에 대한 엇갈린 시선
승선근무예비역에 대한 엇갈린 시선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3.20 19:3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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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고리 끊을 보호장치 마련돼야

[현대해양] 지난해부터 국방부가 승선근무 병역특례에 메스를 가하려는 기류가 포착되면서 해수부, 관련 단체·기관, 해운업계, 교육기관 등이 합심하여 ‘승선예비역제도 유지하라’는 행보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향후 대체복무를 축소한다는 국방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승선근무예비역제도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는 가운데 한켠에서는 승선예비역제도를 폐지·개선하라는 비난의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학생, 학부모 ‘뿔났다’

해운업계는 공청회, 국회 토론회, 시위 등을 통해 해운산업 활성화의 초석이며 국가안보의 중대한 역할을 하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 학부모들도 시위에 직접 가세하여 국방부를 상대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의 학부모, 학생들이 승선근무예비역제도에 대해 연거푸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승선예비역을 유지하라는 청원과 함께 제도 폐지·개선에 관한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한 해양계 교육기관 졸업생의 청원의 글은 “뉴스에서 간간이 승선근무예비역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를 접할 수 있다”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승선근무예비역들의 근무 환경을 정부가 조금이라도 신경써 달라”라며 요구하는 내용이다.

해양계 교육기관에 자녀를 두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실습생때부터 해운회사의 무관심 속에 선상 폭력·언어폭력을 참아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의 대처에 분노한다”며, “지난 2월 말 아들의 친구가 승선근무 중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승선근무예비역제도로 약점을 잡혀 폭력을 묵인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제발 국가에서 나서달라”라며 하소연하는 글을 올렸다.

승선근무예비역들은 선박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엄격한 위계질서로 인한 상사의 갑질(괴롭힘)에 쉽게 노출되고 있지만 병역의무로 인해 그것들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동안 봉인됐던 승선예비역의 민낯이 현 시점에서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분출되면서 승선예비역 존폐에 대한 청원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 마련돼야

“선원 실종, 자살 사건은 뉴스거리도 아닌가? 최근 많은 실종, 자살 사건으로 젊은 청년들이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 자살 사건은 회사, 업계, 협회, 단체도 관심이 없고, 자살 원인을 개인의 미약한 정신상태로 치부하는 상황이다”며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소통 게시판에 이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이전부터 승선예비역들의 복지를 개선하라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선내 간부, 회사, 관련협회·단체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욕설과 폭행, 술자리 강요, 갖가지 심부름, 선상 도박 강요 등에 시달렸다는 항해사 A씨는 “선장, 일항사로부터 ‘지금 이렇게 배우지 못하면 나중에 제대로 된 항해사가 될 수 없다’며 자신들의 온갖 갑질을 정당화 시켰다”고 토로했다.

기관사 B씨는 “성희롱, 도박 문제를 일으키는 선장을 회사에 알렸지만 그후에도 선장은 버젓이 동 회사 다른 선박에서 근무했다. 가해자를 감싸는 회사의 태도가 문제이다”고 비판했다.

상부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로 승선근무예비역이 당한 갑질(괴롭힘)에 대한 대응은 쉽지 않다. 폭행, 사기, 공갈 등은 현행법에서 사법조치를 할 수 있지만 욕설, 준폭행, 따돌림, 성희롱 등으로부터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는 현재까지는 없다.

선내 신문고 역할을 하는 신고함이 각 선박마다 비치돼 있지만 선장, 상사가 인사고가권을 지닌 상황에서 승선근무예비역이 선듯 조치에 나설 수 없고 육상의 노정 관련 기관에 요청을 하여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성북구노동권익센터 이오표 노무사는 “욕설, 준폭행 등 괴롭힘의 경우 처벌 규정이 없고 현뱅법상 명예훼손죄 등을 적용해야 되므로 노동부에 진정해도 회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육상에서는 지난 1월 15일 근로기준법 내 제6장의2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신설돼 오는 7월부터 시행돼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할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난 2월 22일에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선보이는 등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방침이다.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 노정담당 관계자는 “선원은 노동법이 아닌 선원의 직무, 복무, 근로조건의 기준, 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선원법에 통상 보호를 받고 있지만 선원법에 근거가 없으면 노동법에 있는 조항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선원 또한 괴롭힘방지법 적용이 유효하다고 시사했다.

이 괴롭힘방지법이 향후 승선근무예비역들의 숨통을 트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여전히 승선근무에서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선원노정 관계자는 “군대는 2년 복무가 끝나 선후배를 안보면 그만이지만 승선근무예비역은 복무 후에도 업계에서 지속해서 상사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된다”며, “한번 ‘이단아’로 찍히면 좁은 국내 해운시장에서는 발을 붙일 수 없다”고 말했다. 승선근무예비역이 괴롭힘을 신고하면 사실상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바다 위에서 외로움과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을 보호해줄 강력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고는 학부모, 학생들의 공분은 그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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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2019-04-19 14:10:27
제도 개선과 근무기간 단축을 통한 유지가 정답입니다

OH 2019-04-18 12:13:27
문제가 되는 단점이 있기때문에 없애버리겠다는건 멍청한 생각입니다. 당장의 눈앞의 문제를 없애버리는 걸로 해결해버리는건 더욱 큰 문제를 가중시킬 뿐입니다.

AHN 2019-04-02 21:43:45
좋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