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중 유니그룹 회장, 필리핀에서 일군 해운 성공신화
장재중 유니그룹 회장, 필리핀에서 일군 해운 성공신화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9.03.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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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 한센인의 대부, “해양수산NGO 나와야”

[현대해양] 장재중 유니그룹 회장의 “한국에도 해양수산 분야 NGO가 필요한 시점입니다”라는 한 마디에 그의 소신과 혜안이 담긴 듯 했다.

필리핀 굴지의 해운기업을 경영하는 장 회장은 필리핀 한센인과 노숙인의 대부로 더 명성이 자자하다. 지난 30여년간 수 천명의 한센인의 보금자리와 일터, 교육을 지원하고, 노숙인을 위한 재활정착촌 건설 등의 사업을 하는 비정부기구(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인회장을 맡으면서 필리핀과 한국의 교두보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세계한인의 날 행사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지난 2015년 모교와 동창회 위상을 높였다는 취지로 한국해양대학교로부터 ‘자랑스러운 해대인상’을 수상했다. <현대해양>이 방한 중인 장 회장을 만나 스토리 있는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해 전해 들었다.


유니그룹을 소개한다면?

유니그룹(UNI Group Companies)은 필리핀 전체 해운물동량의 15% 가량 담당하는 해운물류기업입니다.

유니그룹은 ‘유니쉽’ 선박운영회사, ‘유니쉽로지스틱’ 물류회사, ‘아티코 퍼와딩’ 벌크화물운송사, ‘오픈씨’ 항만하역사, ‘노스베이유니’ 컨테이너야드사, ‘마크로오션’ 컨테이너선사, ‘에버스타’ 검수검량회사, ‘씨유니버시티’ 해양관련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레브트라 프로’ 선원훈련연수원 등 해운물류회사를 비롯하여 ‘피소페이닷컴’ 송금페이먼트게이트사, ‘코레온게이트’ 커피 프란차이즈, ‘피씨아이 이노베이션’ 싸이버교육회사로 구성됐습니다.

또한, 소외된 이웃을 위한 NGO 단체인 ‘소록유니재단’과 다바오 중심 민다나오에 ‘FM 라디오’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연소 선장 진급, 최고 해운회사에 근무했음에도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어려웠던 가정형편을 일으키기 위해 해양대학(현, 한국해양대학교, 71학번) 항해학과(27기)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승선근무를 했고 최연소로 선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이후 ‘삼미해운’의 선박화물운항감독 과장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삼미해운은 당시 국내 최고 해운사였는데 서울에서 가장 높은 본사 건물(31층)에는 산업은행 등 국책기업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치열한 승진경쟁을 뚫고 15년 후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이사나 상무로 진급하더라도, 장래의 저의 모습이 한 회사 직원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갑갑함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선장을 하면서 보고 경험한 넓은 세계가 제 가슴을 더 뛰게한다는 것을 느꼈었죠.

1980년초부터 싱가폴 삼미해운 주재원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필리핀까지 남아시아 국가를 관할했습니다. 학벌도 뛰어나지 않았고, 경제적 배경도 없었던 저는 남아시아야 말로 도전할 기회의 땅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하여 1984년 7월에 삼미해운에 사표를 내고 당시 후진국 중의 후진국였던 필리핀에 정착하여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게 됐습니다.

떠날 때 많은 회사 동료들이 저를 보는 의아한 시선들을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필리핀 생활 초기 였던 1985년 제가 몸을 담았던 굴지의 삼미해운이 해체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정부는 2년 전인 1983년부터 해운합리화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의 63개 해운회사를 20개로 축소시키는 수순을 밟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삼미해운이 당시 중소선사였던 ‘범양상선(현, STX)’에 합병된 것이었지요. 함께 일했던 삼미해운 직원들이 모두 내가 합병될 것을 미리 알고 퇴사하였다는 소문도 돌았던 기억이 나네요.

▲ 노숙자들을 돌보는 장 회장.
▲ 노숙자들을 돌보는 장 회장.

 

많은 암초를 극복하고 어떻게 지금의 유니그룹을 이루었나?

1984년 7월 삼미해운을 사퇴하고 곧바로 저는 필리핀 소재 프랑스 해운기업이었던 ‘씨우드’에 취업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1985년 말부터 필리핀에서 연일 반정부 데모시위가 벌어지면서, 거의 모든 외국기업들이 필리핀을 떠나갔습니다. 씨우드도 본국인 프랑스로 철수를 진행하면서 회사로부터 같이 귀국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내 1986년 3월 10일에 민주혁명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이 하야하고 ‘아퀴노’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는 지금 유니그룹의 창신인 유니쉽(UNI-SHIP) 선박운영회사를 창립할 수 있었습니다.

UNI는 ‘You and I’를 뜻하며, SHIP은 선박 그리고, ‘Friendship’, ‘Relationship’ 등에 붙는 단어라는 취지에서 ‘사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의 유니그룹은 필리핀 임직원들의 작품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필리핀에서 번 돈은 필리핀에 돌려주겠다’는 경영철학에 따라 자회사를 설립하면 직원에게 사장자리와 지분을 나눠주었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직원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지원하고 유니폼, 주거 등을 제공하는 점도 우리 회사가 필리핀 최고의 해운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바탕인 것 같습니다.


영향력 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해운업에 대해 ‘사상 최대 위기’, ‘역성장의 적신호’라는 표현에 짓눌려 연일 침체된 분위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여전히 일본 다음으로 동아시아에서 해운을 주도하는 해양강국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운, 항만 교육프로그램을 배우려는 국가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필리핀을 비롯하여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몽골,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은 우리나라 선진 해운교육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국내 인재들은 국내 해양산업에만 시야가 머물러 있다는 경향에 대해 다소 아쉬운 마음입니다. 유엔 산하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또한 국내 해양계 대학 출신 아닙니까. 또한 수많은 선배들이 세계 곳곳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사분야 국가라는 저력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경우 산업할 동력이 없습니다. 마닐라에서 자기 꿈을 펼치겠다는 필리핀 청년들은 극소수입니다. ‘미국가서 간호원 할거야’, ‘사우디에가서 전기공 할거야’라며 이 청년들은 고등학교때부터 세계를 자신의 일터라고 방향을 설정합니다. 이에 가족들이 세계에 곳곳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보다 4배 더 많은 자국민이 국제기구 등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해운분야에서 보면 필리핀 선원들은 선원송출의 50%를 차지하는 선원 대국입니다. 최근에는 특수선인 LNG선, 해양플랜트 같은 선박의 고급사관으로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해양인들 또한 국내 해운업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해사분야 교육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문 걸어 잠거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손흥민이 90분동안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하든지 유럽에서 하든지 다른 점이 없습니다. 터만 달라도 가치가 1,000배 바뀔 수 있습니다. 이제 국내 해양수산 인재들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취업,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려는 청년들을 부모도, 교수도 선뜻 바꿔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많은 강연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들의 방향을 설정하고 비전을 심어주는 일에 더욱진력할 계획입니다.

▲ 본지 송영택 발행인과 대담하는 장재중 회장
▲ 본지 송영택 발행인과 대담하는 장재중 회장

 

필리핀은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수산분야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한때 수산분야 자회사를 구상한 적이 있습니다. 섬이 7,000개에 이르는 풍부한 어장환경을 가졌지만 가난한 필리핀 서민들은 절대적인 어선 부족과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바다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우수한 수산기술력으로 필리핀의 대표적인 어항을 하나를 모델로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어촌사업을 통해 축적된 접안 인프라 구축, 어촌주택개량, 가공공장 시설, 관광사업관리 등의 어촌개발사업이 진행된다면 그들이 스스로 조업하고 수산물을 가공하여 한국을 비롯한 타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례에 부합하는 격이지요.

앞으로 이와 같은 국제 협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민간원양선사들이 ‘어업쿼터(Quota)제’를 할당 받을 때 해당 국가의 지역에 좋은 사업을 진행해 쿼터를 할당받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필리핀의 ‘제너럴 산토스’ 원양산업 기지에 한국인들도 많이 진출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과의 교류가 잦아지길 바람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바닷모래로 어민들이 아우성입니다. 이와 반대로 500km되는 강들이 다수 분포한 필리핀은 모래가 산적해 강하구가 범람하는 등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모래를 그것도 바닷모래가 아닌 강 모래를 채취할 수 있는 사업도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분야 NGO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같이 정치적 문제 등으로 국가가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사업 분야들이 있습니다. 교육부, 외교부 타 부처 산하에는 NGO가 많습니다. 농업 분야도 상당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모든 국가가 관장하고 있는 바다와 관련된 해수부는 국제협력 NGO가 전무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어선 사례와 같이 우리나라 해수부도 어선감축사업과 맞물려 필리핀에 노후어선을 지원하는 사업을 검토했지만 어선은 지자체에 소속이 돼 있고, 필리핀 지방정부와 소통할 공식적인 채널이 없어 이러한 사업들이 흐지부지 돼 버렸습니다.

NGO는 여기서 실질적인 중개자 역할로서사업 동력의 불씨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국내 수산분야에서는 ‘한국수산회’가 민간창구로 많은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해운, 항만, 조선, 수산 모두를 아우르는 민간 NGO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씨웨이브(Sea-Wave)는 해양수산 모든 분야가 참여하여 국내·외 자선활동 및 국제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NGO를 통한 국제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현대해양>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해양수산분야 NGO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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