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 축복인가 재앙인가
한·미 FTA - 축복인가 재앙인가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8.10.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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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국양이(鎖國攘夷)의 아픈 역사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아니하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다. 1871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서양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봉쇄하기 위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세운 척화비(斥和碑)에 새겨진 비문(碑文)이다.

 1866년 아홉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비롯한 수 많은 천주교도를 처형한 대원군의 박해에 항거하여 프랑스는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일으킨다. 그 후 1871년에는 화친과 개항(開港)을 요구하는 미국전함을 화포공격으로 물리친 사건인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발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고무된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멀리하는 것이 나라를 보전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쇄국양이(鎖國攘夷)정책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기에 이른다.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역사를 간직한 이 척화비는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겪으면서 일본에 의해 철거되는데, 이 한 조각의 비문 속에는 조선조 말기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조선의 운명과 대한제국 통한(痛恨)의 역사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무릇 역사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역사가 간직한 교훈은 풍화(風化)되지않은 돌비석처럼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원칙이 미래를 좌우한다

 21세기 최대의 화두(話頭)는 세계화다. 세계화는 개방을 전제로 한다. 이념전쟁, 이데올로기의 망령은 구(舊)시대의 유물로 버려진지 오래다. 바야흐로 자원전쟁, 경제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즉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류 공통의 목표인데, 다만 그 척도가 문제다. 행복한 삶의 기준은 세계인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에서 찾아야만 한다. 우리 끼리, 우리 민족 끼리, 우리 방식대로의 삶은 궁극적으로는 불행과 파멸을 잉태할 따름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위상(位相)을 두고 「샌드위치론」이 논쟁의 초점으로 떠 오르고 있다. 지난 2월9일에 있었던 경제인 모임에서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이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다. 일본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이를 극복하지않으면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반도의 위치다”라고 기자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에도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기술강국 일본은 경제활력을 되찾아 더 앞서 나가고 있고 생산대국 중국은 우리나라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산업의 경쟁력마저 점점약해지고 있다”는 이건희회장의 말이 「샌드위치론」의 배경으로 설명된다. 지난 해에도 중국은 10.7%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일본은 막강한 재정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2의 호황기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청년실업이 사상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5%선에 맴도는 경제성장률과 기업의 투자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경제현실과 비교할 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갖게되는 것은 비단 경제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도 우리나라는 늘 일본을 비롯한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등의 대륙세력 사이에서 침탈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의 한반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대륙침탈, 해양장악을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21세기 신태평양시대의 허브(Hub)요 전략적 요충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법치주의, 시장경제의 원칙,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해 나가지 못한다면 그 꿈은 한낱 허상(虛像)이 되고 만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임시방편의 원칙없는 지원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농업을 포함한 몇몇 분야에 대해서는 논쟁의 소지가 여전히 존재하고는 있지만 이번 협상결과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 수산분야는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민감품목에 대한 양허관세 유예기간을 3년에서 15년까지 확보함으로써 시장개방에 따른 보완대책을 수립해나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정부와 어업인이 지금부터 우리나라 수산업 역사를 새로 쓴다는 각오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구조조정작업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불행이 닥칠 것이다. 정부는 피해발생품목에 대한 소득보전직불금을 지급하고 생업을 포기하는 어업인에게는 폐업지원금 까지 지급하는 등,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어업인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문민정부시절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대비하여 농수산업 구조조정 명목으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집행된 약 57조원의 예산이 부실화되고 새로운 농어가부채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지원대상자 선정문제, 사후관리문제, 투융자사업의 중복문제, 집행 공무원의 전문성결여문제 등등, 과거 10여년 동안 시행착오만 거듭하면서 구조조정이나 경쟁력 향상에 실패했던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칠레FTA와 도하개발아젠다(DDA)협정에 대비하여 2003년부터 집행하고 있는 119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융자사업비를 더 늘려나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일 1992년과 같은 시행착오가 또다시 반복된다면 우리나라의 식량산업은 영원히 몰락할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도 급격하게 부실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나라 돈은 공짜돈”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뿌리뽑는 것이 큰 숙제로 남아있다. 앞으로도 EU(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인도, 베트남등 세계 주요 교역대상국가와의 FTA협상이 기다리고 있고, 특히 중국과의 FTA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 과제인 만큼 농수산업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항구적인 대응책을 수립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하는 바다. FTA가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하기에 달려있다.

 

 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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