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08 내가 기억하는 향파선생…허형택 박사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08 내가 기억하는 향파선생…허형택 박사
  • 현대해양
  • 승인 2019.02.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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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대학보 편집일 맡으라며 본과 진학 제안,
해양학자로 가는 길을 열어줘...

이번호에는 향파 이주홍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장을 지낸 허형택 박사(81세, 1938년 생)를 만나 향파 선생에 대한 추억담을 들어봤다.

허 박사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과학자를 특급대우로 불러온 국가 유치과학자로서 서태평양해양학위원회의장,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생존하는 한국해양학회 발기인이며 대한민국과학기술상 과학상, 파콘국제상, 월해수산연구상,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 해양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허 박사는 1980년 향파 이주홍 문학재단 창립멤버로 참여했으며 2006년부터 2016년까지는 이주홍 문학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허 박사가 현대해양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여 향파 이주홍 선생과의 인연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 허형택 박사
▲ 허형택 박사

 

[현대해양] 허 박사가 향파 선생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이후 부산수산대학에서 임시로 운영 중이던 중등교원양 성소를 다닐 때였다. 가난한 산청 시골 출신인 허 박사는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을 생각이었다.

“중학시절은 6.25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읽을거리가 없었어요. 그 당시는 ‘학원(1952년 창간되었던 월간 학생교양지)’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이것이 학생들에게는 유일한 읽을 거리였어요. 이 때 내가 산문 2편을 이 잡지에 실었는데 소설가 정비석 씨가 크게 칭찬해 주었어요. 내가 해양학자로서 길을 걸었지만 어릴 땐 문학에도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이런 경험 때문인지, 우연히 모 신문사에서 개최한 ‘전국 문학 콩쿨’에 ‘내일’이라는 제목의 시를 제출했는데 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눈 여겨 보신 향파 선생께서 본과(수산대 증식과)로 올라와 학보 발행을 맡아달라고 하셨습니다.”

향파 선생은 허 박사에게 학보의 발행을 맡아 주면 학비를 알아봐 주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교사직으로 사회로 나아가려는 허 박사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제안이 학생 허형택을 훗날 세계적인 해양학자의 길을 걷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학보 제작을 맡게 된 허 박사는 부정기적이긴 하지만 신문형태를 띤 학보를 만들어 내었다.

허 박사가 기억하는 그 당시 학보 제작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무실이 없어 향파 선생께서 본인의 본관 교수실을 내어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아래 신문을 제작하긴 했으나 저혼자서 기사도 쓰고 편집도 맡아야 했어요. 학교에서 문서상 정식 기자로의 촉탁임명도 없이 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투입된 직후 수산타임즈에서 수대학보로 제호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수대학보의 시초일 수 있습니다. 혼자하다 보니 4페이지 분량으로 발행하였습니다.”

허 박사의 학보제작 활동은 57년부터 60년까지 이어졌다.

허 박사가 기억하는 향파 선생은 팔방미인이었다. 시, 소설, 희곡, 서화, 서예 등 모든 문화 분야에 능통했으며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중국고전을 번역하고 수많은 책을 발간하는 등 대단한 능력을 갖추신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대 문인이 진행하는 국어 교양수업은 학생들로부터 항상 인기가 있었다.

앞으로 험난한 바다와 싸워나갈 학생들에게 문학과 예술의 감수성을 자극해 주는 향파 선생은 학교의 보물이었다. 허 박사도 이러한 향파 선생의 지도아래 증식학을 수학하면서도 동료 학생들과 함께 선(線)문학동인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허 박사가 말하는 향파 선생과의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학비를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학보를 만드는 일을 해오던
허 박사는 4학년2학기가 되어 교무과에서 호출을 받아 가보니 등록금을 한 번도 내지 않아 제적이 되어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향파 선생이 백방으로 뛰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학교회의를 열어 “허 군은 3학년 올라올 때 등록금을 면제해주자고 이미 학교에서 약속을 하였는데 모두가 놓치고 있었다”며 “교육자가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펼쳐 결국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허 박사는 웃으며 향파 선생께 큰 덕을 봤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시 만해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허 박사는 해양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0년 부산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4년을 근무한 후 유학길을 올라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생물해양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하고 78년 국가 유치과학자 자격으로 후한 대접을 받으며 귀국하였다.

이후에도 향파 선생과는 인연은 계속되었다.

“1985년으로 기억합니다. ‘바다, 인류의 마지막 보고’ 책을 내어 향파 선생님께 보내드렸더니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하시면서 아주 좋아해 주셨어요.”

이주홍 문학재단 창립멤버로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이주홍 문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매년 문학상, 백일장, 문학기행을 진행하며 빠짐없이 참여했으며 재임당시 부채에 이주홍 선생의 글을 쓴 작품집을 만든 것도 크게 기억에 남는 일이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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