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⑫ 그곳에 가면, 부산이 보인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⑫ 그곳에 가면, 부산이 보인다
  • 김준 작가
  • 승인 2019.02.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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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이송도, 흰여울마을

 

[현대해양] 흰여울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세 차례나 다녀왔다.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어 부산에 가면 꼭 찾는 것일까.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것이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해서 ‘흰여울’이라 했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이송도 마을이다. 맞은 편 케이블카가 오가는 송도에 비견할 만큼 아름답다 해서 이송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피난살이가 만들어낸 마을

“태종대로 가는 길에서 유성온천 앞에 내리세요. 도로를 건너면 바로 마을입니다.”

흰여울문화마을을 안내하는 분의목소리가 다정하다. 마을 안에 차를 들일 수 없다. 두 사람이 손잡고 걸을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경사가 급하다. 오죽했으면 골목에서 쏟아지는 물이 눈이 오는 것처럼 희다 했을까.

이런 배경이 필요했던 ‘변호인’, ‘범죄와 전쟁’ 영화의 촬영지였다. 2012년 공가와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주민들에게는 자긍심을, 여행객에게는 체류형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마을로 가꾸었다. 덕분에 부산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아침부터 늦게까지 이어진다.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 주민그리고 전문가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지금은 버스가 다니는 절영로가 만들어져 다행이지만 애초에는 영도다리를 건너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 이 길을 ‘흰여울길’이라 했다. 태종대로 이어지는 절영로와 흰여울길 사이에 좁은 골목이 무려 14개가 있다.

그 길 사이 벼랑에 다닥다닥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한국전쟁 때 들어온 피난민들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이태리 친퀘테레(Cinque Terre)를 떠올렸다. 그곳 역시 바닷가 벼랑에 옹기종기 다섯 개의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도 놀랍게도 역시 전쟁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산비탈을 일궈 심은 포도는 명품 와인으로 태어났다. 이 모든 공간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오직 기차를 타고만 접근이 가능한 불편한 여행지이다.

▲ 흰여울길은 어른에게는 추억이고 아이들에게는 여행이다.
▲ 흰여울길은 어른에게는 추억이고 아이들에게는 여행이다.

 

삶의 흔적, 오롯이 남겨두고

작은 책방을 지나고 구멍가게를 돌아 시난고난한 삶이 녹아든 골목에 이르러 숙박할 열쇠를 받았다. 게스트하우스, 오늘은 가족들이 통째로 사용한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부엌이 딸린 작은 거실, 이층침대가 있는 방, 그 안쪽으로 작은 골방 그리고 수세식 변기가 있는 화장실. 아이들과 아내의 표정을 읽었다.

가족여행에 쾌적한 호텔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겨울철에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방 따뜻하고, 따뜻한 물 나오고, 화장실에 달린 샤워기면 되는데, 아이들은 그게 아니다. 더구나 어제 숙박을 했던 곳이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이었다.

탁 트인 바다를 한 눈에, 그곳도 방안에서 볼 수 있었다. 깨끗한 방과 주방 그리고 샤워장. 호텔이 부럽지 않는 곳이었다. 극과 극이다. 달랠 겸 아이들에게는 부산 시내 구경을 권하고, 아내와 함께 골목길 탐방에 나섰다.

절영로와 흰여울길 외에 해안을 따라 최근 만들어진 산책로가 있다. 걷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객도 많지만 영도주민들이 더 많다. 주민들이 좋아하는 곳은 여행객에게도 인기가 있고, 관리도 잘 된다. 절영해안산책로, 부산 전역에 만들어진 ‘갈맷길’ 일부이다.

부산 남항을 끼고 태종대까지 해안과 벼랑을 잇는 길이다. 이 길은 흰여울 문화마을과 이어지는 맏머리계단, 꼬막집계단, 무지개계단, 피아노계단, 도돌이계단 등 다섯 개 층층계단이 있다. 절영해안산책로는 연 1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바뀌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태종대와 오륙도를 만난다.

▲ 마을주민이 직접 안내하는 주민해설사
▲ 마을주민이 직접 안내하는 주민해설사

 

우리 어머니 상군이에요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다양하다. 통발을 건지는 어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바위 위에 촛불을 키고 좋은 대학에 합격을 비는 어머니 등. 몇 년 전, 해안산책로를 걷다 막 물질을 끝내고 망사리를 지고 나오던 해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산 한 복판에서 물질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제주에서 출가 온 해녀들이 부산에 많았다. 도시가 확장되고 항만개발과 해안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부산에 물질을 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들었다.
갈 곳이 없는 부산 해녀들에게 영도는 마지막 섬이자 바다다. 그 중에서도 흰여울, 상리, 중리 등 동삼동어촌계 구역 정도다. 부부가 산책로 가장자리에 그늘막을 쳐 놓고, 막 건져온 맵싸리와 돌멍게 그리고 문어를 삶아 손님을 기다린다. 아내가 소라를 씻고 사내는 바닷가로 내려가 망치로 소라 껍질을 깬다.

그 사이 늙은 해녀가 힘겹게 망사리를 짊어지고 올라와 건져온 것들을 쏟아 부었다. 온통 맵싸리 뿐이다. 작은 망에 들어 있는 미역도 훔쳐 냈다. 아는 단골이 미역을 주문을 했다면서. 미역을 먹다 잡혔는지 군소도 두 마리가 있다. 또 다른 해녀가 힘겹게 망사리를 뭍에 올렸다. 쏟아 놓으니 온통 돌멍게다.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멍게를 접시에 담아 좌판에 올렸다. “우리 어머니는 상군이에요.”

어머니 물질 솜씨를 자랑하는 아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맵싸리는 바다 가장자리에서 쉽게 줍지만 돌멍게는 깊은 곳에 산다. 숨을 오래 참고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잡아 왔다. 오늘처럼 날씨도 좋아 수심 깊은 곳에 햇볕이 들어 돌멍게를 찾기 수월해야 가능하다.

옆에서 혼자서 고둥을 접시에 담아 좌판에 올리던 나이가 많은 해녀가 ‘나도 한때 상군이었다’는 눈빛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녀도 어렸을 때 무자맥질로 갓물질을 배워 동해와 남해 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배물질을 하다 상군이 되어 영도에 머물렀다.

물질로 아이들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하군보다 낮은 똥군이 되었다. 그래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 맵싸리와 군소는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바다가 그녀의 삶의 궤적이다.

▲ 망사리를 지닌 해녀
▲ 망사리를 지닌 해녀

 

부산의 맛, 고등어

시내구경도 하고 군것질을 한 아이들의 표정은 몇 시간 전과 다르다. 아이들을 만족시킬 두 번째 묘책은 사진이다. 멋진 장면을 휴대폰에 담는 것이다. 마침 해가 송도로 지고 있었다. 흰여울에서 보는 노을은 남항에 떠 있는 배와 어우러져 멋진 해안경관을 만들어낸다.

항구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대형 화물선의 주차장이다. 부산남항 묘박지이다. 화물선만 아니라 요즘에는 부산공동어시장이나 자갈치시장을 오가는 운반선들까지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새벽에 먼 바다로 나가는 고등어 선망 선단이나 만선으로 들어오는 운반선도 볼 수 있다.

영도에 가면 어김없이 들리는 집이 있다. 고등어전문 추어탕집인 ‘부산추어탕’과 고등어초회 전문집인 ‘달뜨네’다. 부산추어탕은 가격도 착하다. 5,000원이면 한 끼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다. 맛도 일품이다. 여기에 걸죽한 영도 막걸리를 곁들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얼마 전까지 4,000원이었다. 안주인은 앞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올리지 않겠단다. 후덕한 인심이 엿보인다. 고갈비는 충무시장이나 자갈치시장 등 부산 곳곳에서 흉내를 내지만 추어탕만은 손이 많이가고 이문이 크지 않아 누구도 흉내내기 어렵다.

꼭 추천하고 싶은 집은 흰여울마을과 함께 남항동에 위치한 고등어 초회 전문집 ‘달뜨네’다. 절영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고집스런 주인장을 닮아 제대로 잘 큰 고등어만 취급한다. 직접 담근 청주와 잘 어울린다. 일 년 이상 숙성시킨 고등어 초회는 단골에게만 내 준다. 직접 가게를 디자인하고 그림도 그리는 재주꾼이다. 장과 된장을 직접 담가서 사용하며, 고등어 역시 어시장에서 물을 보고 직접 선택할 만큼 안목과 고집이 대단하다. 자리가 여유롭지 않으니 예약을 하거나 일찍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변화의 바람, 어찌해야 할까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잔치도 벌렸다는 우물터, 좁지만 이곳에서는 주민잔치도 하고 마을회의도 하는 광장이다. 지난해에는 마을에 세워지는 고층건물을 반대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기껏해야 10여 층도 되지 않으니 고층이라 할 것도 없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낮은 꼬막집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보니 몇 층만 올라가도 고층이다.

5평에서 10평 내외의 집들이 절벽 경사면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어 ‘꼬막집’이라 한다. 대부분 낮은 2층집이다. 이곳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그 시작은 교회건물이다. 꼬막집 몇 개를 사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다.

자본을 앞세워 절차에 따라 건물을 지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 도시재생을 따라 오는 것이 자본이다. 꼭 해결해야 할 도시재생의 문제점이다. 빈집과 폐가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며 지역재생을 하겠다는 사업이 개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토리니나 친퀘테레가 명품여행지로 주목을 받는 이유를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흰여울도 상권발달과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과 주민 사생활 침해로 인한 ‘투어리즘포비아’가 우려되기도 한다.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전시회와 작은축제를 마련하지만 밀려 오는 자본의 물결은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막을 길이 없다.

문화재로 지정하고 다양한 보호구역을 마련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역시 주민들의 지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지역주민과 그들의 삶을 거세되는 재생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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