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⑪ 알쓸신잡-바다편
하동현의 양망일기 ⑪ 알쓸신잡-바다편
  • 하동현 작가
  • 승인 2019.01.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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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까마득한 옛날, 대학을 선택해야할 기로에 섰던 고3때 어느 책에서 멋들어진 글귀를 발견했다. 미국의 저명한 문필가가 아들에게 보내는, 사나이 한평생 ‘무엇이 되어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절절한 조언이 담긴 글이었다.

‘생업(Job, Work)’으로서의 호구지책이 아니라 내면에 잠자고 있는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위치(Position, Career)’에 관한 권고였다. 남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였지만, 그는 함대제독, 신문사 편집장, 영화감독, 프로야구감독, 이런 직종들을 꿈꾸어 볼만한 직업으로 천거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단체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과 개성을 융합해 공동체를 이끄는 역할들이었다. 말미에는 비장한 어조로 대담한 결정과 목표를제시하고 독려해야하는 지난한 여정과, 그에 따르는 고독과 내면의 갈등을 견딜 ‘내공’ 쌓기를 게을리 하지마라는 충고도 덧붙이고 있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였으니 시대정신에 따르는 고전적인 시각이기도해서 현재의 잣대로 본다면 격세지감이다. 아이돌(Idol)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사업과 컴퓨터 그래픽 영화가 판을 치는 지금, 협력과 희생을 담보하며 더불어 가는 길보다 각자의 능력과 개성을 살리는 쪽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았나.

나는 어땠을까. 하 수상하던 시절이라, 출국 전의 까다로운 신원조회와 입국 시에는 공항에서 유독 뱃놈들만 따로 ‘에이즈검사’를 받았던 특혜(?) 같은 것들은 떠올리기도 싫지만, 뱃놈이 되면서, 그리고 선장이 되면서 ‘함대제독’근처까지는 갔다고 혼자서 자위했었던가.

아버지가 되어서도 아들들에게 그 문필가처럼 꿈과 야망을 일깨워주는 방향은 제시하지도 못하고, 겨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한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경제적 결과가 따른다면 금상첨화’라는, 두루 뭉술하고 흔해빠진 조언정도가 고작이었다.

‘때려죽인다’ 해도 배를 직업으로 택할 리 없고, 가족여행 때 유람선에나 올라 바다를 접해본 것이 고작인 아들들은 더 이상 산타크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유년을 지나 군대문제다 취업이다 미래를 걱정해야할 성인이 된지 오래다.

이놈들이 어릴 적 선장 출신 아버지랍시고 바다와 배에 관해서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 항해술(航海術)이나 어장학(漁場學) 같은 심도 있는 이야기는 생소하고 지겨워 할 것이므로, 눈높이에 맞추었달까 쉽게 풀어서 들려줬던 몇 가지 해양에 관련된 기초상식 몇 개를 이야기 해보자.

 

2 시차(時差-Time difference).

월드컵 축구 때면 외국에서 새벽이나 오밤중에 열리는 시합시간에 맞춰 깨워 달라 신신당부를 한 어린 아들들은 ‘왜 저 나라는 하필 이 시간에 시합을 하느냐’고 짜증을 내고는 했다. 지금이야 경제나 문화 교류 활동이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이루어지는 글로벌 시대에다, 여행이 보편화되어 시차개념이 일반상식 축에도 못 끼겠지만, 옛날 첫 배에서부터 시차 때문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내 첫 항해는 북아프리카 라스팔마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가로지르고, 파나마운하를 통과한 후 사선을 긋듯 태평양을 내리그어 뉴질랜드로 향하는 50일간의 대장정이었다. 동에서 서로 달리는 항정이기에 사나흘에 한 시간 꼴로 늦추고, 날짜변경선을 지날 때 하루를 소멸시켜 그 날이 다음 날짜가 되게 조정하는 항해를 했다. 며칠에 한 시간씩의 조정 정도야 생체리듬이 적응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지만, 식사나 취침시간 변경으로 일정들이 깨져 가벼운 혼란들이 있었다.

남미어장에서 몇 년을 보내고 ‘특례보충역’을 필하고자 중도귀국해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지구반대편에서 급히 귀국해 낮밤이 정반대로 뒤집어진 시차에 며칠 고생께나 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저녁 마셔 댄 술이 더 큰 문제였지만, 한낮의 훈련 중에 총을 들고 걸어가며 코를 골 정도였으니.

처음 시차의 개념을 알아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기록으로 보건데 1522년 9월, 3년간의 험난한 세계일주항해에서 세비야로 귀환한 마젤란 함대의 선원들이 아닐까. 200명 넘는 선원과 5척의 배로, 황금과 향신료를 찾기 위해 야심찬 항해를 시작했지만 험한 바다에서 배들이 난파되고, 선상반란에 이어 도망가는 배에다, 상륙하는 대륙마다 원주민과 교전이 벌어지는 등 길고도 고달픈 여정이었다.

필리핀 세부군도 토착민들과의 전투에서 수장인 마젤란 마저 전사하고, 천신만고 끝에 생환한 한 척 배 빅토리아 호의 스무 명도 안 되는 선원들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에 큰 혼란을 겪었지 싶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일기를 쓰듯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기록한 항해일지(Log book)상의 날짜가 귀환당일과 하루 차이가 났다. 골백번을 뒤적거리며 점검 해봐도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하루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으리라.

몇 십 년 앞섰던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으로 천동설이 꼬리를 내리고 지동설이 확립될 대항해시대였다. 내로라하는 천문학자들이 마젤란 함대의 기록과 병행해서, 해시계의 막대그림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며(남반구는 반대) 길어졌다 짧아졌다하는 것을 기초로, 태양 빛이 도달하는 양에 따라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하루’가 이루어지며,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지구의 반대편 지점에 도달한다는(낮에서 밤으로, 또는 그 반대) 추정을 해보면 명백한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유추해 냈을 것이다.

뛰는 자위에 나는 자가 있기 마련이라 이를 이용한 ‘잔대가리’형 범죄도 지천에 깔렸단다. 예를 들면 외국에 유학중인 학생을 감금했다며 시차 때문에 연락이 쉽지 않은 허점을 노린 ‘보이스 피싱’정도는 약과요, 국제기업의 입사시험 같은데서 한밤중에 시험을 치르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늦은 시간에 해당되는 나라의 수험생이 이른 시간에 시험을 치른 나라의 문제지를 기상천외한 루트를 통해 입수하는 것 등이다.

순기능 쪽으로 보면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가 독보적이라는데, 한 나라의 사무실에서 낮에 진행하던 업무를 마치면 뒤이어 다른 나라의 팀이 출근해서 바로 연계해 나가는 사례도 있단다. ‘타이밍’을 중시하는 증시와 연계된 기업의 투자활동도 시차효과가 두드러진 분야로 들은 적이 있다.

시차 적응방법이라야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별 것 없었다. 바뀐 낮에 쏟아지는 잠을 견디며 밤이 될 때까지 수면시간을 늦추는 수밖에. 인간의 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응력이 좋아서 며칠이면 바뀐 그 곳의 시간에 익숙해질 것이다.

 

3 지도(地圖)와 해도(海圖).

평면세계지도에 익숙했던 큰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책상에 지구본을 들여다 놓으니 이곳저곳 나라의 위치를 찾아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TV에서 본 썰매 개에 필이 꽂혔던 녀석이 교과서 지도와 달리 지구본에서 찾은 ‘그린란드’가 너무 작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장식용 벽걸이 사각지도에서 흔히 접하는, 16세기말 네덜란드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mercator)가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통 도법의 원리를 개량한 것에 착안한 점장(漸長)도법은 구체(球體) 즉, 공 모양의 지구를 해체해 평면에 펼치는 개념으로 제작된 것이다. 한 점으로 좁게 모인 남, 북극의 경도를 공 모양에서 가장 부풀며 넓어지는 적도의 거리와 같은 간격으로 펼쳐 사각구획을 만드니 왜곡이 발생한다. 적도 부분은 정확한 반면, 고위도로 갈수록 면적이 확대되고 극지방이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진다.

러시아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두 배 가까운 면적으로 보면 되고, 그린란드가 호주보다 넓게 보이며 멕시코가 알라스카보다 작게 나타나는 현상도 공 모양을 무시하고 좁은 극지방 쪽의 경도를 넓은 적도 쪽과 동일하게 바둑판처럼 펼친 결과의 착시효과다.

해도는 일본식 번역상의 오류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사용 목적에 따라 총도(總圖), 항양도(航洋圖), 항해도(航海圖), 해안도(海岸圖), 항박도(港泊圖)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포함된 범위와 축척이 각각 다르다. 뒤로 갈수록 확대지수가 커진다. 얕은 바다를 항해할 때에는 해저 지형이 자세히 표시된 지도가 있어야 하지만, 깊은 바다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풍부한 수산자원으로 고기들이 많아 어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수역을 말하는 어장(漁場)에서 조업할 때는, 크게 확대된 해도위에 투명 트레이싱지를 덧씌워 수없이 반복되는 투양망 지점과 장애물인 암초, 그물을 끌던 예망코스에다 입망포인트를 기입하는 어장도(漁場圖)를 자체로 만든다. 이것들은 어선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자 후임에게 물려 줄 유산(?)이 된다. 복수의 이성 친구와 미묘한 줄다리기를 즐기는, 소위 ‘밀당’으로 해괴하게 변형된 ‘어장관리(漁場管理)’라는 용어를 떠올리며 키득거리는 아들은 이쯤에서 쥐어 박힌다.

 

4 멀미(Motion sickness).
‘나이롱 동네 도장’ 이지만 태권도다 뭐다 무술이 합쳐서 몇 단에 축구선수로 도 뛰었던 큰아

들이 지금도 차만 타면 멀미 때문에 고생한단다. 또 하나 ‘멀미선장’이라고 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바다에 나섰으나 영원히 극복하지 못한 멀미 때문에 배 생활을 일찍이 접고 딴 길을 찾아야했던 비운의(?) 대학동기 한 친구의 닉네임이다. 어쩔 수 없이 바다를 떠났지만 망망대해를 동경하는 그의 애정이 담긴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었다.

영어로는 뱃멀미만 생각해서 Sea sickness라고만 떠들고 있었는데, 여타 운송기관이나 심지어 3D 영화관람 때도 이런 증상이 있을 수 있다니 포괄적인 개념으로 Motion sickness가 원어란다.

불규칙한 신체동작에 대한 반응으로, 낯설게 혹은 비정상으로 몸이 흔들릴 때 그 동작이 내이(內耳)의 반고리관 내 림프액에 전달되어 생소한 진동이 뇌의 구토중추에 전해져 일어나는 증상이다. 그러니까 평소 익숙한 동작이나 움직임들은 눈, 내이, 근육과 관절을 통해 신호화되어 평안히 뇌에 전달되지만, 불균형적으로 흐트러져 보내는 상반된 신호들의 교란으로 일어나는 메스껍고 어지러운 상태를 말한다.

한자로는 훈 또는 운(暈-어지럽다는 의미, 또는 달무리, 해무리의 테)으로, 차의 흔들림으로 해(日) 보기가 혼란스럽다 정도로 글자풀이가 될까. 멀미의 정도는 배가 가장 심하고 다음으로 항공기, 승용차로 가다가 기차가 제일 덜하다. 기차는 레일이 붙들어 주는 안정된 코스, 드물지만 급제동을 하더라도 시간이 걸려 충격이 분산되어 몸이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우스개를 보태면 술꾼들은 거의 멀미를 하지 않고 뱃놈들은 오랜 해상생활 후에 육지에 첫발을 딛을 때 가볍고 짧게 땅 멀미를 한다는 것.

악천후 속 ‘공중부양’에 가깝게 파도의 산마루를 타고 넘는듯하던 전후동요인 피칭(Pitching)이나, 서랍이 뽑혀나갈 듯 심한 좌우동요인 롤링(Rolling)속에서도 결단코 멀미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우리 같은 오리지날 뱃놈들은 숙취 때 느끼는 구역질 정도로만 짐작하는데, 배를 처음 타는 몇 선원들이 몸이 익숙해 질 때까지 긴 시간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괴로워하는 그들을 일부러 갑판으로 불러 내 뜀뛰기를 시키고, 억지로 노래를 부르게 했던 웃지 못 할 기억도 있다. 멀미 때문에 죽었다는 선원은 없었으며 당시 배에서의 지식정도나 처방이라는 게 그 정도 수준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잠이 드는 것, 그러니까 눈이 느끼는 혼돈을 없애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심장과 소화불량을 관장한다는 손목 안쪽의 내관혈(內關穴) 자리를 자극 하라는 한의학적 조언도 있다.

3D(Dirty, Difficult, Dangerous)니 4D(Distance추가)니, 바다와 배를 공포 스럽거나 부정적인 공간으로 몰아가는 추세에 조금이라도 친숙한 감정을 이입하고자 주절거려본 알아봤자 쓸데없는 잡스런 기초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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