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친구가 지리산으로 간 까닭
거문도 친구가 지리산으로 간 까닭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2.10.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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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수산업,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태풍 산바가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며칠 후, 거문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해양식에 큰 돈을 투자한 그 친구의 근황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세 차례나 밀어닥친 태풍의 뒤끝이라 한 없이 불안했다.
신호가 가도 받지를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전화기를 눌러도 묵묵부답이다. 불안이 증폭되어만 간다.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짓누른다. 지난 4~5년 동안 크고 작은 태풍이 왔어도 자기 어장만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자신만만해 하던 그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추스렸다.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그 친구와 통화가 이루어졌다. 전화를 받자마자 걱정스러운 질문부터 쏟아냈다. 어떻게 되었냐고. 그런데 그는 지금 지리산에서 산행(山行) 중이라고 했다. 지리산 자락 작은 암자에 머물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는 얘기에 덜컥 겁이 났다. 거문도 양식장에 있어야 할 친구가 지리산 산 속을 헤매고 있다니... 늘그막에 혹시 망측한 사고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큰 피해를 당한 게로구나. 직감 그대로였다. 태풍 볼라벤과 산바로 외해가두리 양식시설을 상당부분 잃었다는 것이다.
지난 해 여름 사입한 참돔, 돌돔, 능성어 등등의 고급어종들이 몽땅 자연으로 돌아갔다며 순리(順理)가 역리(逆理)를 이겼다며 껄껄 웃는다.

시설물 까지 합쳐 약 5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손실액이 어느정도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며 망연자실(茫然自失)해 하고 있는 친구의 하소연에 목이 매인다. 양식재해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유를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었다. 소방방재청으로부터 피해 보상금 5천만원이 나올 것 같다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그것이 전부란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외해 가두리양식이 평생동안 쌓아 놓은 자산과 정열을 송두리째 앗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이 엄청난 천재(天災) 앞에 그 친구는 넋을 잃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에 직면해 있다. 극(極)지방의 만년설이 녹아 내리고 해수와 대기의 온도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특히 우리 한반도 주변의 온난화 속도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다. 과거 100년 동안 진행되어 온 변화가 향후 10년 안에 급격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놀라운 보고가 나왔다. 지난 100년 간 한국의 평균기온은 섭씨 1.8도 상승했으나 2020년에는 최대 1.5도 상승한 13.8도, 그리고 2050년에는 최대 3.7도 상승한 16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겨울은 27일 줄고 여름은 19일 정도 늘어나는 한편, 해수면 높이가 27㎝나 상승함으로써 서남해안 저지대 연안의 상당 지역이 바닷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아열대 지역으로 변화한 한반도에는 생태계의 대변혁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수산물 지도가 바뀌고 있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참다랑어가 대량으로 잡히고, 황새치, 돗새치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해류도 길을 잃고, 태풍도 길을 잃고, 회유하던 물고기까지도 길을 잃고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수산업 대혼란의 시대가 눈앞에 몰아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해야 할 때가 왔다. 수온이 변하고 어종이 변하면 우리나라 수산정책도 따라서 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 어민들도 수산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할 대전환의 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한다. 수산업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정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수산경영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합리적 경영, 위기대처 능력을 스스로 갖추지 못하면 수산업을 유지할 수가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1차산업, 천수답(天水沓)식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는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직시해 주기 바랄 따름이다. 


수산재해보상보험 보완대책 시급하다.

「전남 완도군 노화읍에서 육상수조식 넙치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어민 김모씨는 이번 태풍으로 1.5㎏ 내외의 넙치 5만 2,000마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 어민은 양식재해보험에 가입한 덕택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지금 까지 납입한 보험료는 국비와 지방비 지원금을 제외하고 약 565만원 이었지만, 보상받는 보험금은 자그마치 9억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도 금일읍에서 해상가두리 전복양식업을 하던 어민 한 분도 82만원의 보험료를 납입한 덕택으로 1억 5,300만원의 재해보상금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는 또 있다. 완도 보길면 중통리에서 전복양식업을 하던 윤모씨도 267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2억 9,700만원을, 그리고 신안군 흑산면 박모씨는 600만원 보험료에 4억 3,400만원을 받았다.」

이상은 농수산부 실무책임자로부터 들은 태풍피해 구제 사례의 일부다. 양식재해보험에 가입한 어민에 대한 보상현황을 열거하면서 수산관련 재해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어민을 소개하듯이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상보험 가입률은 말할 것도 없고, 양식수산물재해보험 가입률도 시행 5년차를 맞고 있는 현재 겨우 400여 어가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다. 물론 시행 초년도인 2008년도에 34가구 가입한 것에 비하면 2012년 기준으로 396가구가 가입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양식면허 건수에 비하면 있으나 마나한 실적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11개 양식품목 (내년부터 4개 품목추가) 가운데 전국적으로 보험제도가 시행되는 품종은 넙치가 유일하며 나머지 10개 품목은 지역별 특성에 따라 시험적으로 시행되고 있을 뿐이어서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참다랑어는 보상받을 길 조차 없다.

뿐만 아니라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5톤 미만 어선에 대한 보험 가입률은 4%, 어선원보험 가입률은 4.4%에 불과한 실정임을 감안할 때, 영세어민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 한, ‘가난의 대물림’ ‘재해의 일상화’라는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양식어민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밀식(密植), 어병(魚病), 그리고 어가(魚價)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료 살 돈 조차 없는 처지에 막대한 돈을 들여 「로또복권」과도 같은 재해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정부로서도 농어민의 재해를 국가예산으로 보상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농어업 재해보상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보험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과도기적 현상을 선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정부의존적 농수산정책에서 탈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는 국비지원을 확대하여 영세하고, 과도한 위험에 직면해 있는 어민들에 대한 의무 가입제도를 확대하는 등의 조치가 선행되어야 재해보험제도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 물론 어민 스스로도 재해보험료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고정비용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진정한 애국자요, 식량산업의 역군이듯이 평생동안 물고기 농사만 짓고 사는 어민들 역시 진정한 애국자요, 식량안보의 첨병임을 인식해주기 바란다. 식량안보를 위해,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위해 극한의 위험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어민들에게 더 많은 보상과 혜택을 베푸는 것이 바로 복지의 핵심이요, 국가발전의 원동력임을 알아야 한다. 불평등한 것에 평등의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헌법위반 행위다.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대우하는 것이 자유와 평등의 기본이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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