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방송인 오정해 씨, 바다로 간 까닭은?
국악·방송인 오정해 씨, 바다로 간 까닭은?
  • 글 : 최정훈 기자 / 사진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8.12.0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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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푹 빠져 8년간 TV방송 ‘어영차 바다야 진행’

 

[현대해양] “8년 동안 ‘어영차 바다야’ 진행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바다에 매료돼서인 것 같아요.”

군산 선유도에서 촬영 중인 오정해(47) 씨는 인터뷰 내내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머리에 비니(모자)를 쓰고 한결 편안한 복장이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 예술인다운 한국적인 멋과 섬세한 품격은 어촌 갯가에 사방으로 풍겨져 나왔다.

오 씨는 국악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1년생 목포 출신으로 초등학생 때 판소리를 시작해 중학생 때 전주 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 장원을 했다. 이를 계기로 명창 만정 김소희 선생의 제자로 들게 된다. 전형적인 동양미인인 오 씨는 1992년에 미스춘향선발대회 진으로 선정돼 이듬해 국내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서편제’의 주연를 맡으면서 대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는 판소리를 중심으로 뮤지컬, 영화배우, 강의, 방송진행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목포MBC가 제작하는 ‘어영차 바다야’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면서 어촌과 바다 현장의 생생한 전달자로서 해양수산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달 9일 군산 선유도에서 방송 촬영 중인 그를 찾아 지난 8년간 어촌을 돌아보며 느낀 그녀의 바다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어영차 바다야’는 어떤 방송인가?

‘어영차 바다야’를 하면 고향 목포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자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목포보다는 전국 어촌지역을 더욱 자주 가게 됐네요. 어릴 적 고향이 항구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보는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접할 기회는 흔치 않았어요.

‘어영차 바다야’는 목포 지역 어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그려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2013년 1월 5일에 방송을 시작했어요. 4년 정도 지나자 지역방송사제작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하게 전국에 방송을 타게 돼 현재는 MBC 9개 계열사에 방송되고 있는 수산 관련 최고의 프로그램이됐어요.

대부분 수산 관련 프로그램은 어촌에 가서 제철에 나오는 생선 요리를 먹는 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잖아요. 하지만 ‘어영차 바다야’는 직접 어선에 승선해서 조업하는 생동감 있는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해드리고 있어요. 국민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다를 가감없이 보여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다시쓰는 자산어보’ 코너를 통해 수산물 요리를 소개하고 있어요. 우리 식탁에서 자주 보는 친근한 어류들에서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소한 어류들까지 우리 바다의 다양한 수산물 요리와 함께 특별한 스토리를 전해드리고 있어요.

‘바다 오디세이’ 코너를 통해서는 어로, 조선, 무속신앙, 신화 같은 지역의 문화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 관심을 유도하고 옛 세대분들께 추억을 전해드리고 있어요. 이것이 ‘어영차 바다야’ 방송이 8년 이상 장수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 '어영차 바다야' 촬영 현장
▲ '어영차 바다야' 촬영 현장

 

기억에 남는 촬영지역이나 좋아하는 수산물 요리가 있나?

몇 가지만 꼽을 수가 없어요. 어느 어촌도 실망을 안겨주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8년 동안 방송을 하니 갔던 곳을 또 방문하기도 하지만 미역이 햇빛에 말라가고, 어민들이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활력 넘치는 위판장 모습은 매번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느껴져요.

수산물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방어, 오징어, 멍게, 게, 백합 등 어느 바다에도 다들 있는 것이잖아요. 매번 찾을 때마다 ‘왜 이렇게 맛있나’라고 감탄사가 나오는데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에요. 어촌에서 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멍게비빔밥을 서울에서 먹는 것과 산지에서 먹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잖아요.

 

공연장이 아닌 바다에서 촬영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바다 촬영은 육지와 비교해 까다로운 점이 많아요.

어촌 촬영을 위해 어촌계장님과 사전협의하고 배를 타기 위해 선장님을 설득해야 하는데 바다에만 따로있는 달력으로 일정을 잡아야 해요. 물살이 완만해지는 조금에만 조업을 나가 그물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때는 다들 바다로 나가세요. 물살이 빨라지는 사리에 일정을 맞춰야 촬영할 수 있어요.

섭외가 됐어도 어업 활동은 새벽이나 아침에 대부분 이뤄지기 때문에 집에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지역으로 출발할 때가 많고 배를 타는 날은 전날 도착해 어촌에서 승선준비를 하고 잠을 자야 해요.

촬영을 시작해도 촬영장소가 공사 중이거나 개들이 짖어서 촬영이 잠시 중단하기도 해요. 또 조석 때문에 물이 빠져버리면 촬영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제 곧 겨울이 오잖아요. 바다 날씨 아시죠. 육지와 달라요. 바람을 맞으면 살이 베이는 것 같이 아파요. 특히 바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배 위에서는 더 춥습니다.

사실 저는 멀미가 심한 편이라 배를 타면 무척 힘이 듭니다. 장시간 승선하거나 외해 가두리양식장에서 촬영할 땐 언제나 곤혹을 치루곤 합니다. 또 햇빛 알러지가 있어요. 아침에 촬영을 시작하고 오후가 되면 피부가 얼굴부터 시뻘겋게 변해요. 여름에 조개 음식을 먹고 나도 알러지가 더욱 심해져요. 주사 맞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심한데 치료기간이 2주 정도 걸려요. 결국 2주 후에 촬영 때문에 계속 되풀이되요. 한번은 다음날 판소리 공연을 하는데 아파서 울면서 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이 방송을 계속하는 이유는 제가 그만큼 바다에 푹 빠져버려서인 것 같아요. 제 차에 멀미약과 알러지약을 넉넉하게 구비하고 있어요(웃음).

 

어민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어민들은 삶의 공간인 바다는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곳이에요. 어민분들은 생계를 위해 바다에 맞서기도 하고 수긍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요. 그래서 바다를 보면 어민들의 삶의 애환이 느껴져요.

한(恨)의 문화라고 아시나요?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에게 아버지 유봉이 건넨 대사인데요 판소리가 고통을 몸에 새기는 예술이라는 것을 잘 표현한 말이에요.

저는 국악을 선택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김소희 선생님 아래서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혹독한 훈련을 했어요. 가족과 떨어져 지낸 외로움과 절제하는 힘든 상황에서 고통스런 수련을 이어갔었지요. 그런 과정에서 소리가 제대로 익고 삭혀져 예술적인 멋을 구사할 수 있게 됐는데 마침내 한의 문화를 소화했던 것이에요. 강한 슬픔을 겪은 사람만이 강렬한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을요.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어민들의 어마어마한 아픔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민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저는 국악인으로 무대 위에서 90도 인사가 몸에 베어 있지만 이 코너를 시작하면서 90도 보다 더 꺽이게 됐어요. 어민분들을 보면 제가 하는 것이 감히 힘들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어민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나?

경제적인 고충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년보다 어획량이 상당히 줄고 있어 안타까워요. 또한 중국어선 불법조업이 만연하지만 어민들을 위한 대책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정부가 나서서 결단력 있는 모습을 취해주길 바람입니다.

어업은 노령화, 인구감소, 소득감소로 인해 점점 더 열악해져 갑니다. 어민분들이 바다를 등지게 되면 재앙이 됩니다. 매일 밥상에 우리의 건강을 위해 싱싱한 해산물을 제공하는 어민 분들을 잊어서야 될까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을 위한 좀 더 현실적인 대책이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촌마을에 가면 바다가 많이 오염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잖아요. 폐어망, 플라스틱 등 쓰레기들이 널려져 있어요. 어촌에 오랫동안 몸담고 계신 어민들은 바다를 지키는 분들이지 오염시키지 않아요. 혹은 그 쓰레기들은 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레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요.

이것들은 어민들이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해요.

촬영을 하면서도 생계가 달린 어민분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촬영 때 음식이 나오면 요리 맛과 향보다 힘든 여건에서도 요리를 만드신 마음에 더 관심이 가게 되요. 어려운 생활 속에서 만들어내신 것이잖아요.

어민분들은 어려울 때 어디에 말할 수도 없고 하소연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어민들의 신문고 역할도 하려고 합니다. 미세먼지 고등어, 소금 미세플라스틱 같은 이슈가 매스컴을 타게 되면 수산물 값이 뚝 떨어져버릴 때 우리가 어촌에 가서 여기 수산물은 안심해도 괜찮다고 소개하면서 조금의 보람을 느끼게 되요. 하루하루 바다에서 농사하시는 어민분들의 얼굴에 근심과 시름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현대해양>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민들이 없었다면 가당치도 않았던 일이에요. 언제 가더라도 마음이 경건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 바다는 그분들이 만들어 주신거에요.

바다는 그저 경치 구경하러 와서 맛있는 해산물 먹는 그런 공간만이 아닙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민들이 삶이 있어요. 어민분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직장이 바로 바다입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온전해야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삶을 영위하듯 어민들의 직장이 보존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관심이 끊기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저 관광객처럼 왔다 가시는 것은 지양했으면 합니다.

저도 제가 좋아서 바다를 다니기 때문에 평생 바다와 같이 활동 할 예정이에요. 같이 마음을 보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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