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복요? 산지 직송이죠”…완도군 노화도, 삼남매 참전복
“좋은 전복요? 산지 직송이죠”…완도군 노화도, 삼남매 참전복
  • 변인수 기자
  • 승인 2018.11.22 17: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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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좋아 맨몸으로 한 귀어, 그 섬에서 살아남다

[현대해양] 남편은 바다에서 일용직 노동일을 했다. 아내는 3남매 자녀를 키우고 제빵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그 섬에 정착하기 위해 애쓴지 3년.

하루하루를 열심히 견뎌내다 보니 섬에 올때 100일이 채 안됐던 막둥이 유빈(3)이가 벌써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자랐다.

그 섬에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본금이 넉넉해서 양식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만으로 택한 삶이다.

 

산지 직송, 삼남매 참전복

남편의 퇴직금을 제외하면 맨몸이나 다를 바 없이 3년 전, 이 곳 노화도를 찾은 조상현(42)·신은진(39) 부부.

지인들이 구해 달라고 해서 하나 둘씩 배송한 전복이 입소문을 타더니 현재는 연매출 1억5,0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매출이 큰 것도 아니고, 마진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니지만 도시에서 살다가 아무 기반 없이 귀어한 상현씨 부부에게는 어느새 귀중한 수입원이 됐다.

‘삼남매 참전복’. 첫째, 유승(7)이, 둘째, 유찬(5)이, 셋째, 유빈(3)이를 둔 부부가 고심 끝에 이름 지은 산지직송 전복 브랜드다.

일상의 소소한 소식을 전하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입소문만으로도 밀려드는 주문량을 소화해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산지에서 빠른 시간 내에 직배송하니까, 받고나서도 한동안 전복이 살아있다고 하세요. 해감을 해서 보내니까 비린내도 없고요. 전복 비린내 싫어하시는 분들은 우리 전복만 찾으세요.”

전복 포장과 배송을 담당하는 아내 은진씨의 말이다.

올해 상현씨 부부는 탁 트인 바닷가 옆에 아담하고 예쁜 집을 지었다. 집 바로 옆에는 전복 등 수산물을 보관·포장할 수 있는 45평 크기의 작업실도 마련했다. 또, 연안에서 낚시 등으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연안복합어선 1척과 1.5톤 냉동탑차 1대를 중고로 구입하기도 했다. 물론, 대출도 일정부분 포함됐다.

새해 첫날에는 상현씨 가족의 섬 정착 과정을 담은 TV 프로그램이 방영돼, 이젠 완도군수까지 먼저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됐다. 제목은 ‘으랏차차, 그 섬에서 살아남기’. 제목에서 느껴지듯 상현씨 가족의 섬 정착기는 말 그대로 눈물의 고행이었다.

 

제 발로 찾아 온 섬, 노화·보길도

귀어 전 상현씨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은 늘 어머니와 가족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다 다니던 회사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고, 상현씨는 노동조합 임원으로서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과감히 사표를 제출했다. 그곳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심한 것이 귀어귀촌이었다.

전라남도 보성군이 고향인 상현씨는 일곱 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릴 적부터 바다에 푹 빠져 자랐다. 바다의 넓고 푸름, 무한한 생명의 역동성을 좋아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낚시광으로 통했다.

등산과 독서를 좋아하는 은진씨는 누구나 알아주는 대학교·대학원을 졸업했고, 휴일이면 친구들과 서울 대학로에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던 평범한 도시 여성이었다. 시골로 특히나 섬으로 살러 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남편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아내 은진씨였지만, 이번에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키우고 있었고, 막내는 갓 난 아기였다.

그래서 인터넷 MOM-CAFE 모임에 고민을 털어놨다. 주부 9단, 멘토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남편을 한 두 달 먼저 보내 실컷 바다에서 지내게 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고 제풀에 지쳐 꿈을 접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답이었다.

그 방법대로 남편을 먼저 섬으로 보냈다. 그러나 두 달 후, 남편의 결심은 더욱 굳혀져 있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극구 반대 하며 어촌행을 만류했지만, 결국 상현씨의 굳은 결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그렇게 고집을 피우니, 좋다, 딱, 5년만 살아 보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은진씨는 귀어를 승낙했다.

 

연고없이 귀어하기 힘든 제도

바다가 좋아 무작정 결심한 귀어였기에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바다 한켠에 조그맣게 양식장을 만들어 이것저것 키워보겠다는 계획과는 달리 바다는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양식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해당 마을 어촌계와 바다 사용에 관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데 어촌계에는 신규 회원 가입에 대한 고유의 룰이 있다. 5년에서 10년 간 해당 어촌에 거주해야 하고, 가입금도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심하면 1억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신규회원이 내는 가입비는 기부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시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노화·보길 지역에 귀어귀촌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귀어인의 대부분은 귀향인들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뭍에서 생활하던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이들은 부모님의 양식장을 떼어 물려받을 수 있기에 신규 어촌계 회원가입이 어렵지 않다. 그래서 대출 등 자금운용도 쉽다. 이에 비해 연고없이 귀어하기는 어려움이 많다.

 

긍정의 사나이, 현실을 직시하다

암담한 현실만을 탓하며 낙심할 수만은 없는 일. 결단을 내리고 이곳에 왔으니 우선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상현씨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 남자다. 긍정의 사나이 상현씨는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갈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장 양식을 시작할 수 없음은 아쉽지만, 간접적으로 배우고 익혀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마을에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자원해 일을 거들며 배우기로 했다. 다행히 노화·보길도 주민의 상당수는 양식업에 종사했기에 양식장에 나가 일하며 보고 배울 기회가 많았다. 일을 마치고는 틈틈이 귀어선배들로부터 주낙, 통발 등 어획기술도 익혔다.

바다를 좋아해 낚시는 수없이 다녔지만, 막상 현장에서 겪어보는 바다일은 생각과는 천지차이였다. 바다에 관한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터라 처음에는 몸으로 부딪히는 힘쓰는 일만 도맡았다. 그러다가 타고난 눈썰미로 일을 익히게 됐고, 지금은 A급 일꾼으로 대접받고 있다.

아내는 3남매를 돌보며 제빵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아이를 갖고 따두었던, 제빵기술사 자격증이 요긴했다. 그러면서 전복을 포장하고 선별하는 일도 익혀나갔다.

부부는 힘든 현실을 원망치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목표를 향해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그런데, 지인들이 한두 명씩 전복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한 일인데, 점차 입소문을 타고 수량이 많아졌다. 품질이 훌륭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평과 함께 고객들의 로열티도 점차 커져갔다. 그래서 아예 가게를 차리고 직접 배송해보기로 했다.

전복 주문과 배송은 은진씨 몫이다. 상현씨는 배송일을 도우며 미래의 계획을 준비 중이다. 전복뿐 아니라 상현씨가 어획한 제철 수산물까지도 진공포장을 통해 함께 판로를 개척해 보겠다는 것. 이를 위해 지난 10월 그동안 봐두었던 땅을 매입해 가족들이 함께 거주할 집과 수산물 보관 및 포장을 위한 창고도 준공했다.

또, 주말 택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인근 도심의 모임이나 행사 시장을 공략, 1.5톤 냉동탑차를 이용해 직접 배송을 해보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를 통해 산지 배송 전복 등 수산물 유통 최단시간 내에 연매출을 10억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그렇다고 상현씨가 양식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상현씨는 마을 지인을 통해 전복 가두리 양식장을 대여해 전복, 가리비, 해삼 등 다양한 어종들을 키워보며, 양식시험에 착수했다.

“3년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친구가 됐습니다. 여기서 사귄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에서 상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언젠가 같은 자리에서 경쟁할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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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석 2018-11-25 22:49:24
멋지네요. 제대로 된 귀어인입니다,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계시네요. 인성도 근사하고, 앞날에 멋진 일들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